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와 영적 불임증에 도전했던 ‘이단자’ 존 위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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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단자들 18] 존 위클리프 1: 교회개혁의 새벽별

유럽 급격한 변화와 발전 이끈 종교개혁 선구자인가
중세 후기 사회와 교회의 체제 변질시킨 이단자인가
전자는 기득권과 힘의 논리, 로마가톨릭교회의 관점
후자는 성경과 성경 진리, 프로테스탄트교회의 관점

▲존 위클리프.

▲존 위클리프.
존 위클리프: 교회개혁의 새벽별

종교개혁의 새벽별, 영국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30-1384)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대조적이다. 한편에서는 중세 후기 사회와 교회 체제를 변혁시킨 이단자로 여기고 그의 학문적 업적을 교회분열 운동,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단 운동의 서막으로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유럽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이끈 주체,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기득권, 힘의 논리, 로마가톨릭 교회의 관점으로 보면 전자의 판단이 옳고, 성경, 성경적 진리성,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후자의 평가가 옳다.

위클리프는 중세에서 현대 초기로 바뀌는 전환기에 살았다. 아퀴나스주의와 스코투스주의 체계가 몰락하고, 오캄주의를 둘러싼 현대적 사상운동이 흥기하던 시기였다. 옥스퍼드에서 약동하던 어거스틴주의는 위클리프에게 성경에 충실한 신학적 통찰을 하는 눈을 제공했다. 교회가 당면한 현안들을 심도 있게 비평적으로 논의하게 했다.

위클리프는 학자형 ‘이단자’이다. 사도적 형태의 교회 회복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철학자로 등단하여 신학자로 생을 마쳤다. 사후 20년 뒤, 교회는 그의 시체를 꺼내 이단자로 정죄하고, 화형에 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의 이단 정죄는 위클리프를 역사의 거성(巨星)으로, 정통 신앙의 불멸의 증인으로 등장시켰다. 그에게 항구적인 영광을 안겨주었다.

독립적인 발상, 비평적 사고 능력을 가진 신학자 위클리프는 마지막 10년 동안 정적들을 놀라게 한 탁월한 글들을 썼다. 방대한 학문적 업적과 탁월성은 후학들의 머리를 숙이게 한다.

초기 저작들은 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었으며, 후기 저작들은 신앙고백공동체가 당면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련된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었다.

위클리프는 자기 시대의 교회에 필요한 신학적 답을 제공했다. 그의 주장은 대부분 성경적이며 합리적이었다. 불의한 교회 권력과 무지한 종교 관습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 한 명의 신학자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며, 왜 그토록 소중하며, 어떤 종류의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1. 신학자 위클리프

요크셔 지방 출신 위클리프는 로마교회 독실한 신자였다. 1340년 초가을 옥스퍼드의 발리올칼리지에 입학했다. 옥스퍼드에 6개의 단과대학이 있었을 때였다.

그는 대학에서 기독교사상사, 아퀴나스주의, 스코투스주의를 포함한 역사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라틴어 텍스트들과 씨름했다. 라틴어로 강의를 듣고 설교를 했다. 법학, 수학, 천문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석사 학위(1361)를 받고, 8년을 더 수학하여 박사 학위(1372)를 받았다. 옥스퍼드에서 15년 동안 인문학, 철학, 신학을 공부했다.

당시 옥스퍼드의 학생들과 성직자들은 한 종류의 가운을 입고 생활했다. 학교에는 학생보다 수도사와 사제들이 더 많았다. 어느 교회사가는 위클리프가 목격한 수도원과 같은 당시 옥스퍼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위클리프는 돌아다니는 수많은 성직자들을 보고서 놀랐다. 어떤 사람은 연구도 하지 않고 직업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방랑자들을 보고 놀랐다. 성인들의 유골을 팔고, 위조된 무용지물의 교황 교서들을 팔아먹는 면죄부 판매자들도 보았다. 그는 탁발수도사들이 작은 간이용 제단을 들고 다니면서 지역 성직자들과 경쟁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말씀이 전파될 때면 천민들과 함께 가치 없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모든 방랑자들이 밤에 주막에 모일 때마다 농촌 사람들과 도시인들은 무슨 소식이라도 들으려고 함께 모였다. 탁발수도사들과 행상인들이 그 당시에 우편물과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위클리프의 학업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까닭은, 형편없는 위생 조건과 흑사병, 그리고 지속되는 교내 갈등과 관련돼 있다. 함량 미달의 수업에 불만을 가진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지역 관계자들에게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63명이 죽었다.

