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활 예수 십자가
▲영화 <부활> 중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청중들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 십자가형은 수치와 불명예의 고통을 수반했다. ⓒ네이버 영화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태복음 26:65-66)”.

여론(輿論)의 뜻은, 어학사전에서 사회 대중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의견이라고 합니다. 요약해 본다면, 사회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공통된 의견을 말합니다. 요즘 같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 여론의 중요성은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므로, 국민들은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나 문제점에 대해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의견을 말하고, 좁은 의미로는 특정한 정치 문제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공통 의견을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론이란 한두 사람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과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여론몰이는 개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사적인 목적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방송, 신문, 인터넷 등의 언론을 이용하는 행위로서 공적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민주정치는 여론에 맞게 정책을 펴 나가는 여론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 국가에서는 나라의 헌법과 같은 중요한 법률을 제정할 때 국민의 여론을 알기 위해 공청회 등을 열기도 하고, 국민의 대표가 의회에서 정책상 중요한 현안들을 결정할 때 국민 의견을 살펴 결정하게 됩니다.

여론은 대체로 압력단체와 같은 이익집단이 특수한 이익을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거나, 혹은 신문,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와 같은 매스컴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체를 이용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여론몰이의 주체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모순되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은 일종의 사기행각이자 여론조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언론의 과장 보도도 여론몰이로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치관은 변할 수 있는 것이어서, 여론몰이로 치부되던 행위가 나중에는 공적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자신의 스승을 팔아넘겨, 오늘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당하십니다. 거기에는 서기관들과 장로들, 그리고 그들을 매수했던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많은 거짓증인들이 나왔으나 얻지 못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와서 말하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더라”고 말합니다.

그 때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사실을 물은즉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하시니,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또 다시 질문을 합니다. 네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옷을 찢으며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면서, 저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여태 하지 못했던 용기를 내 저마다 예수님을 증오하며, 결국 십자가 형틀에서 죽음을 맞게 합니다.

여기서 거짓 증인들의 이 고발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하신 말씀을 왜곡한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육신을 가리킨 것인데, 이것을 빌미로 죄목을 찾던 중,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결국 신성 모독죄라는 여론을 형성해 하나님의 독생자인 아들을 나무 십자가 형틀에서 죽게 만드는 인류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기와 여론몰이, 조작은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서 계속되고 있는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현 시대에 교회 안에 당회와 노회, 총회에서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여론몰이는 그칠 줄 모르고 시행되고 있어 참으로 슬픕니다. 당회에서는 힘 있는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에 협조를 하지 않는 당회원을 여론몰이나 여론조작을 하여 내치는 일은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노회 역시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표 장사를 하는 것을 보노라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런 분들은 가야바의 뜰에서 여론조작이나 여론몰이를 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총회 역시 하부 조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한쪽 편에서만 판단하여 결정하다 보니 억울한 피해자들이 많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자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요?

이 모두가 교회 지도자들의 무거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경우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는 정직과 공정과 공의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기도하며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저 인간적인 방법으로 많은 성도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목자들 때문에 더욱 사회는 혼탁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야바의 뜰과 빌라도의 뜰이 되어 또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가야바인지 그들의 동역자인 서기관과 장로들인지 한 번쯤 기도하며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필자 역시 교회 일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입은 한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눈물도 많이 흘리며 섭섭한 감정들이 솟구쳤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내가 좀 더 참을걸 하는 마음도 들지만, 때로는 나를 핍박했던 그 사람들이 종종 머리를 스쳐갑니다.

특히 교회는 가야바의 뜰과 빌라도의 뜰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목사와 장로들은 가야바와 같은 제사장이 되지 말아야 하며, 서기관과 장로들 같은 위선적인 신앙인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들을 선동하고 위증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서로를 위해 사랑하고 배려하는 나눔의 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 존경하고 그 사람이 없을 때 칭찬하는’ 아름다운 풍토만이 복음을 증거하는 발판이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상처를 싸매어줄 때, 복음은 빛으로 발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여론몰이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 서로 소통하고 나누며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