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회피와 저항, 도피 등 수동적 차원 머물게 해
삶을 폐쇄적-자기 방어적, 이기적-자기중심적으로 변형
문제 해결 방안과 성장 모색 아닌, 자기 보호만 열중시켜
‘정서적 거리 좁히기’ 위해, 종교적 상징 통한 욕구 분출

한국실천신학회 제83회 정기학술대회
▲고유식 박사의 발표 모습. ⓒ실천신학회
“지금은 ‘외로운 세기(The Lonely century)’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면 접촉을 건강에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어 ‘사회적 불황’을 촉발하기 전에도, 이미 미국 성인 다섯 명 중 세 명이 스스로 외롭다고 여겼다.”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 저자인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교수(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에 만연한 외로움과 그 사회경제적 비용을 밀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노리나 허츠 교수는 외로움에 대해 “우리가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이면서 우리 자신과 단절된 느낌이기도 하다”며 “사회와 가족이라는 맥락에서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이다. 외로움은 내면적 상태인 동시에 (개인적·사회적·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실존적 상태로 정의한다”고 분석했다.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의 작품 <고립의 시대>.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고립과 외로움이 심화되는 시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유식 박사(호서대 연합신학전문대학원)가 제83회 한국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코로나 레드, 블루, 블랙 상황 속에서의 목회신학적 과제’라는 주제 아래 ‘사회적 거리두기를 정서적 거리 좁히기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고유식 박사는 “이제껏 시행된 코로나19 대응 중 가장 효과적 대책은 ‘사회적 거리두기’이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다른 실존 위협들과 달리 코로나19만이 갖고 있는 특징은 3가지”라며 “①타인과의 관계를 스스로, 그리고 강제로 억제해야 한다 ②생존 욕구’가 부각되면서 다른 욕구들, 특히 관계 욕구 충족이 어려워졌다 ③강력한 사회적 차별을 동반한다”고 소개했다.

고 박사는 “사람들은 다른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지만, 코로나 감염자에게는 기피 및 혐오 심리를 보인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신체적 위협을 넘어 정서적 위협도 함께 동반한다”며 “위 세 가지의 공통점은 ‘관계 억제’이고, 관련 정책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 예방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질수록 코로나19 확산은 줄어들지만, 계속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감염 위험에도 타인들과 관계를 지향하며 만남을 시도한다”며 “이처럼 코로나19 속에서 사람들은 감염 위험으로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관계를 원하는, 양가적 갈등을 경험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관계 욕구의 억압과 억제로 인해 인간의 자아는 더욱 방어적이 되고, 관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상 증상이 형성됐다”며 “‘관계 차단’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항한 억압과 억제로 인식되고, 이를 통해 ‘관계=욕구가 분출되는 통로’였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욕구는 인간의 본질적 요소임에도, 부정하거나 억제해야 할 것으로 치부당했다. 하지만 욕구로 인한 문제는 분출 방향 및 사용으로 발생된다”며 “코로나19는 인간의 삶을 회피와 저항, 도피 등 수동적 차원에 머물게 하면서, 삶을 더욱 폐쇄적-자기 방어적, 나아가 이기적-자기중심적으로 변형시켜, 문제 해결 방안과 성장 모색이 아닌 자기 보호에만 열중하게 해 자신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모습은 일부 교회 공동체에서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유식 박사는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저항-거부하기를 원하는 것은 ‘관계하지 못함’ 때문”이라며 “욕구가 관계를 통해 대상에게로 분출되면 자아는 자유로워져 평안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인식적-비인식적으로 대상 소유와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욕구를 안정적으로 분출시킬 대상 확보의 소망 때문”이라고 했다.

고 박사는 “코로나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상황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에 따라 부정 감정과 증상들의 유무와 강도가 결정되는 것”이라며 “코로나 신경증이란, 위협 상황과 그에 따른 억압과 억제로 욕구 분출 통로였던 ‘대상관계’가 통제돼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신경증’이란 새로운 대체 통로를 통해서라도 욕구를 분출하려는 자아의 심리-신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 레드(Red)’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의식적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폭력과 폭언, 정서적 학대 등의 신체화로 분출되는 신경증으로, 자신의 의식적-무의식적 분노의 출처를 파악해야 감정을 조정하고 정상 감정으로 회복돼 자유해질 수 있다.

