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반복, 무개성한 사회 분위기 포착
미니멀리즘 격자 패턴 현실 이식된 듯 착각
규격화, 무한질주 경쟁 물질중심주의의 예
부감법으로 현대 사회 강한 의구심 표명해

99센트 안드레아스 거스키
▲99센트, 안드레아스 거스키(사진, 207x336cm, 1999).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sky)의 사진작품을 보고 느낀 소감이다. 런던, 뉴욕, 파리, 취리히, 베를린, 베이징 등의 도시를 거쳐 작품전을 가진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전시가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022. 3. 31 - 8. 14)에서 개최되고 있다.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그는 에센의 폴크방 국립예술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지난 40여 년간 현대 사회의 스텍터클한 풍경을 화면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2022년 신작까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4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거스키 작품의 특징은 똑같은 이미지의 반복이다. 그는 쇼핑센터, 아파트, 호화 유람선, 최신식 고층건물, 북한의 정치 체조, 산업 구조물 등 현대사회의 풍경에 주목한다.

이들 이미지들은 가로세로가 반복되며 이를 통해 무개성한 사회 분위기를 포착한다. 이는 마치 미니멀리즘의 격자 패턴이 현실에 모범적으로 이식된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규격화된 ‘똑같음’(sameness)이 무한 질주의 경쟁을 펼치는 물질 중심주의의 예를 보여준다. 이전의 미니멀리즘이 예술 작품의 카테고리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그 양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공간 안에서 전면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것 같은 우려를 갖게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소박하게 ‘삶의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나, 실상 거스키는 현대 사회에 강한 의구심을 표명한다. 옥상, 크레인, 때로는 헬리콥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른바 ‘부감법’을 기용한다. 이로써 무개성의 반복은 한층 뚜렷해지고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의 작품중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뉴욕의 마켓을 모티브로 한 〈99센트〉란 작품이었다. 거스키는 필름카메라로 실내를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하여 편집하는 ‘디지털 프로덕션’을 활용하였는데, 이에 따라 우리가 보는 마켓 장면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에 의해 가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가공은 특히 천정에서 진열대의 상품을 비추게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로서 매장의 복잡한 분위기를 강조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켓을 앞뒤로 겹치는 식으로 상품 이미지를 패턴화시키는 시각적 변주를 꾀하였다. 위풍당당한 대형 사진은 현대 사회의 과잉이 얼마나 생생하고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알게 해준다.

소비지상주의에선, 욕망 실현이 최고 미덕
99센트, 영구적·불변 가치 비해 일시 만족
창조 이유보다 저차원 욕망에 만족하게 해
거스키, 소비사회의 초현실적 풍경 보여줘

마켓 풍경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현대인들은 쇼핑을 할 때 필요한 것의 구입 외에도, 자신의 공허함과 그 공허감이 채워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쇼핑을 즐긴다는 분석이 있다.

소비지상주의에서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된다.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우리의 생활 패턴으로 자리를 잡았고 소비에서 영적 만족과 자아의 만족을 찾도록 만들었다.

“소비자는 탐욕으로 훈련받고 있다. 소비자는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상품화된 물건과 체험으로 달래질 수만 있을 뿐 완전히 채워질 수는 없는 욕구들로 구성되어 있다.”(로드니 클랩, Rodney Clapp)

이런 시각에 따르면, 쇼핑몰은 영적 갈망의 성전이 된다. 쇼핑몰은 고독한 사람에게 위안을, 지루한 사람에게 흥분을, 정신적으로 고갈된 사람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는 <윤리실종>에서 이렇게 현세적인 성전인 쇼핑몰에서 제공되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로서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 손에 넣게 된 구원을 증거한다고 분석하였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내 이미지는 항상 장소의 해석이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그가 촬영한 장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그가 <나트랑>을 찍었을 때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을, <방콕>에서는 쓰레기가 떠다니는 짜오프라야강의 오염된 장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99센트〉에서도 점검된다. 상품이 지닌 알록달록한 색깔과 패턴의 스펙터클에 현혹되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소비주의의 폐해를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하고 즐거움을 탐색하는 일은 예전에 윤리적인 열정이 지향한 똑같은 목적에 기여하나 그런 윤리적인 열정에 따르는 고독한 삶과 진지함을 대가로 요구하지 않는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희생의 감수도 내세우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깊이 그속에 빠져든다. 밭 속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신의 재산을 다 모아 그 땅을 구입할 수 있었던 이야기(마 13:44)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영구적이고 불변의 가치에 비해 값싼 구입으로 얻는 만족은 그때뿐이다.

한편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콘텍스트로 보았을 때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버넷 뉴먼(Barnett Newman)과 같은 작가와 유사점을 띠고 있다. 원근법이 사라지고 공간을 중심없이 채운 잭슨 폴록처럼 그 역시 원근법은 물론이고 중심 이야기 없이 공간 전체를 부분들로 메우고 있으며, 버넷 뉴먼이나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처럼 색채와 추상 이미지가 매력적인 조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스키가 이들과 다른 점은 우리가 처한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9센트〉의 경우 현대인들이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쇼핑 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거대한 물류창고를 찍은 <아마존>과 명품으로 입소문을 탄 <구찌>와 <프라다>도 같은 선상에 있다.) 외적으로는 완벽한 것 같지만 그속에는 전도된 욕구 충족이 자리잡고 있다.

스캇 펙(Scott Peck)은 이러한 생활 양식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욕구 충족을 늦추는 것은 먼저 고통을 맞닥뜨려 경험하고 이겨내고 기쁨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삶의 고통과 기쁨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이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가장 제대로 된 방법이다.”

작가는 ‘결함 있는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성찰의 계기가 되도록 하고 있다.

소비지상주의가 촉발한 딜레마는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창조된 이유보다 훨씬 못한 저차원의 욕망에 만족하도록 유혹한다는 점에 있다.

C. S. 루이스(Lewis)가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가 후미진 곳에서 진흙을 가지고 노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예로 든 것처럼, 마케팅의 파괴력은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비웃으며 사소한 것에 열망하도록 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즉각적인 기쁨보다 무한한 기쁨을 열망하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그의 작품은 무한한 기쁨이 주어졌는데 하찮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일에 몰두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러하다.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