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난립 시대’에 빛 발했던, 존 위클리프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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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단자들 19] 존 위클리프 2: 공의회 운동, 공의회주의

여러 교황 동시에 나와 정통성 주장할 때
누가 합법적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교황, 주교, 신학자도 오류 범할 수 있어
위클리프 신학사상, 이 과정에서 태동해

▲존 위클리프에 대한 이단심문 상상도.

▲존 위클리프에 대한 이단심문 상상도.
2. 공의회 운동, 공의회주의

위클리프의 신학사상은 14세기에 교황좌를 둘러싸고 일어난 정치적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 과정에서 태동하고 제시되었다. 위클리프가 제도, 교회의식, 교리의 개혁, 곧 교회론, 교황제, 성찬론 등을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근본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혁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배후에는 교황청의 비극적인 역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교회는 교황청의 권위가 극도로 약화되자, 개혁을 꾀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체 공의회에 눈길을 돌렸다. 여러 명의 교황들이 동시에 정통성을 주장할 때, 누가 합법적인 교황인가를 판단할 권위를 가졌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대해,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공의회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의회 운동은 교황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로마인들은 ‘로마의 교황’이 프랑스의 노리개가 됨을 걱정했다. 교황을 선출하려 모인 추기경들을 건물 안에 가두고, 이탈리아인을 교황으로 선출하라고 요구했다.

프랑스 출신 추기경이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은 프랑스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을 선호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인 대감독 바리가 1378년 부활절 우르반 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등극했다.

우르반은 조심성이 없는 인물이었다. 자기의 신념을 실행할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 없이, 기득권을 가진 추기경들을 비난했다. 우르반을 경계하는 추기경들은 그가 정신이상자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친척을 요직에 임명하는 족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우르반은 자기를 지지하는 이탈리아인 26명을 추기경에 추가 임명하려 했다. 추기경들은 우르반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포위된 상태에서 강제로 선출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르반을 교황으로 선출한 추기경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다 새 교황을 선출하려고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그들은 여러 달 동안 우르반이 부여한 임무를 군소리하지 않고 수행하던 자들이다.

이탈리아인 추기경들도 그 자리에 참석했지만, 이 주제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클레멘트 7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동일한 추기경들이 두 명의 교황을 뽑은, 전대미문의 모순을 연출했다.

유럽 사회는 두 명의 교황을 둘러싸고 전전긍긍했다. 교황 클레멘트 7세는 군대를 일으켜 교황 우르반 6세를 제거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우르반은 로마 바티칸에서, 클레멘트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유럽 각지의 교회들과 세속 정부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두 교황이 사망한 뒤에도 갈등은 계속되었다. 각각 다른 후계자 교황들은 자신들의 권좌를 계속 유지하고, 대적에게 대항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모으려고 성직 매매를 일삼았다.

위클리프의 신학과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교회개혁 운동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이와 관련된 교회사 지식이 필요하다. 위클리프 생전과 사후에 진행된 교황직을 둘러싼 교회 갈등의 역사는 신앙과 행위의 최고 ‘권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신행(信行)의 최종 권위가 교황에서 공의회 운동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두 교황을 모두 사퇴시키려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회의 모습을 지켜본 신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공의회 운동과 공의회주의(Conciliarism)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이러한 맥락에서, 성찬 중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실제적인 살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化體說)을 공식 교리로 채택했다. 그리고 모든 신자가 1년에 최소한 한 번의 참회 고백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새로운 수도단 설립을 금지하고, 대교회당 설교 규칙을 정했다. 감독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했다.

그 무렵 최대의 관건은 교황의 정통성 논란을 종결지을 공의회를 소집할 권한을 누가 가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감독들은 1409년에 피사에서 합동 공의회를 열었다. 온건한 개혁 성향을 가진 추기경들이 모임을 주도했다.

아비뇽에 있는 교황과 로마에 있는 교황은 공의회 소집을 방해했다. 피사 공의회는 누가 합법적인 교황인지 따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비합법적으로 선출되었다고 선언했다. 제3의 인물인 알렉산더 5세를 교황좌에 앉혔다.

은둔해 있는 두 명의 교황들은 피사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한꺼번에 세 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되었다.

알렉산더 5세는 교황좌에 오른 지 1년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추기경들은 교황 요한 23세를 선출했다. 요한은 보호를 요청할 목적으로 적수 교황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적 분쟁이 심한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의 황제 지기스문트에게 찾아갔다.

황제는 또 다른 공의회 소집에 합의한다는 조건으로 그를 보호했다.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가 모였을 때, 교황 요한 23세는 자신이 교황으로 추인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맹목적인 야망과 생활 태도를 싫어한 추기경들은 사임을 요구했다. 요한은 도주했고, 우여곡절 끝에 사로잡혀 강제로 퇴위당했다.

로마에 있던 교황 그레고리 12세가 사임하자, 그곳 추기경들은 공의회가 지명한 위원들과 규합하여, 마틴 5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아비뇽에 머물던 또 다른 교황 베네딕트 13세는 성채로 도주하여 머물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후계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교황은 한 명으로 좁혀졌다. 마틴 5세가 유일한 교황이었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교황으로 말미암아 생긴 교회 분열을 종식시키고, 이단을 척결하며 부정부패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성직매매, 성직중임제, 궐석성직제에 대한 칙령을 반포하는 등 도덕적·제도적 개혁에 그쳤다.

절실한 것은 교리 개혁이었다. 공의회는 이단 박멸에 열을 올리면서, 죽어 매장된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위클리프의 추종자인 보헤미아 지방의 교회개혁자 얀 후스도 화형에 처했다.

교황 마틴 5세의 후계자 유게네 4세는 공의회를 못마땅하게 여겨 해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공의회의 힘이 너무 막강했다. 교황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의회도 두 개로 분열되고, 교황도 다시 두 명이 존재했다. 교황들의 권력이 강성해지면서 공의회는 점차 교황청의 정책을 수행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공의회 운동은 교회의 윤리적 타락과 무질서를 개혁하려고 했다. 운동은 부분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 자신들이 부정부패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개혁을 단행해야 할 자들이 개혁을 싫어했다. 그들은 성직 궐석제, 성직 중임제, 성직 매매에 개입되어 있었다.

공의회 운동과 공의회주의는 교황도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 교황이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켰다.

“공의회는 권위를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여받았으며, 교황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계급과 조건을 막론하고, 공의회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며, …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고 선언했다.

공의회는 교황의 퇴위를 결정할 수 있었다. 누가 올바른 교황인지 판단하는 권위를 지녔다.

교황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어떤 실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틈바구니에서, 교회 개혁을 향한 꿈틀거림은 시작되었다. 교황, 주교, 신학자,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반면, 평신도일지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합리적으로 사고(思考)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신념이 널리 퍼졌다.

지식인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신앙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의 권위와 그것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위클리프의 개혁 신학은 공의회 운동이 가져온 신앙과 교회의 최종 권위에 대한 새로운 신념 형성 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최덕성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최덕성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위대한이단자들: 종교개혁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6장 1부 중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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