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2003년 기도원 세미나에 참석한 어느 사모님께서 목사님들 앞에서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아마 자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살 동기는 70만 원의 카드빚 때문입니다.” 모든 분이 그 사모님의 간증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수십 수백억의 빚을 지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 분도 있고, 사모님처럼 남들이 볼 때 작은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는 연약한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왜 우리가 고난을 겪고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힘든 삶을 살게 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필자가 목회하면서 힘들었을 때(1995년쯤)가 있었습니다. 기도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새벽예배가 끝나고 강단에서 눈만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시편 119편 67~72절 말씀이 생각나 성경책을 펴는 순간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말씀을 보는 순간 하염없는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이 두 구절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 후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점점 더 어려웠고, 이 사람 저 사람 교회 부흥과 성장을 방해하는 일들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광고시간에 “저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부로 사임을 하겠습니다.” 온 교회가 충격이었습니다. 갑자기 제직회가 소집되었습니다. 필자는 사무실에 앉아서 제직회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몇 분의 집사님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목사님, 한 달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왜 그런 마음인지 우리 모두 목사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휴가를 다녀온 후에도 그런 마음이시면 그때 사임하시길 바랍니다.”

개척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얻어 아내와 함께 기도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주간 후 아들이 월급을 타 가지고 기도원으로 찾아와 평생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하였습니다. 아들과 바닷가에서 홍합과 소라를 잡으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저녁 시간에 낮에 잡은 것을 먹으면서 아들과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 목회를 포기하고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면서 살면 좋겠다.” 아들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 아버님입니다. 모든 성도가 아버님을 다 떠나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한 사람을 위해서라고 목회는 하셔야 합니다.” 아내와 저는 그 말을 듣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 역시도 “목회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계속해야 합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성직자에게도 있고, 연약한 신자에게도 있습니다. 고난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필자는 남들보다 의지력이 상당히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격이 매우 급한 편입니다. 무엇보다 불의를 보면 잘 참지를 못하는, 의협심이 강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런 나를 목회자로 다듬기 위해서는 고난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 땅에서 그 누구도 나를 목회자로 변화시킬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교회 반주자가 저에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000에게 뒷담화 당하셨지요?” 지금도 “뒷담화”란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빨리 걸어도 욕, 천천히 걸어도 욕, 서 있어도 욕, 좋은 일 하고도 늘 욕만 얻어먹는 직업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었고, 목사는 그런 직업이구나 체념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뒤돌아보면 그런 말들은 모두가 사단이 주는 인본주의의 달콤한 속임수였다는 것을…….

결론

물과 성경으로 거듭난 하나님 백성들이 겪는 고난과 망함의 이유는 그 안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필자가 1983년에 신학교에 입학한 후 30년 가까이 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3번씩이 겪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지금도 육신의 질병 때문에 매일 힘든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것이 바로 천국이구나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나를 왜 이 땅에 존재케 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매일 소중합니다. 무엇보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하므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말은 마귀와 사단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1 3: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1 3:9)” 모든 고난과 망하는 이유는 잘못된 죄의 성품(습관, 기질)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숙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연단도 분명히 있습니다. 필자는 시편 119편 71~72절과 신명기 28장 1~6절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전 2:26)” 이런 말씀들로 노년에 많은 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과 신앙의 분량(수준)만큼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