탁발 수도사 신분으로 가르치던 교수들은 학교를 떠났다. 상급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옥스퍼드의 수도사들과 지역 사제들 간의 계속되는 주도권 다툼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없었다. 위클리프는 학부 과정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에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오랜 기간 옥스퍼드 학업에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의 큰 몫은 영지를 가진 위클리프의 부친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 위클리프는 사제였지만, 교회가 주는 녹봉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교황청이 그의 사상을 달가워하지 않은 탓이다.

위클리프는 사제가 없는 여러 교회들을 한꺼번에 맡아 돌보아주고, 그 사역에서 생긴 돈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 학비와 생활비는 학생의 행동의 폭을 결정한다.

사제 위클리프는 1370년에 옥스퍼드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중세 신학의 표준 교과서이며 필수 과목인 피터 롬바르드의 『문장론』을 가르쳤다. 그리고 신학과 철학 연구에 매진, 몰두했다. 유머감각은 없었지만, 뛰어난 화술과 엄격한 논리로 명성을 얻었다.

위클리프는 철학자로 등단했다. 옥스퍼드의 사상 풍조가 자연 지식과 초자연 지식을 구분하면서 회의주의에 기울어지자, 그것에 반대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사상은 오랫 동안 겪은 쓰라린 고통과 소외와 고독한 씨름을 거쳐 발전했고, 어거스틴의 신학전통에 서 있었다.

위클리프의 신학사상은 옥스퍼드의 어거스틴주의 지식인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었다.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교수는 교황 비판으로 유명했다. 위클리프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그의 주장을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옥스퍼드 머튼칼리지 학장이며 교수인 토머스 브래드워딘은 펠라기우스주의 및 마니교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선행의 관계를 은혜의 필요성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은혜와 자유의지를 연속적으로 강의했다. 강의한 것을 토대로 저술한 책에서 당시의 영국교회가 펠라기우스의 뒤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학 강의실에서조차 은혜에 관한 한 마디 말도 듣지 못했고, 종일 듣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 의지의 주인이라는 주장뿐이라고 했다. 브래드워딘은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논설로 명성을 얻었다. 1366년 두각을 나타낸 위클리프의 사상은 브래드워딘의 은혜 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발리올칼리지 학장이며 교수인 리차드 피쯔랄프는 프랜시스 수도단 수도사들 비판으로 유명했다. 신자의 죄의 고백을 듣는 권한과 죽은 자들을 땅에 묻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수도사들의 주장을 공격했다. 피쯔랄프는 학문 논의에서 통치(dominion)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은총에 기반을 둔 통치’는 14세기 중엽 옥스퍼드 학풍의 주요 개념이었다.

위클리프는 이 용어를 수용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국가의 주권에 대해 논의하면서 종종 피쯔랄프를 인용했다. 프랑스와 전쟁으로 영국인의 애국심이 한참 고조될 때 쓴 두 편의 방대한 논문에서, 군주가 자기 영토에 있는 교회의 세속적 문제들, 심지어 세속 재산에까지 주권을 지닌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위클리프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파두아의 말시글리오와 안둔의 존은 제한적 교황권 이론을 제시하고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위클리프는 교황권에 도전한 선배들의 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접했을 가능성은 크다. 어느 위클리프 연구가는 그가 오캄의 윌리엄의 작품을 접하면서 말시글리오의 견해를 배웠을 수 있다고 한다. 위클리프가 반세기 전 학자들의 사상을 수정하여 자신의 주장으로 천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자의 지식은 다른 학자와 타인 작품과의 상호 작용으로 풍요로워진다. 위클리프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는 독자적인 발상, 비평적인 사고 능력을 가졌다.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거대하고 견고한 교황제도에 용감히 도전했다.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책을 저술했다.

