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김형석 교수의 최근 저서들.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

김형석 | 두란노 | 288쪽 | 15,000원

1980년대 청춘들의 감성과 지성을 선도한 것은 마르크스적 사고 체계와 함께, 수채화 같은 수필 작가들이 있었다. 그 시대를 풍미한 작가는 김동길, 김형석, 이어령, 안병욱, 유안진 등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한 교수들이었다.

이 분들은 1920년대 출생이 많다. 갑자년인 1924년, ‘묻지 마라 갑자생’이란 격언이 있다. 갑자생은 우리 역사의 질곡(일제 강점기, 8.15, 6.25, 4.19, 5.16 등)을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지식인의 100세 생애는 큰 의미가 있다. 환갑(還甲), 진갑(進甲, 61세), 미수(美壽), 고희(古稀), 희수(喜壽), 산수(傘壽), 미수(米壽), 졸수(卒壽), 백수(白壽)에 상수(上壽, 100세)이다. 필자의 할머니도 백수를 하셨지만, 생명에만 의미가 있지 자기 경험에 대한 해석과 잔잔한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않았다.

필자는 1980년대에 20대였고, 군 도서관에서 김동길·안병욱의 에세이집을 대출해서 읽던 기억이 있다. 김동길 교수의 글이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김형석 교수의 글은 너무 어려웠다는 기억이 있다.

그런데 청춘이었던 필자가 50세가 된 후에도 선생님은 여전히 지식 활동을 하고 계신다. 변함없는 자세로 학문하는 모습이 우리 시대에 큰 귀감이다. 학문하는 학생에게 주는 좋은 도전이고 지표가 된다.

그런데 그 철학과 인생 선생님이 예수에 대해 논한다. 노년이 되어 기독교에 대한 자기 견해에 대해 몇 저술을 출판했다.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성경에 대한 이해와 자기 인생에 대한 이해를 절묘하게 함께 전개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서는 김형석의 청소년과 청년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데, 옛 모습이지만 오히려 신선하다.

김형석 교수는 올해로 103세가 되었다. 그는 14세 때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자라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에서 살면서 느낀 청소년의 학문기와 기독교와 어우러짐이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서는 김형석 교수가 예수를 믿어오는 과정이 잔잔하게 전개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처럼 격동적이고 강력하지는 않지만, 청소년 시절의 풋풋한 수채화 느낌이 있는 글이다. 전문 철학자로 철학 사색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언어로 자기 인생을 잔잔하게 진행했다. 사유의 깊음이 있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 2
▲김형석 교수는 책에서 “기독교는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들지는 않아도, 그 문제가 선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언제나 이상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투 DB
김형석 교수가 이해하는 예수 이해는 인문학적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예수에서의 체계적인 사고가 있다. 인문학적 예수의 기본은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전제로 평생 사유했고, 마음의 고요와 지식의 정진을 이루어 왔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잔잔한 믿음과 사유의 정진을 한국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형석 교수는 100세의 사색가로서 그 가치가 너무나 크다. 또한 100세의 생애가 의미가 있는 진정한 지식인이다. 탁월한 지식인의 100세 생애는 우리 시대의 좋은 기억 자산, 이야기 창고이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나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김형석 선생이 청년과 일본 유학에서 만난 그리스도인들과 교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자신의 기독교 사유의 트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 능력이다.

김형석 교수는 자기가 인지하고 있는 예수에 대해, 자기 삶 속에서 변이 과정과 개념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 같다. 김형석 교수가 소개하는 예수 이해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지식인으로 자기 양심을 그대로 밝히는 것이 매우 값진 자산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양 극단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양심적으로 표현하고 듣고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상호 협력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체계를 이루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본래 생각이 같을 수 없는데 사람의 생각을 ‘같음’으로 묶고,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며 천편일률로 만들든 갈등 상황을 만들든 하려 한 것이다.

자유를 강조하면서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김형석 교수는 양심적으로 학문하는 사람으로 자기 이해를 잔잔하게 소개한 것이다. 예수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

성경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축약하고 이해하며 사고 체계를 이루었다. 인문학적 성경 읽기와 신학적 성경 읽기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신학적 성경 읽기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김형석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좋은 선생이고, 철학자가 상당히 견고한 성경 이해와 자기 지식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을 잔잔한 양심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김동길 교수님은 좀 시끌법적하게 자기 양심을 표현해서 약간은 아쉬움이 있다.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은 선동이나 주장이 아닌, 자기 양심을 진솔하게 진술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그들을 보면서 자기 의식을 다잡을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김형석 교수는 우리에게 좋은 자산이다. 그의 글은 우리의 사유를 깊게 하도록 인도하는 좋은 도구이며 지표이다.

김형석의 글과 함께 사유의 증진과 함께 자기 사고 체계를 확립하며 진술하며 다름과 교류하며 같음과 교류하며 상호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