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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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늘 유머가 많고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배우자나 연인의 조건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 중 하나가 ‘재미있는 사람’이다.

유머가 제법 있는 남자는 열에 서넛 정도는 될 테니까 훈남보다는 찾기가 좀 쉬운 편이다. 아주 웃기는 정도는 아니어도 분위기를 맞춰서 농담을 좀 할 수 있으면, 지나치게 진지한 쪽보다는 나을 것이다.

재치 있는 말로 남을 자주 웃기는 사람들은 인기가 많다. 오라는 곳도 많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상식이 없고 무례한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다. 그 자신도 남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어울리게 된다.

연인이 너무 인기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랑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노잼’인 것보다 장점인 것은 분명하다. ‘투머치토커’는 지루하게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위트 있게 말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환영을 받고, 연애나 결혼생활에도 심각하게 따분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은 밉다가도 웃음이 픽 나오는 사람이다. 미워하려고 해도 밉지 않은 스타일이다. 주변 지인 중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가족들 사이에서 사업적으로 많은 사고와 물의를 일으켰는데도, 자기가 한 짓(?)에 비해 훨씬 미움을 덜 받는다. 화가 났다가도 만나면 또 웃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유머가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에, 입을 열면 웃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런 것이 남녀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한 것이, 그 집은 이혼을 해도 몇 번 했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결혼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남자의 유머와 밉지 않은 특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사람들에게도 리스크는 있다. 잦은 농담으로 생기는 오해와 잡음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재미있는 사람은 다소 가벼워 보일 수 있고, 농담 때문에 크고 작은 구설에 오를 수도 있다. 원래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도 탈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내 남자라면 어떨까. 유머가 있다고 무조건 즐겁기만 하진 않을 텐데, 어떻게 대해야 서로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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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남을 웃기는 사람들은 결혼 후 오히려 말이 그만큼 없을 수도 있다. 연애할 때는 신이 나서 어떻게든 재미있게 해줬지만, 결혼 후에는 사이가 안 좋아져서 혹은 흥이 안 나서 침묵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빛만큼의 그림자를 지닌다. ‘웃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밝은 에너지만큼 그늘도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늘 웃김을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재미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함께하는 타인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어서, 하루 일과가 피곤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밖에서 떠드는 사람들은 집에 오면 입을 다물 수가 있다.

집에 가면 다른 모드로 충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자로부터 남들에게만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유머러스한 기질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만, 기대만큼 재미는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TV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을 보면, 어디서 만나도 늘 저렇게 웃길 것 같았다. 그러다 친구들과 방송국 어린이 공개방송에 몇 번 갔는데, 그렇게 상냥하던 방송인들이 카메라가 안 돌면 화난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고, 아이들이 무질서하면 야단치고 훈계하는 어른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때 그들이 웃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웃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재미있는 일을 재미없게 하는 어른들이 이상해 보였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일상 중 하루였을 뿐이었겠지만, 분위기 메이커나 늘 밝은 에너지를 기대받는 이들이 지닌 무게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우울해하거나 의기소침하면 그건 정말 그런 것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는 이들에게 항상 밝음을 유지하길 기대하는 눈치를 주지 말고, 시간이 필요한 일은 그대로 두고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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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공감’에서 나온다. 그래서 유머러스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TPO(시간, 장소, 상황)를 구분할 줄 알아야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연인 간의 폭력에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최소한 유머러스한 사람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확률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소시오패스의 특징은 여러 가지지만 주요 특성 중 이런 것도 있다.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
-시시콜콜한 농담을 싫어하거나 장난을 치지 않는 사람

농담을 많이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을 치면 싱겁다, 실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연인이 그런다면 너무 핀잔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그런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사람이다.

동창 중에 같이 잘 떠들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녀석이 있었다. 좀 재미가 없어지거나 농담이 길어지면 갑자기 “고마 해! 쫌” 하며 급발진해서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무표정으로 노려보며 “웃기냐? 웃겨?” 하는 식이라 친구들이 무안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모일 때 이 친구가 빠지길 은근히 바라게 되고,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편안했다.

여행을 가서도 한 번 삐치면 정색하며 혼자 귀가하기가 일쑤였다. 경상도로 여럿이 며칠 여행을 갔는데 또 친구들과 엇박자를 내다가 혼자 서울로 돌아가버린 적도 있다.

그런데 이후로는 너무나 화합이 잘 되는 즐거운 여행이 됐다. 말하자면 이 친구는 왕따를 자초하는 스타일이었다.

가끔 모이는 동창회에 그 친구가 십여 년 만에 다시 나왔는데, 오랜만에 모여서 옛날 이야기를 하며 다 같이 또 웃고 떠드는 시간이 길어지자, 또 정색을 하더니 “니들 아직도 이러고 있냐? 다들 나이만 먹고 하나도 안 변했구만” 하며 잠시 후 먼저 일어난 뒤로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 변하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아무튼 이 친구는 연애도 오래 못했다. 엄청 급히 돌진하는 만큼 싫증도 금방 냈다. 모두의 예상대로 이혼도 금방 했다. 섣불리 진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 특징을 보면 이 친구가 바로 공감 능력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쪽인 것 같다.

희한한 것은 여자들의 반응이다. 돈은 좀 많았지만 호감형이 아닌데도, 여자들은 그에게 생각보다 너그러웠다. 소시오패스가 가장 바라는 것이 상대방에게 측은하게 보임으로써 관심이 머물도록 하는 것이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친구의 그런 성향 때문에 여성들이 비교적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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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인이나 남편이 실없는 농담을 많이 한다 해도, 그냥 놔두는 게 좋다. 농담이 너무 썰렁하거나 정말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나대는(?) 게 아니라면, 진지함이 없다느니 체통이 없다느니 하며 기를 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농담을 자주 하는 남성이라면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개그 욕심으로 지인들 앞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 연인이나 아내를 개그의 소재로 삼아 희화화하는 일은 두고두고 욕을 먹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적절하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 법이다. 인신공격이나 남의 허물을 저격하는 네거티브한 유머보다는, 사람을 살리고 활력을 주는 긍정적인 유머가 훨씬 귀하다.

사실 성경은 성숙하고 진지한 태도를 늘 말씀한다. 하지만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위트는 삭막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화평을 이끌어낼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게 한 말이 얼마나 좋은가! (잠 15:23)”

“사악한 자의 생각들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순수한 자의 말들은 즐거운 말들이니라 (잠 15:26)”.

세상살이는 힘들고 때때로 의기소침할 일이 많다. 그런 삶을 함께 헤쳐나갈 때 연인이나 배우자의 유머는 소중하다. 마주 보며 웃을 때 사랑도 커지는 법이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더욱이 웃음의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행운아일 것이다.

“즐거운 말들은 벌집(honeycomb)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을 주느니라 (잠 16:24)”.

억지로 웃어도 몸은 그것을 인식해 건강해진다고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철학자의 말도 있다.

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닌 게 현실이지만, 웃는 만큼 행복할 수는 있는 것이 우리 삶이다. 그러니 유머러스한 남자는 존재 자체로도 귀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입을 막지 않으며, 함께 많이 웃는 것이 슬기로운 사용법이 아니겠는가.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