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응답하는 기도
하나님께 응답하는 기도

유진 피터슨 | IVP | 224쪽 | 12,000원

‘시편으로 기도하기’는 기도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도라고 하면 자신의 감정을 다 끌어내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해야 될 것 같고, 자신의 마음 안에 엉켜있는 응어리가 다 풀릴 때까지 분출해야 될 것 같다.

물론 기도의 동기와 효과에 있어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고, 충분히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도는 그러한 감정의 배설과 자기 마음의 진정을 위한 도구일 수 없다.

그리고 기도라고 하면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살펴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모두의 하나님을 자신이 독점하여 자신이 더 특별한 존재처럼 보이고 이전보다 더 나은 성도가 될 수 있는 지름길로 인식한다.

물론 기도를 통해 이러한 기도의 세계를 지니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실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은밀한 사이를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생활에서 기도도 이기적인 수단이 될 수 있고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 더 친밀한 존재임을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고, 나의 생각과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절대적인 사인일 수도 없다.

기도가 자칫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나은 존재이고 자신이 하나님께 더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본 책은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하고, 시편 기도를 통해 더 온전한 존재와 성도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시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밋밋하고 이해도 쉽지 않고 읽으며 그 본문 속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어려운 시도이다. 그냥 읽으며 그 소리를 내 귀로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는 하지만,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움과 자료 없이 읽기만으로 충분한 기도가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책은 시편을 펴서 읽으라고 도전한다. 이 방법은 초대교회 때부터 오랫동안 공동체의 기도로 우리에게 검증된 효과적인 전통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 이 안전하고 탄탄한 방법이 단절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아브라함의 우물을 파듯 이 방법이 회복될 것을 촉구한다. 현대의 기도는 실용적이고 신비적이고 개인적인 영향으로 많이 변질되었기에, 이 시편 기도로 온전한 기도를 드리기를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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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우리는 기도의 언어가 유창하고 화려하고 어떤 정보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기도할 기회가 많은 필자조차 기도의 언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또 매주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를 하시는 직분자들도 기도에 대한 압박이 있다.

물론 공동체 예배를 섬기는 기도는 어떤 형식과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도가 성경에서 보여주고 시편에서 가르쳐주는 근본적인 기도는 아니다.

시편 기도는 기도의 언어가 어떤 정보와 지식을 포함하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시편 기도는 기도의 언어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단어와 배열로 꾸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편 기도는 기도의 언어를 아기의 울음소리에 어미가 반응하듯 일차적 언어로 초대한다. 세상이 원하고 인정하는 수준 높은 단어 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사귐이 담겨 있는 언어로 이끌어준다.

우리는 기도를 잘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도는 잘하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자의 마음과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시편은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기도이고 말씀이다. 그래서 시편 기도는 우리가 기도를 잘하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을 알려고 찾고 간구하고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변화시켜 이미 알려주시고 찾아오시고 들어주신 하나님께 응답하도록 인도해준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내고 이루고 응답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계산적인 신앙 수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기도는 침묵도 응답이고 무반응도 결과이기에, 결코 그런 기계적인 공식으로 기도를 설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기도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다. 기도에 담겨 있는 인내와 슬픔과 인격의 변화와 탄식과 한숨이 결코 그러한 공식으로 정의될 수 없다.

기도는 우선 말하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시편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먼저 듣게 하고 응답하게 도와준다. 참 역설적이다. 우리는 먼저 소리치고 호소하고 크게 외쳐야 될 것 같은데, 시편 기도는 먼저 들으라고 한다.

아이가 자라며 말할 때 부모와 가족의 소리를 들으며 그 언어가 잠재되어서 발화되는 것처럼 먼저 충분히 들으라고 한다. 물론 기도는 듣기와 발화의 상호작용이 있어서 ‘무엇이 우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는 듣고 응답하는 것에 기초를 놓아야 한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기도조차 나를 위해 이용하고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목적보다 이미 계시된 하나님을 더 알고 누리는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를 많이 발화하기보다 처음의 언어가 더 깊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기도는 나를 위한 응답을 쫓지 않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을 쫓아가야 한다.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더욱 신실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편 기도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합당하게 응답하는 도구이고 우리의 기도를 바르게 인도하는 가이드이다. 그 시편을 읽으면 즉각즉각 본문 속으로 들어가 은혜로운 교훈을 얻지 못한다.

시편 저자의 감정과 심정이 전달되어서 읽은 후에는 폭포수 같은 기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필자의 지식과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편 기도를 통해 즉각적인 극적인 감정과 변화는 더디더라도 하나님께 뿌리내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시편 기도를 시작했다. 새벽기도 시간에 5절씩 기도 중간에 책을 펴서 천천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를 마무리한다.

솔직히 아직 어떤 감정의 고양과 영적인 변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필자에게 집중하는 기도 중에 반응에 집중하는 시편을 통해 더 온전한 인격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지속해가고 있다.

밤에도 아들과 5절씩 소리내 기도하고 있다. 아들이 이기적이지 않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되기를 소원하며 말이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부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