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투표 (국회의원 선거)
▲코로나19 속 치러진 2020년 21대 총선 투표장 모습. ⓒ크투 DB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3-5)”.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캄캄했던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빛의 창조로 말미암아 낮이 밤으로부터 구분됐으며, 빛은 일종의 에너지로서 태양이나 별들은 넷째 날에 비로소 창조됐고, 다른 어떤 것들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현대 우주 과학자들은 우주가 뜨거운 빅뱅으로 시작되었고, 여기서 밝은 빛이 발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흑암과 혼돈을 대신해 세상에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빛은 에너지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빛은 파동처럼 이동하고, 광자는 입자를 운반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빛은 전자기 복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알파 속은 베타선과 같은 커다란 입자에 의해 운반되는 방사선은 빛이 아니라고 합니다.)

빛의 흥미로운 점은 입자의 흐름으로도 다룰 수 있고 복사의 파동으로 다룰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양자역학이라 불리는 물리학 분야의 주춧돌 역할을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5)”.

14절의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는 말씀은 산꼭대기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마을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제자들 개인이 연합한 ‘빛’의 집단적 효과를 표현한 것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나오는 말씀 중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은근히 자신을 높이는 교만과 자신의 위상, 그리고 자신의 위신을 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거룩한 삶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증거와 차이가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에 보면 “태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말씀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이 곧 사람들의 빛”이라 했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자연계의 빛이 만물에 생명을 주고 어둠을 밝혀보게 하듯이, 영적인 빛은 우리 영혼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상태를 어두움이라고 하듯, 하나님 말씀이 없는 무지가 또한 영적 어두움이 된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은 어둠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 영혼에 밝은 빛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련 없이 행해지는 각 인간 행위는 저마다 어둠을 가중시키기에, 인간은 더욱더 맹목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빛이 되는 것은 곧 태양이 되는 것이므로,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빛도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기도 중이나 자녀들에게 “소금과 빛이 되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소금의 역할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빛의 역할 역시 모르시는 분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천이 중요한데, 가르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러주는 사람 역시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 별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신 분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한경직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이태석 신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이야기에는 많은 분들이 호응하며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수년간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열리는데, 진흙탕 싸움이 진행되면서 국민들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끌어 가시므로, 양과 염소를 가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믿고 우리는 오직 그 분의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후보에게 왜 그렇게 박수를 보내는지 통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땅에 빛은 사라진 것일까요? 특히 후보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평소 가지 않던 교회를 찾아 표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광고 시간도 엄연한 예배 시간인데, 그 시간을 정치인에게 할애했다니요. 더구나 대장동 부패와 형님·형수와의 욕설 파문, 자녀 문제 등 숱한 결함들이 솟구쳐 나오는 판국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회개할 마음은 없고, 오직 대통령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선적인 말잔치를 하며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런 후보를 교회 예배 중에 성도들 앞에서 엄연히 소개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교회로서 빛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권력 앞에 아부하는 처사라고밖에 말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주위에 조그마한 교회들도 수두룩한데, 대형교회만 찾아다니며 예배드린다는 것은 목적이 불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먼저 앞장서서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텐데, 거짓과 위선과 오만으로 가득한 후보를 예배 시간에 인사시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누가 오든 환영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정치인들이 예배 후 로비나 문 앞에서 인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지만, 예배 중에 이런 일은 삼가 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에 휘말려서 안 될 것이며, 어디까지나 중립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행사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는 어떻습니까. 지역 큰 교회나 성당을 여러 곳 찾아가 등록하거나, 세례를 받았는데 다른 교회에 가서 또 세례를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의 장소, 표를 구걸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빛을 발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연을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소비하고 폐기해도 되는 소유물로만 보고 피폐시키고 약탈해온 결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맨 먼저 빛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빛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서 그런지, 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근간에 장난감을 사기 위해 2년 동안 저축한 돈을 어려운데 써달라고 기부하는 어린이들이 귀감이 됩니다. 한 축구 선수는 거금 20억 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했습니다. 이 밖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하고, 구세군 자선냄비에 할머니·할아버지들께서 허리를 굽히며 또는 어린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부하는 모습,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이들의 기부 모습 등이야말로, 빛의 사명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돈은 십 원 한 장 내놓지 않으면서, 나라 돈을 흥청망청 마구잡이로 써대는 오늘날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국민은 위대한데 정치인들은 형편없는 모리배로 보여집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다 쏟으며 사명의 빛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정부 공직자들과 국회의원, 그리고 시·구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의 모습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그 자신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빛(구원자)이시고, 그 자신의 죽음으로 죄를 도말하시는 희생의 빛이시며, 사탄을 정복하는 빛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복음의 빛을 얻는다는 의미를 참되게 알고 깨달아, 마음 중심에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자신도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추어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여, 이 시대에 빛의 사명자로서 최선을 다해 귀하게 쓰임받는, ‘빛을 발하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