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카페 유명 그림 전시, 불신자들 들어와
접촉점 위해, 윤동주 전시회 일반 화랑에서
<동주> 영화 십자가 바라보는 장면 삭제돼
기독교인 투자해 지분 있었다면 지켰을 것

교회건강연구원 이효상 목사
▲한국교회연구원 이효상 원장. ⓒ크투 DB
한국교회건강연구원이 2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연구원(이사장 정연철 목사)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했다. 이를 이끄는 이효상 원장은 지난달 ‘기독교 유권자 정치참여 어떻게? 투표참여 어떻게?’라는 주제로 20주년 기념 포럼을 열고, “교회 폐쇄와 낙태 합법화에 동조하는 후보는 곤란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와 함께 이효상 원장은 남양주 다산신도시가 만들어진 뒤 이곳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이곳에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사무실을 열고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이효상 원장과의 일문일답.

-연구원 활동이 20주년을 맞았습니다.

“1994년 충현교회에서 처음 목회자 세미나를 하면서, ‘장기목회’라는 타이틀을 걸었습니다. 7-8년 후 한국교회건강연구원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에서 ‘교회건강 컨설팅’ 과목이 있던 때였지요.

그렇게 2002년 2월 20일 한국교회건강진단연구원을 시작해, 꼭 20주년이 됐네요. 그동안 미래목회포럼 CBS 리바이벌클럽, 한국미래포럼, 고대목회자교우회, 종자연 대책위원회, 동성애 대책위원회 등 10여 곳의 단체를 인큐베이팅했습니다.

미래목회포럼은 목사님들, 얼마 전 기도회를 열었던 한국미래포럼은 장로님들이 중심입니다. 목사님들만으로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어, 평신도 모임을 만든 것입니다. 둘 모두 한국교회 싱크탱크를 표방했습니다.

연구소의 필요성은 1994년 <월간목회> 대표 박종구 목사님이 처음 제기하셨습니다. 그것을 구체화시킨 것이 한국교회건강연구원, 미래목회포럼과 한국미래포럼 등입니다. 이런 단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20주년을 맞아 연구소 이름에서 ‘건강’을 빼셨는데요.

“교회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모두 인식하고 있습니다. 매년 사람들이 건강진단을 받듯, 교회도 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문제나 사고가 생기면 예전에는 기도원에 가서 해결했습니다.

교회에도 청진기를 들이댈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피해가려 합니다. 우리 교회가 30대 청년의 모습인지, 50대 중년 여성의 모습인지, 아니면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70대 사장님 같은 모습인지 진단하면 다 나옵니다.

어떻게 가야 하고, 교회 정체성을 어떻게 일체시킬 것인가? 기도와 선교, 이웃섬김 등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어느 방향을 지향하는가? 등이 나와야 합니다. 목회자가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만 해선 곤란합니다. 컨설팅은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 5-10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이 외에 교계 연합사업과 목회자 연장교육, 평신도 지도자훈련, 불신자 영혼구원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을 위한 153 기도훈련, 119 관계전도훈련, 300용사 제직훈련 등입니다. 요즘 불신자 대상 ‘행복축제’를 많이 하는데, 제가 가장 먼저 사용한 용어입니다.”

다산문화예술진흥원
▲남양주 사무실 개소식에서 이효상 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진흥원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원장도 맡고 계신데요.

“교회 건강 운동을 하면서, 20여 년간 근대 문화에 대한 관심을 함께 기울였습니다. 근대는 6.25와 해방, 멀게는 다산 정약용 선생까지를 기점으로 봅니다. 기독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자 원동력, 자산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제를 놓치고 오늘을 살아가는데,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자산들이 큰 힘이 됩니다.

2005년 한국예술문화원이 다산근대문화진흥원으로, 다시 다산문화예술진흥원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한국교회를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교회를 지은 뒤 학교와 병원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에 공헌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름을 ‘다산’으로 붙인 것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한 시대의 이정표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신교뿐 아니라 불교 천주교까지 포함해, 그의 학문과 사상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되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산은 500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근대 문화의 주인공은 기독교이고, 거기서 30-50년만 더 들어가면 다산이 나옵니다. 최고 학자를 문화·학술·종교적으로 브랜드화한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묶을 수 있는 것도 다산 정신입니다.

