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참석 교우들, 교회의 가장 소중한 그루터기
담임목사라면, 그들 위해 새벽 강단 지키는 것이 본분
신학 교수 시절, 성직자 양성 책임 감당 못한 것 같아
신학자 글 너무 난해해… 목회자와 상당히 동떨어져

왕대일
▲왕대일 교수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구·신약 말씀의 세계에 들어서는 여정은 늘 제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책에서 말했다. ⓒ이대웅 기자
<설교로 풀어쓴 성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감리교신학대학교(감신대)에서 31년간 가르쳤으며 한국기독교학회 회장을 지낸 저명 구약학자인 왕대일 박사가 정년퇴임 후 서울 강서구 하늘빛교회에 부임해 전한 설교를 모은 책이다.

신학교 강단을 벗어나 ‘목사’로서 설교 강단에 선 왕대일 박사는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성경 전체를 고루 접하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안고, 2020년 초 부임 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을 순서대로 매주 한 권씩 특정 본문을 뽑아 설교를 전했다. 책은 이를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이제는 목사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왕대일 박사는 “평생 신학자요 성서학자로 살던 자가 목회자, 설교자가 되어 주일 설교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라며 “그 은총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자 기도하면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말씀 66권의 세계에 들어서는 여행을 매 주일 설교 사역으로 감당했다”고 말한다. 다음은 지난 설 연휴 전 하늘빛교회에서 진행된 왕대일 목사와의 인터뷰.

설교로 풀어쓴 성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왕대일 | 대한기독교서회 | 568쪽 | 29,000원

-책을 출간하신 계기가 있다면.

“처음 담임목사로 청빙받고 강단에 서면서, 지난 30년간 강단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사람이 강단에 서서 어떻게 말씀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지 성도와 제자들에게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설교를 시작하면서부터, 성경 66권을 성도들에게 고루 증언하는 사역을 하고자 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 예상됐지만, 한 권씩 하다 보면 교인들이 성경 전체를 파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준비는 쉽지 않았습니다. 제 전공이 구약 모세오경(토라)이어서 다른 책들, 특히 신약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66권의 세계를 설교로 풀어가는 사역은, 기도할 때 가졌던 다짐대로만 이루기에는 벅차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제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성도들의 말로 바꿔야 했습니다. 교회의 언어, 그리고 이 시대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성도들이 일상 언어로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말씀의 눈높이를 낮추는 작업도 필요했고, 시대 흐름과도 통해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교수 일과 학회 일을 하면서 인문학적 트레이닝을 많이 받았기에, 인문학적 소양을 말씀의 세계에서 ‘들머리(도입)’로 삼는 작업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다시 들리게 하는 여정을 성경 66권 속에서 펼쳤습니다.

기도하면서 각 권별 본문을 정했고, 매주 숙제처럼 다가왔지만 숙제를 풀어가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말씀을 성도들의 언어로 바꾸고, 시대와 소통이 가능한 말글로 되새김질하면서 제가 받은 은혜가 더 컸습니다.”

-반응이 어땠나요.

“교우님들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매주 무슨 말씀을 고르실지 기대하며 교회로 오셨습니다. 지금은 66권을 두 번째 한 권씩 다루고 있는데, 지난 주(1월 23일)에는 열두 소선지서 미가서를 했고 이번 주(1월 30일)에는 나훔서를 합니다. 나훔서는 짧아서, 교우님들이 한 번씩 미리 읽고 오십니다.

저는 총 3부 예배를 인도하는데, 회중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말씀의 세계에 들어서 고무적입니다. 예배마다 회중이 다르다 보니 수준과 거론 내용도 조금씩 달라지다 보니, 1부부터 3부까지 모두 참석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말씀 사역을 통해 분쟁 중에 상처받은 교우들이 씻김을 받고 안정을 얻게 됐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주일을 지키고, 말씀에 기꺼이 동참하는 일이 일어나 교회가 회복되는 열매를 주셔서 오히려 은혜가 되고 감사합니다.

지금은 영상 시대이지만, 책을 통해 그 결과물을 글자로 전하는 멋이 있고 맛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책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300권을 구매해 교우들에게 다 나눠드리니, 교우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듯 말씀 사역과 함께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학회
▲왕대일 목사가 한국기독교학회 회장으로서 폐회예배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 ⓒ유튜브
-성경 각 권을 한 편씩 설교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1주일 내내 한 편의 설교를 위해 매달리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모세오경을 공부하고 구약을 가르쳤지만, 성경 각 권을 다시 읽으면서 그 주일에 주시는 말씀을 고릅니다.

저는 요즘 하는 3대지 주제설교를 지양하고, 말씀이 설교하고 성경 본문이 설교되는 강해설교를 추구합니다. 설교가 말씀을 따라서 읽어가는, 기승전결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마디마다 소제목도 붙였습니다.

익숙한 말씀이라면, ‘물음 불음 풀음’의 과정을 거칩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천태만상이지만 ‘한글로 철학하기’, 우리 말로 철학하고자 노력하셨던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영모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었는데, 선생님은 성경 주석을 ‘묻는다, 불린다, 푼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본문을 먼저 묻고, 본문이 풀리기까지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읽다가, 안 되면 온라인을 통해 학자들의 논문도 참고합니다. 이를 통해 아는 본문이든 모르는 본문이든, 해석 방향을 파악하고 확인합니다.