‘코로나 블루(Blue)’는 코로나 상황에서 겪는 병적 우울로, 모든 자아 본능이 포기된 자기애적 신경증이다. 코로나 블루 치료의 대전제는 욕구가 자아에게로 과다 집중되지 않도록 다른 대상과 관계를 재형성하는 것이고, 호전 및 치료를 위해 폭발성 강한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안전하게 발산하게 해 자아의 본래 기능이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코로나 블랙(black)’은 자아가 스스로 기능을 포기하는 경우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지 못해 해소될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 삶의 포기만을 희망하고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 여기게 되므로, 유일한 치료법은 코로나 블루에서 블랙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는 예전부터 교인들의 욕구를 분출시키는 커다란 분출구였다”며 “그러나 현재 교회 공동체의 관계 욕구는 감염 위험으로 이어져 공동체뿐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치명적 위해로 작용될 수 있기에, 사랑과 자비, 사람들을 향한 돌봄의 과제를 실천해야 하는 교인들은 이 욕구를 직접 만남과 대면이 아닌 다른 통로로 배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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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픽사베이
이후에는 이러한 코로나 신경증을 앓고 있는 교인 돌봄을 위한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 교인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 하는 목회자는 신앙적·종교적 차원에서 강박적 모습과 이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을 형성시키는 교인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유식 박사는 “관계 욕구의 억압으로 다양한 신경증이 형성된 교인들의 돌봄을 위해 목회자는 교인들의 관계 욕구의 원인과 의미를 주관적으로 짐작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분석적-공감적 대화를 통해 그들의 관계 욕구에 대한 원인과 의미를 탐색 및 파악해야 한다”며 “신경증이 내면의 파악을 통한 돌봄을 위해 의미 있음을 알려주고, 특히 코로나 신경증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에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전했다.

고 박사는 “하나님-인간의 관계는 전적으로 비대면임에도, 교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격적 관계’라 하며 직접적-가시적 만남인 것처럼 이미지화해 대면 관계인 것처럼 여겨왔다”며 “하지만 이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로, 대면을 통한 종교행위만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강화시키는 행위라고 교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됐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적지 않은 교인들은 하나님 중심주의가 아닌 ‘종교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며 “하나님 중심주의는 자기 욕구의 목적을 하나님의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을 향한 사랑으로 설정해 이기적-자기중심적 삶의 지향성 포기 과정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는 의지를 의미하나, 종교중심주의는 개인에게 종교 귀속 목적인 자기 신앙 강화 곧 자기애 충족을 위해 종교를 수단으로 하는 의지를 의미한다”고 분류했다.

그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종교 중심주의는 교회의 쇠퇴를 야기시켰고, 결국 교회 엑소더스 현상을 일으켰다. 종교는 오직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욕구 분출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돼야 한다”며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인(verus Christianus)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서적 거리 좁히기’를 위한 방법으로, ‘종교적 상징을 통한 욕구 분출’을 제시했다. 그는 “교인들이 오직 직접 대면을 통한 집단적 종교 행위만이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는 방식이라는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언어화된 종교적 상징’은 카타르시스적 분출이나 신경증적 분출이 아닌, 의식 차원에서의 건강한 욕구 배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고 박사는 “종교적 상징을 통해 근본 욕구뿐 아니라 2차 욕구인 관계 욕구, 그 이후 형성되는 감정 발산의 N차 욕구까지 분출 가능해지고, 결국 자기 인식뿐 아니라 내적 갈등의 다룸, 그리고 신경증 증상 완화도 가능해진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관계 욕구의 억압과 억제 속에서 종교적 행위를 통해 자기 욕구를 분출시키지 못하는 교인들에게, 종교적 상징과의 관계는 욕구 분출의 대체 대상으로서 역할뿐 아니라 진정으로 욕구를 어디에 분출해야 할지, 진정한 욕구는 무엇인지 탐색하고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끝으로 “목회의 진정한 가치는 외적으로 보이는 물리적 관계와 활동이 아닌, 정서적-영적 교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코로나19는 교회 공동체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고, 목회의 진정한 의미 파악과 교회 기능을 재인식시켜준 계기이자, 교회가 다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공동체로 재탄생되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고 정리했다.

더불어 “무엇보다 목회자가 집중해야 할 점은 앞으로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현재 고통받고 있는 교인들, 코로나 신경증으로 삶이 피폐해진 교인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가 코로나19 위협 속에도 진정한 목회의 가치를 발견하고,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 돌봄을 실천하는 실질적 주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