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창백한 푸른 점 NASA 행성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 NASA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했다. ⓒNASA
1990년 밸런타인데이에 명왕성 궤도에서 보이저 1호가 지구 사진을 찍어서 전송했다. 동그라미 속 한 점 티끌이 70억 인류가 사는 우리 지구다.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한 점에 불과했다.

그간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밤하늘 위 그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의 별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러왔다. 그런데 반대로 하늘 위 아주 먼 그곳에서 내려다 본 지구는 정말 깨알보다 더 작은 점이었다.

저 작은 점 속에 70억이나 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이 넓고 큰 지구 위에서 올려다보기만 하다가 그 중 한 행성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작은 지구의 사진을 보니, 달리 생각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세 시대 때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계가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믿던 시절이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역인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경험하던 지구는 넓고 광활하기가 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 위 한 별나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충격적일 정도로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수없이 많은 행성들 중 작은 별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저 티끌 같이 작고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저 점 속에서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다.

대중 천문학 책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故 칼 세이건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가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지구 사진을 보고 밝힌 소회가 있어 소개한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그네들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흑암으로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보이저 탐사 화상팀의 일원이었던 세이건의 주도로 지구의 사진이 촬영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우리는 세이건의 이 말에 일단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 모든 피조물과 우주 중에서 지구, 그리고 그 속에 발을 디디고 사는 나란 한 사람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잘났다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세이건이 소회에서 밝힌 전반적인 내용은 사실과 다름에 유의해야 한다.

“이 사진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준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 두 문장의 말은 어디까지나 초라해 보이는 지구와 그 속에 사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만 바라보았을 때의 생각이다. 그 작은 지구 속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냐를 볼 땐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티끌 같은 이 지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하게 선택된 장소임을 말씀한다(창세기 1장).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범죄로 타락한 초라한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수많은 행성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 지구에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8편에 나타난 아름다운 고백을 들어보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온 우주보다 높고 하늘의 천사보다 더 고귀하게 창조된,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자신의 소중한 신분을 생각하며, 매일 매 순간 천국의 시민권자다운 자부심을 갖고 멋지게 잘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신성욱 교수.
신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