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메멘토 모리’… “코로나, 죽음 마주서게 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어령 교수의 회심 이후 15년, 책으로 만나다 (2)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이들 작은 위안과 희망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새삼 깨닫게 해
선악 아는 지식 열매,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게 해
코로나 바이러스, 평소 못 보던 예수님 얼굴 드러내

메멘토 모리
이어령 |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44쪽 | 15,000원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다 죽었어요. 그들 중에 죽음이 뭔지 알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면 종교는 없을 것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라도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관찰하는 듯 했다는 故 이어령 교수. 그의 생전 마지막 출간된 책 제목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였다. 이후 그의 대화록을 정리한 책이 30여 권이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암투병 중 정리한 그의 ‘대화록’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 책은 삼성 故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한 가톨릭 신부에게 던진 종교와 신, 죽음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이어령의 대답’이다. 암 발병 사실을 안 뒤 수술 대신 ‘병마와의 동행’을 결심한 그는 2019년 7-10월 한 잡지사 기자와 해당 질문들을 주고 받았고, 병세가 깊어진 2021년 12월 한 번 더 같은 질문에 답했다.

같은 물음에 다시 답변한 이유는, 때마침 코로나로 모든 한국인 아니 전 세계 인류가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스물네 가지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이 뜻하지 않게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의 서,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이 책을 미진한 대로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을 결단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코로나 패러독스’를 말한다. “코로나(corona)는 왕관이고, 예수님과 천사들 뒤에 원처럼 비치는 원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좋고 성스럽고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그것이, 우리를 괴롭히는 죄악의 팬데믹이 되고 가장 기피 언어가 되었을까요. 이 코로나로 인해 전 인류가 현재 대재앙을 겪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대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인구도 불어나고 그 이전보다 번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코로나의 역설, 패러독스는 계속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을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존재로 여겼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달라졌어요. 죽음은 그저 우리 안에 갇힌 사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에 불과했어요.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죽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일종의 ‘판단 중지’지요. 죽음이 갖는 무서움, 저놈이 날 잡아먹을 수 있다는 공포는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었어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여긴 사자와 호랑이, 즉 죽음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특히 우리는 오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죄 없는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살상을 비롯한 전쟁의 각종 참상을 SNS로 직접 목격하고 있다. 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만의 일.

▲2018년 본지와 인터뷰한 이어령 교수. ⓒ크투 DB

▲2018년 본지와 인터뷰한 이어령 교수. ⓒ크투 DB

“죽음의 공포, 굶주린 맹수의 습격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온 마을, 온 도시, 온 인류가 깨닫기 시작한 거야. 으르렁대는 호랑이는 무섭기는 하나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놈이, 그 끔찍한 공포가 거리로 뛰쳐나온 겁니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사람이 타인이 아닌 코로나19를 겪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 호랑이, 저 사자가 안 보여.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 덮칠지 몰라요.”

인류는 모털(mortal),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모털(immortal)한 존재는 하나님뿐,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불러낸, ‘메멘토 모리’.

이 교수는 이를 ‘원죄’라고 불렀다. “신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어겼고 그 선악과로 말미암아 인간은 스스로를 알게 된 거지.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지 몰라.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 결국 ‘자기 언급’, 즉 ‘나는 바보야’라고 생각하는 게 선악과가 의미하는 지식의 열매인 거지.”

그 열매는 미추(美醜)의 열매이고 진선미(眞善美)고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그런데, 지식의 열매가 의식주? “지식이, 지혜가 바로 의식주여.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게 식(食)이잖아.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린 게 의(衣)지. 덤불 속에 숨은 게 주(住)라고. 생각해 봐요. 먹고, 입고, 숨으면서 인류의 의식주 걱정이 드디어 시작됐다고. 의식주 걱정이 바로 지식의 열매에서 나온 겁니다.”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 지식의 열매가 궁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죽음’이며, 그것이 페스트이고 코로나19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걸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베일에 가려졌던 그 얼굴이 코로나19 창궐로 흉하고 무서운 얼굴로 도시 전체, 나라 전체, 지구 전체로 일시에 드러났다. 이는 경험에서 오는 죽음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靈), 영성에 가까워진 것이라고 그는 풀이했다.

이어령 교수는 감각과 경험이 아닌 ‘이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죽음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understanding)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역시 통념과는 다른 패러독스, 역설이다. 개별적 존재의 죽음이 아닌 인류의 죽음, 한때 옆에서 눈물 흘려줄 사람도 없이 그냥 죽어야 했던 코로나19 시대의 죽음은 우리를 더 절박해지고 더 불안해지게 했다.

