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잔치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가나의 혼인잔치(1563). 요한복음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초대교회에서 첫 번째 표적이라 말한 것은 전통적으로 성령 강림의 징후를 방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이는 새 술에 취했다 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다" 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2:1-4)”.

어학사전에서 ‘오지랖’의 뜻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앞가슴을 감싸는 부분으로서 오지랖이 넓으면 가슴을 넓게 감싸 줍니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고 합니다. 즉 주제 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고 간섭한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결혼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의 흥을 깨트리는 정도가 아니라, 법적 소송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잔치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컸습니다.

더구나 사복음서 중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기적은, 비신앙인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흘이 아니라 사흘 되던 날에,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을까요? 이는 언제로부터 사흘인가에, 그 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요일을 나타내는 단어로 첫째 날(일요일) 둘째 날(월요일) 셋째 날(화요일) 넷째 날(수요일)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7일간의 천지창조와 관련된 성경적 표현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시간적 배경으로 ‘사흘 되던 날’은 히브리어로 셋째 날인 ‘화요일’을 나타냅니다. 안식일(토요일)로부터 사흘 되던 날이었던 것입니다.

가나의 위치는, 나사렛에서 북동쪽 즉 갈릴리 호수 쪽으로 8km 떨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절에는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라고 명백하게 나옵니다.

아마 마리아의 가까운 친척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혼인잔치는 7일 동안 계속되었으나, 특별한 경우는 두 주간으로 연장되기도 했습니다. 잔치가 열리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라도 환영하다 보니, 손님을 미처 예측 못해 음식을 비롯한 포도주가 모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잔치를 위해 미리 담가놓은 술이 떨어지면 사오는 경우도 있지만, 옆집이나 이웃에 도움을 청하여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결혼예식 잔치에서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과 술을 접대하는 것은 초청한 양가 가족들에게 꽤 민감한 사안입니다. 잔치를 통해 자신의 명예와 부를 나타내고,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당시 여장부였던 마리아는 나이가 30이 넘은 아들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30이 넘은 아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당시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드러난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는 그 지극한 사랑으로 하나 된 가운데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의 그 어머니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보고 닮은 모친 마리아가 부족한 당신의 사랑을 예수님께 봉헌하고 아들의 처분을 겸손하게 기다려, 은혜로운 하늘나라의 풍요로움을 이루는 작은 도구가 되신 것입니다.

더구나 모친 마리아는 마치 자신의 자식 잔치인 양 가만히 즐기지 못하고, 남의 부엌을 넘나들며 음식은 부족한 것이 없는지, 급한 대로 당신이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침개라도 부쳐야 할지, 나물을 무쳐야 할지 분주합니다.

마리아는 잔치 특별 메뉴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집주인이나 잔치 음식 책임자보다 먼저 알고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보기 드문 ‘오지랖’입니다. 자기 일을 넘어서 간섭하는 주제넘은 행동을 가리키는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읽히지만, 이런 오지랖은 교회 안팎에서 참으로 필요합니다.

괜한 오지랖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기 싫어하는 이 시대에 가만히 있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오지랖을 본받아, 우리도 이웃으로 시선을 옮겨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이웃의 불행을 그저 지나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지요. 하지만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이웃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성격이었습니다.

포도주 사건 후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는 소문을 듣고 온 가족을 대동하여 예수님을 모시러 온 마리아의 행동 역시, 그런 오지랖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마가복음 3:30-31).

성경 저자들은 왜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요? 유대교의 전통과 달리 기독교 초기부터 여성들이 맹활약을 했기에, 여성들의 활동상을 적극 기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그 출발선부터 매우 남녀 평등적이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사상에 부합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제자들은 다 도망 갔지만,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지켰습니다. 사흘 후 부활하셨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여자들에게 부활을 알리셨고, 이 부활 사건을 제자들에게 알렸던 인물 역시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의 표적은 예수님 공생애의 첫 기적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께서 만드실 나라가 완전히 새로운 곳임을 보여주는 표적이며,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남녀 평등, 빈부 격차, 언어와 민족을 뛰어넘어 누구라도 언제든지 반겨 맞이하며 화평과 기쁨을 누리는 나라임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오지랖’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만들어낸 모친 마리아의 믿음 역시, 이 시대에 우리 신앙인들이 본받아야할 대상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베푸는 마음과 배려의 정신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