존 위클리프와 롤라즈 전도자들의 이야기
주권: 하나님만 만물과 교회와 세상의 주인
한계 벗어나 세속 권력 가진 교회, 비합법
교황청은 못마땅, 세속 권력자들은 환영해
결국 국가와 정부 권력자도 점차 지지 철회

국왕이 백성 섬기는데 권위 사용해야 정당

존 위클리프
▲존 위클리프와 롤라즈 전도자들.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 후기 신앙운동과 신학자들이 놓은 주춧돌 위에 건축된 장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프랑스의 왈도,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얀 후스, 피렌체의 사보나롤라, 네덜란드 지역 베젤의 요한, 독일 북부 베셀과 고흐 등이 종교개혁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도덕 개혁가 사보나롤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회의 의식과 교리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고요한 방법으로 삶의 정화(淨化)를 추구한 독일 신비주의자들과 같지 않았다. 교리 개혁에는 무관심하고 교회법 체계의 개선에만 관심을 쏟은 행정가 집단과도 구별되었다. 위클리프와 그의 신학사상의 계승자들은 교리 개혁자들이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30-1384)는 ‘종교개혁의 새벽별, 복음 박사’라고 불렸다. 교리 개혁에 이바지한 그의 신학사상은 네 가지로 집약된다. 주권, 성경, 교회, 성찬 등의 주제이다.

지상의 지배권은 하나님의 주권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될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 신앙과 행위의 최종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다. 참 교회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황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성찬식 축성 때 빵과 포도주가 변한다는 화체설은 미신이며 옳지 않다. 이러한 신학 발상은 로마교회의 체제와 구조를 허물 수 있는 강력한 도전이었다.

1. 주권

위클리프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만이 만물과 교회와 세상의 주인이라는 주권 사상이다. 어느 누구도 궁극적인 의미의 주인이 아니다. 하늘의 주께서 신적 은혜를 베풀면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주권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은 다만 청지기일 뿐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정당성과 필연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은 지상(地上)의 모든 주권들의 근거이다. 종교적·세속적 지배자는 만물의 지배권을 가진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서 극히 일부분을 빌려왔다. 그러므로 올바른 권한과 권세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된다.

위클리프에 따르면, 모든 합법적 통치권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됐다. 그러므로 합법적 통치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사용된다.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 그렇지 않은 통치권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아무리 합법적인 통치라도 그 권위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통치자가 자기의 영역 확장을 목적으로 행사하는 지배권은 옳지 않다. 이는 권한을 부여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영적 한계를 벗어나 세속 권력을 가지는 교회 권력은 정당하지 않으며, 비합법적이라고 했다.

위클리프는 합법적 통치권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주권(Lordship)과 지배권(Dominion)이라는 용어들을 도입했다. 옥스퍼드 사역 초기 강의한 내용을 담아 펴낸 『한계선』(Determinatio, 1374), 『하나님의 주권에 관하여』(De dominio divinio, 1375), 『세속 주권에 대하여』(De civilio dominio, 1376)가 이와 같은 사상을 담고 있다.

위클리프의 주권 사상은 주로 교황을 의식하고 있다. “시민적이거나 교회적인 모든 권한은 그 소유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을 동안만 정당하게 지탱할 수 있다.”

만일 교회의 주권자인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지 않는 경우, 다시 말해 기독인답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경우 “그 권한을 정당하게 소유할 수 없고, 세속 권력이 그것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세속적 과제들이 아니라 영적 사안에 제한하여 권세를 주었다. 위클리프의 이 주장은 파두아의 말시글리오와 오캄의 윌리엄이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위클리프는 로마 교회의 통탄할 취약점이 돈을 사랑함이라고 믿었다. 그는 사제들과 탁발 수도사들이 ‘일시적 수입’을 노리고 비성경적이고 거짓된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실을 포착했다.

“자신들의 육체적 필요 때문에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고, 고백 신부 봉사의 대가로 탐욕스럽게 돈을 청구한다. 자신들을 살찌우는 부적절한 토지로 그리스도의 법을 훼손한다. 부와 세상의 명예에 집착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악한 것은 경솔하게 그들을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멸망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위클리프는 하나님께서 종교인들이 교회당과 수도원 건물 안에 숨어 있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위클리프의 『교황의 권력에 대하여』 (De poteste pape, 1379)는 교황제 공격을 재개하고, 교황직을 규탄한다. 교황 제도는 신적 터전 위에 있지 않다. 청빈한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그리스도이다.

이러한 교회의 타락은 황제 콘스탄티누스 때부터 시작되었다. 세속 권력이 교회에 거대한 부와 세력을 보장하자, 교회는 변질되고 부패했다. 국가가 성직자들의 수입에서 세금을 징수함은 정당하다. 성직자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로 만족해야 한다.

가난에 대한 탁발 수도사들의 주장은 옳다. 황금으로 치장한 수도원과 교회당을 정당화 하는 성경적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위클리프는 1378년 시작된 교황을 둘러싼 교회 갈등과 경건하지 않은 성직자들의 행태에 환멸감을 느꼈다.

