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저자인 류관석 교수(대한신대)가 성경의 현대적 이해를 돕고자 이스라엘 문화와 역사에 바탕을 둔 글들을 ‘이스라엘과 성경’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예수의 시험 광야 세 가지
▲예수의 세 가지 시험을 나타낸 12세기 성화(The Temptations of Christ, mosaic in basilica di San Marco, V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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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test)과 마귀가 주는 시험(temptation)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갖는 의도 즉 ‘시험을 통하여 성장시키고자 하는가’, 아니면 ‘시험을 통하여 넘어지게 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이 구별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시험은 시험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연단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마치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교육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연령에 맞추어 때에 맞게 주시는 하나님의 연단은 늘 우리 신앙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시험은 제외하고자 합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의 정체를 밝혀보는 것이 오늘의 핵심 주제입니다. 그래야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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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마귀가 주는 시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에 대한 마귀의 시험’입니다. 공생애 전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받으신 시험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만일 오직 예수님만이 마귀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면, 그 시험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온 몸의 피를 한방울도 남김없이 다 흘리실 때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면, 그 피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천하고 천한 요셉의 집에서 태어나 죄악된 인간을 위하여 가장 극심한 고통을 주는 십자가형을 받으셨기에, 우리를 위한 그 희생이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예수님만 마귀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 시험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통과하신 마귀의 시험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시험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그 해법을 보이신 지금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시험 광야 세 가지
▲예수의 두 번째 시험(The Temptation of Christ, Sandro Botticelli,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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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의 정체는 바로 마귀가 가지고 있는 이 땅 위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신학을 가지고 있기에, 이 글에서는 생략합니다.) 즉 마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세가 이 세 가지 시험에 대표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육체를 가진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 듭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덩어리로 바꾸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덩어리로 바꾸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이 땅의)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는 신명기 8장 3절의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시편 91편 11-12절 말씀을 이용하여 ‘천사가 구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귀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올라가서 ‘나를 경배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시험에서도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며 마귀의 유혹을 뿌리칩니다.

예수의 시험 광야 세 가지
▲예수의 세 번째 시험(The Temptation on the Mount, Duccio di Buoninsegna, 130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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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세 가지 시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 시공에 갇혀 사는 인생들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상대도 되지 않는 마귀들에게 시험을 받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시험은 우리 인생들 하고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즉 우리가 마귀를 이기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세 가지 시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 먼저 메슬로의 ‘5단계 인간 욕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인간의 욕구가 그 중요도별로 점층적인 단계를 형성한다’는 동기이론 중의 하나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모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모델의 정확도 여부를 따지는 것은 오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만 이 이론의 핵심은 대체적으로 인간 욕망이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생리적 단계’로부터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까지 점점 발전하여 나간다는 점입니다.

즉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그 다음 단계의 욕망을 추구한다는 이론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메슬로 Maslow 인간 욕구 5단계
▲메슬로(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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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여기서 인용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시험과 이 이론의 연관성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의 시험은 인간의 욕망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1) 첫 번째 시험
먼저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떡덩어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3일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을 군자가 없다’는 한국 속담처럼, 만일 어떤 사람이 40일을 금식하였다면 모든 것이 다 먹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귀는 이 점을 노리고, 인성을 입고 오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덩어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도록 유혹합니다.

이는 메슬로의 5단계 욕구 중 가장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합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욕구는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다른 어떤 욕구보다 우선합니다. 이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다른 어떤 욕구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은 메슬로의 첫 번째 욕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다면, 인간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도 시장함을 느끼시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시험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입니다. 이 시험은 시편 91편 11-12절에 근거한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천사들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절대로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을 확인해 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도록 만드는 마귀의 계산된 유혹입니다.

‘메슬로의 욕구 단계’에 따르면 2단계와 3단계는 서로 상관 관계가 있는 욕구입니다. 인간은 ‘생리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고, 또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특히 ‘안전 욕구’와 ‘불안 회피 욕구’는 소속감을 통하여 더욱 증진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은 메슬로의 2-3번째 시험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하여 돈을 저축하고 보험에 들고 또 편안하고 안전한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성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구멍을 내는 것이 바로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의 목표입니다.

예수의 시험 광야
▲광야에서 시험당하시는 예수(Christ in the Wilderness, Ivan Kramskoy, 1872).