그 ‘죽음’은 이 교수가 여섯 살 때 문득 깨닫고 눈물 흘린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 교수의 빈소. 소강석 목사가 조문하던 모습. ⓒ크투 DB

▲이어령 교수의 빈소. 소강석 목사가 조문하던 모습. ⓒ크투 DB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보여주었다.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죽음과 신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 속에서 다가온다는 겁니다(메멘토 모리).”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죽음에 관한 것 아닙니까? 백 마디 말 해도 소용 없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 탄생과 죽음입니다. 종교만이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하지요. 그러니 나의 종교는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딸은 훌륭히 그걸 해냈지요. (본지 2018년 인터뷰 중).”

코로나 패러독스의 마지막에는 기독교가 있다. “오늘날 불신받고 쇠퇴해가는 기독교에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그 힘을 되살려내는 희망입니다. 이는 ‘크리스처니티(Christianity)’가 새롭게 해석되고 기독교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흔한 말로 ‘위기는 기회다’. 기독교에 늘 있어온 일 아닙니까.”

교회는 늘 핍박받았고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처럼 인식돼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지만, 반전의 기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페스트를 겪으며 무신론이 나왔지만 거꾸로 더 기독교적인 게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교회에 갈 수 없고 교회가 병균의 온상지처럼 비춰 결과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기독교가 타격을 받는 것처럼 비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새롭게 보이고 소위 ‘얼굴이 드러났다’, 민낯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격리된 공간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아마 예수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난 거야. 보통 때 볼 수 없던 교회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난 겁니다.”

지성과 영성, 의문과 믿음,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그 ‘문지방’ 위에서 평생 사유하고 질문해온 이어령 교수는 <메멘토 모리: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에서 ‘하나님의 존재’ 증명부터 창조와 진화, 고통과 불행, 죄악과 속죄, 성경과 종교, 영혼, 천국과 지옥, 윤리, 종말까지 특유의 감각적 언어와 비유,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고 있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123 신앙과 삶

The Plague in the Reign of David 다윗 역병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뒤에 스스로 회개하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그를 경책하셨다. 이전의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선수였다…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북한인권정보센터

강제북송 98.9%가 중국서… 10~30대 여성 피해 다수

불법 구금, 강제 북송, 생명권 침해 가장 심각 통신 및 정보 이용 제한, 20년간 44배나 증가 대량학살, 고문, 종교 박해, 강제 낙태 등도 (사)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10일 『2024 북한인권백서』(이하 백서)를 발간했다. 이는 2020년 이래 4년 만이…

한국기독교영화제 KCFF

제8회 한국기독교영화제, 10월 24-26일 코엑스에서

개막작 폐막작 대상작 할리우드 멘토링 제공 기독교 영화제 정체성 분명히 제8회 한국기독교영화제(Korea Christian Film Festival, KCFF)가 오는 10월 24-26일 3일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과 메가박스에서 개최된다. KCFF는 영화라는 매개체로 기독교인들과 비…

시니어 선교대회

2024 시니어 선교대회 개최… “액티브 시니어들이여, 일어나라!”

교회 부흥과 산업화의 중심에 있던 시니어세대 주님 향한 일사각오의 신앙이 가장 중요한 유산 건강·돈보다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것이 중요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 성령의 능력 구해야 2024 시니어 선교대회가 10일 오전 사랑의교회 본당에서 “늙어도 …

‘미국대선과 한반도 평화통일 전망’을 주제로 미래목회포럼

美 대선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과 한국교회의 역할은?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올바른 가치관 갖는 게 중요 건강한 대한민국뿐 아니라 건강한 미국도 필요해 한·미 공통의 주적, 자유문명 위협하는 ‘반기독교’ 이승만 대통령 소개 후 전략 제시 “미국과 한국 공통의 주적은 자유문명을 위협하는 반(反)기독교 운동…

예장 통합 총회 109회기 시무예식

통합 김영걸 총회장 “교단 위기, 사랑으로 헤쳐나갈 것”

“전 총회장, ‘불찰과 부덕, 죄송’ 사과… 같은 마음 총대들의 기도와 협력, 격려 속에 희망의 소리도 올바른 발전 위해 윤리·제도·법적 장치 강구할 것” 예장 통합 김영걸 총회장이 지난 회기 교단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 사과하며 “교단이 올바르게 발전하…

한기총

한기총, ‘한국교회의 밤’ 12월 20일 롯데호텔에서 열기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이하 한기총)는 지난 8일(화)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한기총 회의실에서 제35-7차 임원회를 개최했다. 참석 22명, 위임 33명으로 성원이 돼 열린 회의에서는 개회선언, 전회의록 채택, 경과 및 사업보고…

이 기사는 논쟁중

동성결혼

동성 커플 22명, ‘동성혼 허용’ 소송 나서

대법원이 지난 7월 ‘동성 파트너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이후, 친동성애 세력의 전방위적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모두의결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