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겨울 숲 눈 추운 산 자연 설산 겨울꽃 꽃 오요한
▲ⓒ픽사베이
시편 131편 강해

요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2절).

다윗의 시이고 성전에 올라가는 시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세를 말하는 시입니다. 3절의 간단한 시이지만,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다윗은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옳은 일이었다 해도,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을 지을 수 없습니다. 전쟁은 공평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도 잘못 사람을 죽인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다윗이 800번 이상 나옵니다.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다윗, 정직한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직하고 겸손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1. 큰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1절).

다윗은 마음이나 눈이 교만하지 않고자 힘씁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행위적으로 깨끗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칩니다. 세리는 자타가 아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고 진실하게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합니다.

집에서 평생을 충성한 맏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내가 친구들과 한 번도 파티하도록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기쁨도 겸손도 없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재산을 잃고 온 탕자가 겸손하게 돌아오니, 아버지는 그를 기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만,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자 약속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은 남을 허무는 것입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상대적인 의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보다 조금 낫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며 겸손한 것이 의를 행하며 교만한 자보다 낫습니다. 어거스틴은 의로움보다 겸손이 낫다고 합니다. 물론 의로우면서 겸손한 것이 최고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전화는 반갑지 않습니다. 잘나 보았자 그렇고,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낫지 않은 것입니다.

회사에서 85프로가 쫓겨난다고 합니다. 교만하여 쫓겨납니다. 우리 주위에 여러 경제적인 문제, 병이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돈 몇 푼 있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업적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높이를 낮추었습니다. 그는 높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이나 놀라운 일을 하고자 힘쓰지 않습니다.

큰일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삼일절 사건에 안창호 선생의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사람 하나 죽이면, 한국 사람 백 명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입니까?

나라는 잃어버렸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짓이 많습니다. 공부를 안 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해서 나라가 독립되는 것보다, 거짓말하지 않고 식민지로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다 죽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어린아이에게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다가 죽었습니다.

애국이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큰 일을 하면 작은 거짓말은 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작은 정직이 먼저입니다. 큰 일을 한다고 하면서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철학입니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고 합니다. 결과와 목적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큰 일을 힘쓰는 자는 작은 일도 선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감당치 못할 일을 힘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힘씁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거리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그런 일도 모르고 뭐하시냐고 합니다. 공부는 안 하고 합격만 시켜달라고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서 사업만 잘 되게 해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연대에 100주년기념관이 있습니다. 대기하는 곳이 지하실입니다. 그곳에 물이 흐릅니다. 축축합니다. 겉 건사하지만 속은 썩었습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성수대교가 무너졌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만든 것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돼지머리 갔다 놓고 굽신거린다고 다리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이 모습 그대로 좋습니다. 주신 일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큰 일을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을 해야 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2. 젖뗀 아이같이 평온하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2절).

다윗은 자신을 어린 아이에 비유합니다. 그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서 평안하듯이 그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욕정과 미움을 버리고 나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이런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그는 젖뗀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신뢰하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탁하였습니다. 젖을 먹을 때 아이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 배우는 것이 젖떼는 것입니다. 젖을 떼면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오십이 되도록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스라엘은 젖을 떼는 시간이 네 살입니다. 네 살까지 젖을 먹습니다. 네 살 전에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우리는 젖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젖을 뗄 때 젖꼭지에 쓴 약을 바릅니다. 며칠 바릅니다. 아이는 젖을 뗍니다. 이제는 아이가 젖 때문에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품이 그냥 좋습니다.

다윗은 이런 마음과 같이 평안합니다. 내 소원대로, 내 욕심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때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합니다.

3.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3절).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듯이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야합니다. 항상 하나님 한 분만을 소망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생 만사를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고 완전하게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실 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죄 사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소망하며, 지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아멘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