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대 총장 이취임 우남식 퇴임
▲2016년 우남식 목사 퇴임 행사 후 기념촬영 모습. ⓒ크투 DB
나는 본래 대학생 선교에 헌신할 생각으로 살아오면서, 문서사역에는 관심이 없었다. 캠퍼스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일생 사명으로 여겼다. 그런 내가 이번에 출간한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을 비롯해 ‘~에서 만난 복음 시리즈’ 10권과 대학 전공 서적 2권, 그리고 교회 35년사를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1. 왜 문서사역인가?

첫째, 대학생 복음운동과 문서 사역

나는 대학 1학년이던 1970년 예수님을 믿은 후 1970년대 후반부터 UBF에서 대학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대학 시절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으로 민족과 세계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비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를 위해 복음으로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렸다.

그 당시 한국의 여러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예수님을 믿었고, 유례없는 영적 부흥기를 맞았다. 대학생 복음 운동의 불길은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내가 섬기는 사역에서도 1980년대는 동유럽에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하여 한국교회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19세기에 독일과 영국의 학생복음운동은 세계교회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역은 IVP 등 출판 사역을 통해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을 복음 운동에 헌신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대학생 복음운동과 문서 사역을 병행하여 복음의 세계화에 기여하였다.

우남식 대학마을교회
▲1991년 루마니아 현지에서의 첫 성경학교.
1977년부터 전임사역으로 학생선교운동에 참여하던 나는 젊음의 열정으로 캠퍼스를 종횡무진하였고, 하나님은 많은 열매를 주셨다. 개척 초기에 대학선교를 하면서 전도에 어려운 장벽에 부딪쳤다. 학생증이 없으니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고 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이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강의하는 길이 있었다. 그래서 40의 나이에 대학원에서 석사·박사를 시작하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책을 집필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책을 교재로 쓰다가 두 권의 전공 서적, 〈성심리〉와 〈행복과 긍정심리〉를 출간하였다. 〈행복과 긍정심리〉는 재판을 출간했다.

나는 대학생 복음운동이라는 특수성으로 전도(Preaching)와 교육(Teaching)의 두 트랙을 시도하였고, 이는 학생운동의 한 예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를 느낀 것이 문서사역(Writing)이었다.

내가 속했던 선교단체는 특별한 사명감과 열정은 있었지만, 긴 안목으로 문서로 남기는 일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오직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에 몰두해 있었다. 내가 문서사역을 시작한 것이 2010년이었으니, 학생복음사역을 시작한 지 30년의 지난 후였다.

우남식 대학마을교회
▲1989년 9월 8일, 헝가리 조봉순 첫 선교사 공항 파송예배 후 기념촬영.
둘째, 사역의 역사적 계승의 필요, 제자양성

1970-1990년대는 한국 대학생 복음운동이 꽃피던 시절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캠퍼스 복음사역에 헌신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역사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드렸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면 언제 어느 곳으로든지 순종하여 선교사로 살고자 하는 믿음과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과 함께 캠퍼스의 문화도 개인주의로 바뀌고, 20대였던 그들이 40-50대가 되어 결혼하여 가장이 되면서, 새로운 기도 제목이 생겼다. 뜨거운 열정과 선교신앙이 생활 속에서 뿌리를 내려, 사명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면서 어떻게 대학선교 사역을 계속해 갈 것인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 한 시대의 성령의 바람으로 그쳐야 하는가?

이 사역이 계속되려면 제자가 세워져야 하고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세워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를 위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남식 대학마을교회
▲1983년 인하대 센터 개척 1주년 모습.
셋째, 출판만이 영원하다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와 호흡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글은 쓸 수 있다. 그리고 문자로 기록된 것은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한다.

기록되지 않으면 구전으로 끝난다. 구전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변질될 수가 있다. 그래서 구전으로, 사람으로 전달하기보다 자료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문서사역을 하였다. 특히 35년사(권서행전)를 정리 기록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2. 문서사역의 시작

나는 오랫동안 주일에 강해 설교를 해왔다. 성경 한 과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 주일 A4 용지로 6-8쪽의 원고를 작성하여 전했다. 40년 넘게 매주 원고를 써서 정리해 두었다. 이를 근거로 2011년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을 생명의말씀사에서 첫 번째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계속 ‘~에서 만난 복음’ 시리즈를 내어 출간하였다.

‘듣보잡’인 내가 책을 출간하려니 책을 사주는 사람도 없고 출판비가 상당히 많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감내하며 출판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런 중에도 본인이 쓴 책을 읽고 감동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어느 노 교수님은 500여 페이지 넘는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을 읽으시고, 인문학적 소양이 깃들어진 이런 기독교 서적을 처음 본다며 감동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느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어렵게 느꼈던 로마서와 사도행전을 그렇게 쉽게 풀어준 책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문자도 받았다.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과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을 읽고, 어느 교수님은 우리 시대에 적절한 책을 출간했다며 기뻐하셨다. 어느 교수님은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에서 사자성어로 주제를 잡은 것에 감동하였다는 글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과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은 지방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행복과 긍정심리〉는 많은 호평을 받았고, 〈성심리〉는 ‘한국판 대학생들의 킨제이 보고서’로 일컬어진다.

우남식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우남식 목사.
나는 출판할 때마다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되곤 했다. 거기다 대학 선교는 흐르는 물에서 낚시하는 것과 같아서, 해마다 개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대학생 선교를 하는 사역자들은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어렵고 재정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러번 문서 사역을 접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용이 들더라도 문서 사역을 계속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적인 보상과 유익을 바라고 대학선교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던 것과 같이, 출판비로 가계에 적자가 나더라도 한 명이라도 내가 출간한 책을 읽고 사역과 개인 신앙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경에 뿌리를 내리는 바른 신앙을 갖고, 또한 이 사역에 뜻을 함께하는 독지가를 보내주셔서, 문서 사역의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상담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