3) 세 번째 시험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모든 영광을 다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물질 세계를 보면 그것을 소유하는 권세를 가지고 싶고 또 그 물질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저절로 들 것입니다. 물론 이 단계의 욕망은 안전이 확보된 뒤에나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메슬로의 4-5번째 욕구 단계로, 남에게 존경받고 싶고 남을 지배하고 싶은 인간의 마지막 최고 욕구입니다.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고 더 이상 삶이 위험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게 되면, 다음 단계로 ‘자아 성취’를 향해 매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시험이 바로 메슬로의 4-5번째 욕구와 거의 동일한 내용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평생 쓸 재물을 모은 사람들, 즉 삶의 안전을 확보한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정치에 관심을 갖거나 선출직에 도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4) 소결론

예수님의 세 가지 시험과 메슬로의 5단계 욕망을 비교하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귀의 권세는 물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 땅에 있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마귀의 시험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귀의 통제 하에 있는 세상 물질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물질이 마귀가 하나님 자녀를 유혹하는 수단일지라도, 그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 말씀으로 물질의 유혹을 이겨내면,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당하신 마귀의 시험 내용은 5단계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그대로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몸소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모두 이길 수 있음을 실증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옥자
▲에덴 동산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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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겪으신 시험이 이 세상 물질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담의 선악과 시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담의 손에 맡기셨지만, 오직 동산 중앙의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고, 그 정체를 명확히 규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서는 선악과 자체보다, 선악과의 특성만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악과의 내용이 예수님의 시험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존재는 바로 뱀(옛뱀, 사단, 마귀)입니다. 마귀는 유혹의 근거로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하나님처럼 밝아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뱀의 시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시험과도 동일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모두 이겼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지고 마는데, 그 이유는 선악과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훼손하는 마귀의 말을 듣고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그 과일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선악과에 대한 특성이 나이브한 언어로 표현된 것은 가장 원시적인 농경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먹음직스러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선악과는 하와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배가 고픈 하와가 선악과를 쳐다보았을 때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순간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잊어버리고 손을 뻗쳐 따먹고 싶은 욕망을 통제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2) 보암직함

보암직한 선악과는 다른 어떤 과일보다도 더 갖고 싶은 하와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 선악과만 갖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걱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에덴동산에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에덴 동산을 경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 탐스러움

나아가 선악과는 어느 과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과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지혜롭게 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악과가 가지고 있는 탐스러움은 도저히 하와가 거부할 수 없는 가장 큰 유혹이 되었습니다.

메슬로 단계 욕구 예수 시험
▲선악과와 메슬로의 단계적 욕구 이론, 예수님의 시험을 비교한 도표.

4) 결론

결국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뱀의 말에 속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는, 이렇게 좋은 과일을 금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 아담의 시험 내용과 예수님 시험 내용은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 시험에서 실패한 원인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의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선악과의 유혹에 빠져 이를 금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보다 뱀의 말에 의지하게 되었고, 결국 선악과를 먹게 된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유혹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집중한 아담·하와와 달리, 예수님은 전적으로 육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자세가 바로 말세 성도가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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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타락 이후 예수님 오시기까지, 이 땅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물론 드물게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약의 세계는 영의 세계와는 단절된 물질의 세계일 뿐이었습니다.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도 오직 물질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신약 시대로, 예수님이 영생과 천국에 대한 복음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젖이나 먹는 유아기의 신앙이라면 신약은 장성한 자의 신앙입니다.

장성한 자는 말세 성도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아담과 예수님이 겪었던 똑같은 시험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한일서 2장 15-16절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구절에 따르면, 말세 성도의 시험 내용은 바로 ‘세상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 사랑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1) 육신의 정욕(Lust of the Flesh)

여기서 ‘정욕’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욕망/ 욕구(Lust/ Desire)’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성적 욕망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식욕, 수면욕, 성욕 등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리적 욕구를 다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육신의 정욕은 메슬로의 1단계 욕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안목의 정욕(Lust of the Eyes)

안목의 정욕도 눈이 가진 욕망을 채워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악과 시험의 보암직함, 예수님 시험의 천사의 보호와 같은 개념으로 높이 쌓아놓은 재물은 눈을 만족시킴은 물론 안전에 대한 걱정도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땅에 쌓아 논 재물에 대하여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습니다(마 6:19-20).

3) 이생의 자랑(Pride of Life)

대부분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남들에게 큰 소리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마지막 시험인 세상의 영광을 누리며 살고 싶은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 위에 군림하며 살고 싶은 욕구는 우리의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을 멀게 만듭니다.

메슬로 단계 욕구 예수 시험
▲창세기와 마태복음, 요한일서의 각 3가지 시험과 메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 비교 도표.
4) 소결론

비록 요한은 ‘세상 사랑’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상 사랑을 세 가지로 분류한 내용을 보면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아담의 시험이나 예수님의 시험과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요한의 해법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는 ‘천국의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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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세 성도의 시험은 아담이나 예수님이 겪었던 시험과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 ‘메슬로의 5단계 욕구설’과도 동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최종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마귀의 영역)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가 가진 세상적 욕망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땅에 속하였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땅의 속성과 하늘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 선택할 문제입니다(마 6:24).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성경이 어떤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됐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