위클리프는 이 맥락에서 국왕에게 ‘제국적 성직자’와 ‘직무 태만의 교회’를 몰수할 책임이 있고 ‘은혜의 사제권’이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왕이 교회의 머리일 수 있으며, 국가가 교회에 대해 우선권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발상은 중세 유럽의 사회적 구조를 재편성하는 엄청난 도전이다. 영국 왕실이 위클리프에게 우호적이었던 까닭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영국인들은 이 주장을 증오했다. 그러나 위클리프의 이 사상은 헨리 8세 중심의 영국 종교개혁과 오늘날까지 세속 왕이 교회의 우두머리로 존속하는 영국 국교회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 무렵 아비뇽 교황청은 프랑스 왕국의 꼭두각시였다. 교회세 징수와 교황의 세속 권력 문제로 교황청과 갈등을 겪고 있던 영국 왕실은 위클리프의 주장을 환영했다. 교황청은 위클리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세속 권력자들은 그를 환영했다.

위클리프가 주창하는 사상은 세속 권력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해당되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의 권력자들은 위클리프에 대한 지지를 서서히 철회했다. 국왕이 권력을 백성들을 섬기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까닭이었다.

세속 정부, 영국 모든 교회 수도원 개혁해야
성경, 창조된 세계 존재 모든 진리 주요 원천
다른 ‘권위’ 중개자, 교황이나 전통 필요 없어
위클리프, 영어 번역 성경의 필요성 일깨우다

2. 성경

교황좌를 둘러싼 음모와 공의회 운동은 유럽인들에게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권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이해를 확산시켰다. 어거스틴은 성경의 권위가 모든 지적 자료들에 비해 월등히 높음을 강조했다.

위클리프는 성경 이해에 관한 자신의 작품에서 계시된 진리와 차갑고 명료한 아리스토텔레스식 이성의 양립이 어려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로마교회가 두 명의 교황의 등장과 암투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내놓은 『성경의 진실성에 대하여』(De veritate sacrae scripturae, 1378)는 로마의 교회 제도에 성경적 기초가 부재함을 거칠게 지적했다. 세속 정부가 영국 안의 모든 교회와 수도원을 송두리째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위클리프에 따르면, 성경의 권위는 교황보다 더 높다. 성경은 모든 진리의 원천인 신적 이해라는 영원한 논리의 구현체다.

성경은 창조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진리의 주요 원천이다. “모든 법, 모든 철학, 모든 논리, 모든 윤리가 성경 안에 들어있다.”

피터 왈도와 왈도파 복음전도자들이 교황 권력보다 성경이 높은 위치에 있음을 강조했으나, 이를 학문적으로 정립하지는 않았다. 위클리프는 신앙과 행위의 최종 권위가 성경임을 지적으로 체계화했다.

위클리프는 성경이 모든 인간 언어의 표본이며, 영원한 보편의 말씀이 내 마음 안에 제시되어 꽃피어야 한다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경의 진리 이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 번째 요소는 독자의 마음 속에 성경이 품고 있는 영원한 진리를 조명하는 성령의 활동이다. 두 번째 요소는 어떻게 성경 속 단어들이 영원한 진리를 말하는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한 논리학과 문법을 배우는 학업이다.

기독인은 이 두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안에 있는 진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해줄 또 다른 ‘권위 있는’ 중개자, 곧 교황이나 전통이 필요하지 않다.

“성경 전부는 인간 저자들의 적절성 증명에 어떠한 다른 저작들보다 절대적으로 큰 권위를 지닌다.”

위클리프는 처음에 교회의 전통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점차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한 시각이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회의 타락을 혐오하면서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전통이나 종교 권위자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준 것이지, 부패한 성직자들이 독점하도록 준 것이 아니다.

성경만이 기독교의 교리와 교회생활의 유일한 표준이다. 위클리프의 이 확신은 교황제도에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확신으로 연결된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교회와 교황의 소유물로 보는 로마 교회의 견해와 교회만이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했다.

교회는 모든 택정(擇定)된 사람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경은 그들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위클리프는 성경의 중요성과 백성들의 갈망을 채우는 자국어 성경 번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국 링컨의 감독 그로스테스트와 스콜라주의 철학자 오캄의 윌리엄은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중요한 권위라는 사상을 펼쳤다.

위클리프는 성경이 전통이나 교회와 같은 여러 권위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지 않았다. 모든 권위들보다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거스틴, 제롬, 성인들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법은 충족적이고 최상적이다”라고 했다.

당시 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했다. 성찬 중심의 예배는 라틴어로만 진행됐다. 단일성을 덕목으로 여긴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는 라틴어가 유일 최고의 언어이며, 천국 공용어라고 믿었다. 새들도 라틴어로 노래하고 라틴어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 다수의 유럽인들은 라틴어를 알지 못했다. 이 때 위클리프는 성경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졌고,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경의 메시지가 영국인의 마음에 스며들고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려면 성경이 자국어로, 영어로 번역돼야 한다고 했다.

“신약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것을 단순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성경을 완전하고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분별력을 열어주실 때처럼 우리에게 성경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영어 번역 성경의 필요성을 일깨운 위클리프의 주장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교회 개혁 그 자체였다. 탁발 복음 전도자 피터 왈도가 프랑스어 성경을 번역하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신앙운동을 펼친 것처럼, 위클리프는 성경 영어 번역을 독려했다.

위클리프는 라틴어판 불가타 성경의 영역(英譯)에 이바지했다. 영어 성경을 읽는 평신도들은 사제들보다 더 많은 성경 지식을 소유했다.

성경 영어 번역의 꿈은 윌리엄 틴데일 등 추종자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자국어 성경은 롤라드 파와 후스 파 신앙 운동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중세 후기 기독교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최고, 최종 권위라는 위클리프의 사상은 이어지는 교회개혁운동의 주지였다.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6장 2부 중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최덕성 박사. ⓒ크투 DB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