다음 작업이 말씀을 이 시대의 언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본문을 선정해 강해를 준비하고 교우들의 언어로 바꾸면서 인문학적 토양과 소통합니다. 설교에서는 인문학적 깨달음에서 얻어진 것을 ‘들머리’로 놓습니다. 소재는 음악과 미술부터 영화, 광고, ,역사, 문학 등 다양합니다.

단순한 예화로서가 아닙니다. 설교학 이론에서 예화는 삽화 또는 끼어들기이지만, 이는 유추(analogy)로 말씀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가 서로 비교·대조를 이루는 깨달음을 먼저 제시하고, 그 깨달음 속에서 본문에 들어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에 설교 제목을 정합니다. 제목은 의도적으로 동사체를 사용합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설교 제목이 짤막한 명사 구문인데, 저는 동사 구문을 써서 성도들이 말씀의 세계를 제목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화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모아도 한 편의 에세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목을 정하기 위해 마음앓이를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아내도 목회자인데, 가장 먼저 비평을 해 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말씀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강단에서 성경 말씀이 고루 들리지 않는다는 개인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책을 한 권 선정해 깊이 강해하십니다. 그런 것도 의미가 있지만, 선생이었기 때문에 경전 전체를 텍스트로 삼아 먼저 시작해 보았습니다.”

-가장 설교하기 어려운 성경은 어디였나요.

“구약학자로 살았기에, 신약을 설교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무래도 구약학자이다 보니, 신약을 어떻게 다룰지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신약에 대한 글들을 많이 읽고 생각했습니다. 신약 공부에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는 구약과 신약 전체를 다 설교 형태로 증언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친숙한 본문을 설교할 때였습니다.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 해석과 방법론에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본문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되도록 본문을 읽어가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렵다고 느끼는 성경 본문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은 요한계시록, 구약은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욥기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수 있고, 스스로도 안목을 얻고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로 살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도 그러시겠지만, 1주일 내내 말씀을 붙들고 사는 ‘거룩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자로만 지내다 목회를 해 보니 어떠신가요.

“목회는 행정과 경영의 측면도 있는데, 아내가 월급 받지 않는 부목사처럼 교회 행정의 상당 부분을 해 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웃음). 부교역자 2명에게는 수요일과 금요일 설교 사역을 맡겼습니다.

새벽 설교는 제가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새벽 설교를 하기가 쉽지 않기에, 나이 든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새벽부터 나와서 기도하는 교우들은 그 교회의 가장 소중한 그루터기들입니다. 그 분들을 위해 담임목사가 새벽 강단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부임 후 지속하고 있습니다.

새벽은 전통적인 강해 설교 식으로 성경을 장별로 정해 읽고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교회 장로님들이 손과 발처럼 도와주고 계십니다.”

설교로 풀어쓴 성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와서 직접 목회해 보니, 한국교회 신학교육이 달라져야 할 점들이 보이셨나요.

“1990년부터 가르치기 시작해 2019년 8월 31일 은퇴했습니다. 딱 31년 가르쳤는데, 지금 많이 뉘우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학 교수에게는 목회자와 설교자를 양성할 책임이 있는데, 여기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식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했지, 그들이 목사가 되어 성직을 감당하는 한 사람의 일꾼이 되게 하기 위해 얼마나 양육하고 힘을 썼는지 후회가 됩니다.

더구나 코로나도 있고 한국교회가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이 모진 계절을 준비하는 목회자가 되게 하는 훈련에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식을 주고 라이센스(자격)를 얻게 하는 일에만 몰두했지, 교회가 크든 작든 성직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게 부족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저도 그랬겠다 싶지만, 교수 생활을 마치고 설교자가 되어 신학 교수들이 쓴 글을 많이 읽어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목회에는 신학과 역사, 교리와 윤리도덕, 상담까지 많은 신학의 요소들이 필요한데, 30년 교수 생활한 제게도 글 읽기가 난해합니다. 저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목회자들에게는 어떨까요?

다시 말해 신학자와 목회자의 세계가 상당 부분 동떨어져 있다는 절실한 깨우침과 아쉬움이었습니다. 학회 회장으로 섬길 때, 모일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글 읽는데 어렵더라’고요. 어렵게 찾아서 읽었는데, 설교에 적용하는 것은 더 힘든 과정입니다. 목회자들과 소통하는 글을 쓰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느끼는 점이, 목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다루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신학교 교수는 특정한 나이에 특정한 사역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헌신이기 때문에, 둘의 삶의 폭이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들에게도 목회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학교 교수들이 목회자들에게 겸손하게 배우는 자리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와 교회가 건강하게 소통하는 구조를 이뤘으면 합니다.

규모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지만, 교회론을 다시 쓰는 마음으로 후배 교역자들을 살피면서 한국교회 생태계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없으면 신학교도 없고, 신학교가 건강해야 교회 지도자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생태계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어떤 대안을 세우고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주고받는 건강한 모임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