다산의 고향인 ‘남양주 문화원’으로 할까 했지만, 지역에 갇힐 우려가 있었습니다. 대신 ‘다산’을 붙이면 유배지인 강진부터 전 세계로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윤동주처럼 세계화와 한류 브랜드로 문화의 품격을 높이고, 제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도시 비전과 경기도까지 품을 수 있습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소강석
▲지난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이효상 원장이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 ⓒ크투 DB
-말씀하신 윤동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지요.

“일제강점기에 핍박받은 이들이 만주로 가서, 만주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습니다. 만주를 변방으로 여기면, 그곳에 남은 신앙의 가치도 함께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한류 문화의 원조가 있습니다. 미술은 기산 김준근, 문학은 윤동주 시인입니다. 윤동주는 국내를 넘어 러시아와 중국, 일본뿐 아니라 유럽에도 알려져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시인입니다. 한용운은 몰라도 윤동주는 알아요. 재평가돼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려면, 접근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2주 동안 인사동 갤러리를 빌려 전시회를 열고 매일 행사를 했습니다.

교회나 기독교 기관을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러면 교인과 목회자들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1천만 원 이상 비용을 들여 인사동에서 2주간 했더니, 수녀도 승려도 오시고 수천 명의 일반인들이 다녀갔습니다. 비기독교인 비율이 30% 이상 됐다고 봅니다.

기독교 문화도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 교회 용어로 만들어 버리면, 그 틀에 갇힙니다. 시인 윤동주를 영화로 만들면, 안 믿는 사람들과 그의 시 ‘십자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클라이맥스 부분에 ‘십자가’ 시와 함께 종탑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부분이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종교색이 짙다’는 이유로 삭제됐습니다. 기독교에서 조기에 투자해 지분을 갖고 있었다면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순교 영화도 훌륭하지만, 7-10만 명이 봤습니다. 하지만 <동주>는 극장에서 150만 명, IPTV까지 하면 200만 명 이상입니다.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보기에 좋다 해서, 일반인들이 알아서 찾아오진 않습니다.”

-요즘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활발히 활동하시죠. 교회들은 어떤가요.

“다산 한 교회 1층을 식당으로 만들길래, 커피숍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10대 화가들의 유명 그림 20여 점을 기증했습니다.

그렇게 1층을 카페 갤러리로 만들었더니, 비기독교인들도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김환기, 천경자, 박수근, 장욱진 등의 작품은 갤러리에 가도 보기 힘듭니다. 비기독교인들이 보고는 독특하다고 합니다. 교회 카페나 갤러리는 예수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하면서요. 전도 대상자를 데려오기가 무척 쉬워졌지요.

차 마시는 분들,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찾습니다. 교회 문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거노인 등을 돌보는 희망케어복지센터가 남양주 동서남북에 있는데, 직원들 식사를 대접하고 교회에서 후원하도록 했습니다. 다산 지역에 음악 문화가 없어 오케스트라를 모집하고, 청소년 자원봉사 단체 고문도 맡는 등 기부와 후원을 통해 지역 단체들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효상 주광덕
▲(오른쪽부터) 이효상 원장이 다산신도시에서 열린 주광덕 전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근대문화진흥원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지역을 영적인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산을 특별시로 만드는 브레인이자 디자이너로 섬기고자 합니다. 목회자들에게도 도시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씀드립니다. 남양주는 지금 도시도 농촌도 아닌 신도시인데, 어떤 도시로 만들 것인가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몫이 큽니다.

남양주에서 4년간 길을 닦고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함께하는 분들이 30여 명 되는데, 그런 그룹이 10개가 되면 300명입니다. 이제 다들 만나고 싶어합니다. 일일이 찾아다니기 어려운 시점이 됐기 때문에, 사무실을 열고 센터를 세웠습니다. 도전해야 변화도 개혁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20년을 향한 비전이 있으시다면.

“한국교회 방향성 제시와 함께, 연합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지금 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꿰어보려 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은, 이해타산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가장 객관적일 수 있는 곳이 저희 연구원입니다.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당시, 한기총과 NCCK의 연합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 정관을 만들고 주도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양 측의 소통을 맡았는데, 결국 실패했지요. 이후 15년 동안 분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NCCK와 한기총을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만들려다 어긋난 이후, 지금은 3-4곳이 됐습니다. 당시 ‘이번에 하나 되지 못하면 한기총이 두기총, 세기총 된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현실이 됐습니다.

이와 함께 가까이는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문제, 전임자 후임자 간 승계와 청빙 절차 등 문제를 연구하고 세미나를 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