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허영의 실상 집약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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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하우스 오브 구찌> (2)

꾸미려는 열망에의, 성경적 원리와 세속적 현실
아름다움에 매혹, 하나님 심어주신 영혼의 기능
오늘날 실재적 아름다움 대신 가상 외모에 몰입
인간 영혼 직결된 실재적 아름다움 열망 추구를

▲구찌 가문의 비극적 실화를 다룬 영화, &lt;하우스 오브 구찌&gt;.

▲구찌 가문의 비극적 실화를 다룬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플라톤과 어거스틴이 논한 영혼의 열망

서구 철학의 출발점이라 하면 통상 주전 6세기경의 탈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 학파를 지목한다.

이 시기로부터 주전 4세기경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까지 고전적 서구 형이상학의 근간이 완성되었다. 이 시기 형이상학은 우주 만물의 창조, 운행, 그리고 섭리를 다스리는 궁극의 존재인 신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에 주력했다.

고전적 형이상학은 신과 세계, 관념과 물질, 예지계와 현상계의 뚜렷한 구분을 중시했다. 이런 경향은 플라톤주의에서 두드러졌다. 플라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완전함에 대한 갈망을 신-인 관계의 원동력이자 영혼의 핵심 기능이라고 보았다.

그는 완전한 진리(眞), 완전한 선(善), 완전한 아름다움(美)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두고, 우리 영혼이 신의 존재를 감지하고 신을 갈망하기 때문에 나오는 심성이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영혼이 신과 그 완전성을 사랑하는 것을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신 가운데 사랑을 주관하는 신인 에로스(Eros)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사랑과 갈망이 오로지 신성한 것을 향할 때에만 순수하고 온전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이 열망이 물질세계의 각양 존재자들, 이 땅의 것들을 향할 때 영혼의 사랑이 어긋난 방향으로 발현된다고 경고했다.

순수하게 관념적이고, 예지적이고, 신적인 것을 갈망하는 이런 사랑의 힘에 대한 플라톤의 가르침은 훗날 주후 4-5세기경 중세 기독교 신학의 설계자 어거스틴에게로 이어진다. 그는 플라톤주의가 그 자체로서는 복음과 같은 진리가 될 수 없지만, 여러 모로 성경을 철학적으로 변증하는 데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인간 영혼에 깃든 사랑의 힘을 기독교적으로 해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고백록>을 비롯한 그의 저서 전반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의 극명한 차이를 누차 강조한다. 그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감성(sensibility)을 경유하지 않는 순전한 영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사랑의 심성을 우리 영혼으로부터 길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과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모두 영혼으로부터 발현되지만 양측의 성격이 크게 상충된다.

▲세상과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모두 영혼으로부터 발현되지만 양측의 성격이 크게 상충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을 바라는 것, 소망이나 갈망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이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이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 영혼에 허락하신 기능이므로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 주장은 그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원래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청종하고 실천하기 위한 유익한 기능이다.

그런데 죄로 타락한 인간은 이제 계명을 지키는 쪽으로 이 의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죄를 짓는 쪽으로 의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원래 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기능이 어긋난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훗날 루터는 이를 ‘노예의지(servo arbitrio)’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퇴락해 버린 인간의 자유의지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힘써 사랑하는 영혼의 기능 역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향하게 된 사실에 대해 애통해한다.

단 그는 인류가 영원히 이렇게 추락한 상태로 남아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지식과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데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가르쳤다.

◈아름다움을 구별하기: 영혼의 실재적 아름다움과 외모의 현상적 아름다움

화려한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심성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심어주신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어거스틴이 가르쳤던 것처럼, 성경은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중요한 영적 속성으로 지목한다.

각종 천사들의 외양과 구원얻은 성도들의 영혼이 두른 영광됨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복과 은혜, 그리고 온전한 창조섭리 안에 들어온 영혼들이 누리게 되는 아름다움의 수준이 사뭇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실재적인’ 아름다움은 육체와 세계의 ‘현상적인’ 아름다움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나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광활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속성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유비적으로 드러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판단력비판’에서 아름다움의 감정과 숭고함의 감정을 지목하고 그 특성을 낱낱이 해명한 바 있다. 특히 특정한 대상적 형상과는 무관한 숭고함의 감정이 도덕법칙의 원천으로서 신을 요청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칸트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한성 혹은 초월성 자체를 감지하는 데로 이어지는 미적 감정과 무관하게 순전히 유한하고 감성적인 것에만 관계된 미적 감정 역시 존재하는데,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영혼에 귀속된 실재적 아름다움과는 전혀 무관할 뿐더러 이 실재적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을 발휘한다.

▲&lt;하우스 오브 구찌&gt;의 주연 레이디 가가. 파격적인 미감을 과시하는 패션 센스로 유명하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주연 레이디 가가. 파격적인 미감을 과시하는 패션 센스로 유명하다.

성경은 이처럼 영혼의 아름다움과 무관한 감성적, 물질적 아름다움을 ‘외모’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외모는 좁은 의미로는 매력적인 용모를 말하지만, 넓게 보면 그 매력을 유지하고 뒷받침해주는 물질적 풍요로움의 표상들, 즉 부, 명예, 권력의 과시행태까지 포괄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실재적인 아름다움을 도외시한 채 가상적인 외모에 몰입하는 행태의 최일선에 명품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바로 이런 허영의 실상을 집약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찌 브랜드의 오너 마우리치오 구찌와 결혼에 성공했던 파트리치아의 범죄 행각은 외모를 꾸미는 데 집착하는 인간의 퇴락한 영적, 정신적 실상을 대표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결국 실재적 아름다움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자연 만물의 오묘함과 경이로움을 사랑하거나, 인간 실존에 깃든 도덕과 선행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들은 그나마 하나님이 근간이 되시는 실재적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사랑할 가능성에 열려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한낱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 그것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값비싼’ 인공물에 몰입하고 그로부터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들은 인간 영혼에 직결된 실재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깨우치지 못한 채 퇴락한 욕망 속에서만 허덕이게 될 뿐이다.

성경이 외모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만드는 값비싼 의복과 치장을 멀리하라고 권고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현상적이고, 감성적이며, 잠정적이고, 인공적이며, 작위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 상태가 하나님과 영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알아차리고 갈망하는 데 상당한 정도로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외모를 위한 산업으로 부와 명성을 얻고, 외모를 위한 열망으로 패망한 구찌 가문이 세운 구찌 브랜드 매장. 인공적, 작위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외모를 위한 산업으로 부와 명성을 얻고, 외모를 위한 열망으로 패망한 구찌 가문이 세운 구찌 브랜드 매장. 인공적, 작위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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