그의 작품들은 통상적인 추측을 뛰어넘는다. 독창적이고 풍요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위클리프의 사상은 성경과 어거스틴의 작품에서 강한 힘을 공급받았다. 독창성과 비평적 능력을 가진 이 지성인은 신학, 철학 분야의 방대하고 탁월한 저작물들을 남겼다.

위클리프의 학문성은 스콜라주의 학풍과 관련이 있다. 스콜라주의는 유명론과 실재론을 둘러싸고, 과격하리만큼 활기찬 논쟁을 펼쳤다. 비평적 지식인들은 유명론을 지지했고,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실재론을 지지했다.

본질이 개체 또는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면 그 개체가 속한 더 넓고 전체적인 것은 무엇인가? 유명론은 개별적인 것들만 실재하고, 보편적인 것들은 지식인들이 꾸며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실재론은 보편적인 것만이 실재하며, 인간 마음의 관념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했다. 유명론과 실재론은 로마 교회와 교황의 존재, 권위 그리고 성찬론 이해에 직결되어 있다.

위클리프는 실재론자였다. 둔스 스코투스와 옥캄의 윌리엄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론을 거부했다. 위클리프 철학의 핵심은 개인이 우주적인 계급을 거쳐 왔으며, 본질적으로 불변하고 파괴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실재주의를 반영한 위클리프의 철학은 초기부터 종교적 색채를 가졌으며, 회의주의와 영적 불임증에 도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위클리프가 교황청을 향하여 도전장을 낸 직접적인 동기는 영국 왕실 봉사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아들 곤트의 존은 위클리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궁정에서 일하도록 초빙했다.

1381년에 부왕이 죽자 미성년자로 왕위를 계승한 존은 리처드 2세가 등장할 때까지 영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렸다. 위클리프는 1376년에서 1378년까지 왕실의 외교가·논쟁가로 봉사했다.

위클리프는 교황청과의 협상에서 교회의 음모와 교황의 정치 책략으로 이루어진 협약에 환멸을 느꼈다. 이 사건은 그에게 교회개혁의 각오를 다지게 하여, 고위 성직자들의 부귀와 교회의 세속화를 공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인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주권(Lordship)과 청직이직(Stewardship)에 대한 세 권의 책을 저술하는 동기였다.

위클리프는 왕실에서 일한 덕분에 영국인들에게 애국적 인물로 부상했다. 교황 그레고리 11세는 위클리프에 대한 18가지 죄목을 발표했다. 교황 덕분에 위클리프는 국제적인 인물로 부상되었다. 위기는 기회로 다가왔다.

위클리프는 왕실 봉사를 시작한 직후, 자신의 관심을 형이상학에서 실천적인 문제로 전환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에 따라 내 생의 나머지를 보다 실천적인 사색에 바쳐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과제와 그것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에 충실하고 싶어했다.

영국 대주교 윌리엄 코트니는 위클리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1377년 영국의 주교회의를 소집하여 위클리프에 대한 열 가지 죄목을 확정지었다. 이단자로 처형할 죄목에는 성찬론, 교황청, 고백, 주권, 연보에 대한 그의 비판적 논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중의 반발로 말미암아 이단 정죄는 좌절되었다. 코트니는 또 다시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정죄할 24개조 항의 죄목을 들이밀면서, 도미니크 수도단에 굴복하라고 했다.

이때 랭카스트의 공작이 위클리프를 보호하고 안전을 확보해 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위클리프는 영국 왕실의 적극적 후원과 애국심을 가진 평민들의 지지로 몇 차례에 걸쳐 교황과 교회가 쳐놓은 죽음의 덫에서 벗어났다.

교회의 제재와 위협이 증가하자 후원자가 줄어들고, 후원금이 중단되었다. 탁발수도사 친구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최덕성 박사. ⓒ크투 DB

▲최덕성 박사. ⓒ크투 DB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6장 1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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