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그 뜻이 정확히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쓰였던 시대로 돌아가 저자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즉 저자가 성경을 쓸 당시의 언어를 이해하고 당시 역사를 알고 문화를 깨달아야, 성경 구절들을 저자의 의도대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왜 읽기 어려울까?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를 저술한 류관석 교수는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책은 출판사의 대표적 신학 연구물 중 하나인 ‘고대 근동 시리즈’ 38번째 책이지만, 학자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 있어 많은 목회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류관석 교수는 기존 ‘성경 배경사’ 연구가 정치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그 정치사를 존재하게 만든 문화적 배경에 주목해 당시 사람들이 크게 영향을 받았던 자연환경에 따른 문화의 형성에 초점을 맞춰, 성경의 이면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고찰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과 비교해 가장 필요했던 것이 ‘비(물)’ 문제였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주변국과의 관계, 즉 성경 역사에 미친 영향을 풀어 쓴 것이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이다. “물을 알아야 성경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류관석 교수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된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성경이 어떤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됐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란, 일상생활 속에 이뤄지는 삶의 방식
이스라엘 백성들 삶의 방식 연구, 아직 부족
우리나라 ‘땅’ 중시하듯, 이스라엘 ‘물’ 중시
바알 유혹, 가나안 전 지역 가뭄일 때 기승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류관석 | CLC | 492쪽 | 24,000원

-처음부터 신학을 하진 않으셨는데, 신학을 하시고 목회가 아닌 연구에 발을 들이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종교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믿음 생활이라는 것에 대해, 불완전한 인간의 도피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신학과 반대에 있는 철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철학을 4년 동안 공부해 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인간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철학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고, 철학의 각종 방법론에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친구의 전도로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믿음의 세계가 주는 기쁨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광고회사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적인 신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복음도 광고’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충격을 받은 저는 복음이라는 광고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많은 학문 분야 중 성경 배경사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성경은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자꾸 생기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쓰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가 녹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한국식 문화에 익숙한 저는 성경을 한국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성경 배경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역사적 접근을 한 성경 배경사 연구는 많이 있었지만, 역사는 단지 문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주제나 소재에는 모두 이스라엘 문화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 이해에 보다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나오자 많은 목회자님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셨는데, 그 동안 문화배경사에 대한 갈증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경에 따른 역사의 진행을 보니, 최근 인기 있는 유현준 교수의 저서도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고대 근동이나 배경사 도서들 중 가장 쉬운 것 같습니다. 쉽게 쓰시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이 책이 나오기 전 두 권의 책을 썼는데, 페이지 수도 많았고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말투부터 존댓말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책은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 차기 쉬운데, 저는 가능한 한 딱딱한 용어들을 빼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어로 쉽게 쓰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루하루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언어로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그림이나 사진들도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첨부하여, 일차적으로는 본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지루한 글자만의 편집에서 벗어나 독자들의 눈이 피곤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구약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초승달
▲구약 당시 비옥한 초승달 지역(메소포타미아) 지도.
-고대 사회 속 물(비)의 중요성에 주목하셨습니다. 물론 고대인들에게 ‘물’이 중요했겠지만 말씀하셨듯 우리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데, 오늘날의 우리에게 절실한 그 무엇과 비교하면 좋을까요.

“물은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화가 다 물을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면, 물을 얻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말 그대로 비옥한 땅은 많지만 물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이 이 지역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문화가 반영된 성경에서도 물이 다른 어떠한 요소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집니다. 즉 한국은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 걱정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물보다는 땅 걱정을 더 많이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되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에 땅 투기 문제가 큰 사회 이슈가 되었지만, 이는 고려나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문화마다 그 지역의 특징적인 자연 환경에 따라, 풍부한 것이나 부족한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 즉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는 자연환경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좀 더 당시의 절실함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결국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관점이 아니라, 제1저자(하나님)와 제2저자(모세와 마태 같이 성경을 직접 쓴 저자들)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게 하신 것은 먼저 제1 독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2저자가 모두 이스라엘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생활 패턴, 같은 세계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공유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애굽이나 로마 제국의 문화적 관점에서 성경을 썼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전진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공감하려면, 제2독자인 우리가 이스라엘 문화를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신명기 28장에서 축복과 저주의 핵심 요소로 ‘물(비)’을 거론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숨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알아야 성경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고, 성경에 나오는 여러 비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 애굽 이집트
▲태양신을 섬겼던 이집트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려주는 그림.
-위 질문과 비슷한데,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2천 년 전에 그곳에서 기록된 말씀을 읽기에, 당시의 환경에 그리 주목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 텍스트 속 여러 사건과 말씀들은 당시 환경의 영향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배경사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문화 배경사는 매우 폭이 넓습니다. ‘문화’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처럼, 문화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물 외에 여러 중요 요소가 있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 먼저 언어를 꼽고 싶습니다.

성경의 원어를 한국말로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잘못된 번역은 잘못된 해석을 낳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에덴) 동산’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물이 풍족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원(‘물 댄 정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해석된 ‘동산’에는 물이 없습니다. 이런 해석은 에덴 동산이 바로 물로 인하여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정원도 바로 에덴 동산과 같은 곳입니다. 즉 계시록의 천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속으로 가장 원하는 장소로 비유되어 표현된 것입니다. 언어는 문화 자체를 반영하는 요소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구약성경 문화배경사
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화적 요소로 고고학적 발견을 들고 싶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너무 전문적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성경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좀 더 쉬운 언어로 풀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외에 농업, 목축, 옷. 집, 혼인, 출생과 사망 등 많은 문화적 요소들이 있지만,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 즉 의식주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입니다. 이런 점들에 관심을 두고 이스라엘 문화를 연구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어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각종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바알이나 아스다롯과 비교한 하나님은 어떤 존재와 느낌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면서, 동시에 바알도 섬겼던 것입니다. 다신(多神)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태도는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바알의 유혹이 가장 커지는 때는 가나안 전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이들은 비를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도 기도했지만, 동시에 바알에게도 제물을 바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산꼭대기마다 모여 자해를 하면서 큰 소리로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가나안 7족속의 요란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바알에게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비만 내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바알은 가나안에 특화된, ‘비’를 전문으로 하는 신이었습니다. 이는 양다리를 걸치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산상강화에서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계시록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다리 작전’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약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하나님 구속사의 완성도 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약 바알
▲바알신.
-당시 척박한 이스라엘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애굽은 선진국이고 이상향 같은 곳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부를 부러워한 것은 맞지만, 다행히 애굽의 최고 신인 태양신을 바알처럼 숭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나안에서는 태양의 가치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바알을 섬기는 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가나안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없는 태양이 아니라 문제가 많은 비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인류학적 관점으로 볼 때, 종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태양(日)신보다 ‘달(月)신’이 훨씬 지위가 높았고, 또 많은 도시들이 달신을 섬겼습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태양은 도움보다 고통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 그 존재 가치가 현저히 떨어졌을 것입니다. 대신 서늘한 휴식을 주는 달은 이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가치를 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고대 종교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신이 가장 잘 해결해 주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남미 안데스 산맥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동굴의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우상 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단연코 바알입니다. 그만큼 비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