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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란 무엇일까. ⓒ픽사베이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반응이 다양하다. 꽃으로 때려도 상처가 되는 사람, 몽둥이로 때려도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과 감사로 받을 수 있으며, 그 고난 받은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행하는 전인적인 치유는 이 성장과 영광을 경험하게 하는 긍정 통로가 된다. 즉 고통을 치유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약 5:12-21).

C. S. 루이스(C. S.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은 우리가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악일뿐더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악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거워할 때는 속삭이시고,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는 보통의 소리로 말씀하시고, 우리가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는 큰 소리로 외치시는 분이시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메가폰인 것이다.”

고통이 우리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치유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죄로부터 해방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고통과 질병을 사람들의 적으로 이해하셨고 그것은 악을 그 근원으로 하고 있으며, 사단의 왕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시고 당신께로 오는 사람들을 치유하셨다. 가장 깊고도 무서운 병은 죄이며 육체적 질병이나 가난과 같은 결과들은 죄를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해서 병든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모두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모든 질병과 가난, 그리고 죄악이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형태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표지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인은 고난을 반드시 받을 수 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7).”

바울을 포함한 신약 성경 기자들은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성이 이 고난을 통해 약화되기 때문이다. 치유사역은 고통을 극복하고 인내하도록 하여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하게 하는 목회사역이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고후 1:5).”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 4: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김온유
▲김온유 목사.
김온유 목사
총신대학교 책임교수
선한이웃교회 당회장
국제전인상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