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 중보기도
ⓒPixabay
서양의 중심 사고는 ‘로고스’이다. 그들은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하면서, 감정적 에로스(열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경계를 한다.

물론 서양의 신화에서도 고대의 근본적 에너지는 ‘에로스’이지만, 철학과 역사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로스는 로고스의 통제와 지배를 받을 때에만 안전하다는 모나키(전제군주제)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그들은 카오스를 ‘악’으로 보고, 코스모스를 ‘선’으로서 계속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동양사상은 다르다. 동양의 중심 사고는 ‘자연 속에서의 조화’이다. 이성적 통제가 아니라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상호의존적 조화와 공존이다.

그래서 동양에서 카오스는 ‘악(혼돈)’이 아니라 ‘공(空)’이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바로 카오스인 것이다. 현대 과학은 우주의 97%가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한하게 비어 있기에 무한한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4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서양사상의 기초를 닦은 장본인이다. 그 두 도성의 분리 사상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서양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변증법적 연구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근대화를 받아들인 동양에서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이제는 거꾸로 서구에서 고대 동양 사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동양 사상을 기반으로 ‘생태학’과 ‘복잡계’ 이론들이 점점 주류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즉 동양의 사상을 기반으로 양자(퀀텀)의 세계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사상에서 하나님은 외부에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외부에서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사상에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신다. 모든 만물 안에 내재해 계시면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해 계신다고 믿는 자들과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신다는 신앙 때문에 동방과 서방의 기독교가 결국 갈라지고, 수많은 생명들이 종교재판의 이슬로 사라졌다.

과연,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사상이 서로 ‘적(敵)’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적이 아니라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시면서,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신 분(페리코레시스)”이기 때문이다. 완벽히 설명하거나 증명해 낼 수는 없지만, 실재로 이렇게 존재하시는 신비로서 알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시다.

이제 서로의 옳음을 증명하려 하는 어리석은 싸움을 멈추고, 지금 이 자리에서 겸손히 주님을 신앙하는 삶을 살아가자. 진리에 대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자.

강도헌
강도헌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초장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