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5:43-45
장소: 청주 양성교회
일시: 2022년 1월 9일

김명혁 2019년 11월
▲김명혁 목사. ⓒ크투 DB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웃은 물론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마 5:43-45).

성자 예수님께서는 물론 성부 하나님께서도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귀중함을 거듭해서 지적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성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 사람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면서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요나를 억지로 니느웨로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므로 니느웨 사람들에게 저주 대신 축복의 손길을 펴시기도 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베푸신 성부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을 싫어하며 대드는 요나를 향해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부드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0,11).

성부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굽과 앗수르 나라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 19:24-25).

성자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너무너무 귀중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신 다음 산에서 내려오셔서 하신 일들이 거의 모두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일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절과 8장 1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 5: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마 8:1).

1. 병자들을 고치신 일

성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하신 일들의 대부분이 모든 종류의 병자들과 모든 종류의 죄인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일들이었습니다. 너무너무 많은 내용들을 길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먼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멸시하는 문둥병자를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2-3).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족의 반역자라고 취급하며 멀리하는 백부장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주시면서 지나친 칭찬의 말씀까지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5-8, 10, 13).

그 다음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그 다음에는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많이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 8:16).

그 다음에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면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과 함께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9:1-8).

2.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일

성자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자들의 병을 고치시는 치유와 모든 죄를 사하시는 사죄의 능력을 지니신 귀중하신 분이신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따뜻하고 겸손하신 분이셨고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좀 지나친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9-13).

성자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하신 말씀은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고마우신 보배와 같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3. 혈루증 환자를 고치신 일

성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리고 혈루증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마 9:18-26).

4. 눈과 귀가 닫힌 자들을 고치신 일

그 다음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두 소경의 눈을 만지시면서 고쳐주셨고 귀신 들려서 벙어리 된 자들 둘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 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 하니라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마 9:27:33).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병자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안타까워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5-38).

성자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과 모든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시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는 착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제자들과 교회들을 향해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 14, 16).

5.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일

성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아 못 박아 죽이는 원수들인 로마 군인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너무너무 착하시고 너무너무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죄의 기도를 성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하시더라”(눅 23:34).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는 죄인 중의 죄인인 강도 한 사람을 향해서 긍휼과 용서와 사죄와 축복의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강도 한 사람은 성자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정죄했지만 강도 한 사람은 성자 예수님을 존중하면서 도우심을 요청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39-43).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들 중의 마지막 말씀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였습니다. 그런데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기도와 말씀을 하시는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던 로마 군인들의 대장인 백부장은 너무너무 깊은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6,47).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때까지 모든 종류의 병자들과 죄인들과 사람들은 물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아니 지금도 우리 모든 종류의 병자들과 죄인들과 사람들은 물론 자기를 불신하고 반역하는 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는 너무너무 귀중하시고 너무너무 따뜻하시고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다음에는 배신자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해변 칠언의 말씀을 하심으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셨고, 돌로 쳐서 처형을 당하는 스데반 집사에게 위로와 격려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셨고,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인 사울을 부드럽게 부르셔서 사도로 삼으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너무너무 귀중하시고 너무너무 따뜻하시고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나타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무한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과 삶에 대해서 깊은 감동을 받고 주님 닮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삶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다가 핍박을 받아 죽어가면서도, 분노와 저주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죽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런 사람들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6. 스데반 집사

먼저 스데반 집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 집사는 일곱 집사들과 함께 구제와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당당하게 전하다가 사울과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서 죽게 되었는데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모습은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았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모습만 나타내 보이면서 다음과 같은 사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 60).

스데반 집사의 사죄의 기도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성 어거스틴이 했고 박윤선 목사님이 했습니다. 아마 사도행전의 역사도 줄여졌을 것입니다.

7. 사도 바울

그 다음 사도 바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울은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서 죽이다가 스데반 집사의 사죄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사울을 부드럽게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사울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때부터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하는 회개의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증거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 3:14).

8. 성 프랜시스(프란치스코)

그 다음 “청빈의 사도 성 프랜시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과 약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1182년 2월 이태리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재산도 평안한 삶도 세상의 향락도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도 모두 버린 채 한 평생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글자 그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두 벌 옷을 가지지 않고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동정과 사랑과 착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특히 문둥병자나 버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는 문둥병자 수용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며 그들을 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 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도 미쳤고 사나운 이리에게도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아니 해와 달과 별들에게도 미쳤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에는 많은 기적이 나타났고 귀신이 쫓겨가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으나 그는 한번도 기적을 그의 전도의 방편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기적을 이용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랑과 도움만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프랜시스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은 모든 사람들은 물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쳤는데 온갖 짐승들과 새들을 향해 형제 자매라고 불렀고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백도 했습니다.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도 나의 자매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폐 결핵에 걸려서 슬픔과 아픔과 절망에 빼쳤었는데 희망을 지니고 박사와 교수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 3년 과정만 공부하고 귀국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신의주로 돌아와서 목회하게 된 것도 성 프랜시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가난과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이동휘 목사님 “불편하게 삽시다”를 교회의 표어로 정한 것도 모두 성 프랜시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9. 손양원 목사

그 다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5년 동안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성자 예수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또한 순수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의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의 나환자 사랑의 고백과 기도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은 나중에는 자기가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총살한 원수와 같은 안재선을 향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는데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 사랑의 고백과 기도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를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아들들을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고 해. 내가 그를 구해서 아들을 삼겠다고 해.” 손양원 목사님은 “죽음은 나의 소원이라”고 고백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10. 한경직 목사

그 다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평생을 사셨던 한경직 목사님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제가 2003년 1월에 『목회자 한경직 목사 부흥사 이성봉 목사』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해서 출판했는데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글을 서론과 7장과 결론으로 나누어서 저술했는데 제5장을 “돌봄을 쉬지 않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라는 제목으로 저술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서 인용하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의 3대 목표를 전도, 교육, 봉사로 정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봉사는 복음의 생활화요 신학의 실천이었다. 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복순이라는 다리 하나 없는 가엾은 어린 소녀를 돌보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아이로 시작했는데 1939년에는 남 신의주에 땅을 얻어 벽돌집을 신축하여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공동체적 복지 시설인 ‘보린원’을 만들었습니다.

1942년 일본경찰에 의해 교회에서 추방된 후에는 보린원 원장으로 그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고아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일에 다 쏟아 바쳤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945년 10월 월남 후 12월 2일 서울 저동에 베다니 전도교회를 설립하고 월남하는 피난민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동시에 양식과 거처할 숙소를 마련하는 일을 했습니다.

1946년 11월 베다니교회는 영락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영락교회는 피난민들과 실향민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새로운 삶의 출발지가 되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영락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3대 목표 중의 하나를 봉사로 정하고 봉사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교회 창립 1주년을 맞은 1946년 12월 1일 주일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민중들을 인도하고 돌보는 사회 봉사임을 밝혔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46년 3월 16일 주일 ‘상부상조의 정신’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가난한자, 병든 자, 나그네 등을 돕는 상부상조임을 강조하며 호소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0년 6월 서울을 떠나 피난 길을 가면서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대전에서는 ‘기독교구국회’를 조직하여 피난민을 구호하고 국군을 위문하는 일을 했습니다. 대전에서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부산에서 밥 피어스 목사님과 함께 피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피어스 박사로 하여금 미국에 돌아가서 월드비전을 창시하여 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피난민들을 돕게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나중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영락 보린원을 비롯해서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집, 재가노인복지 상담소 등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90년 1월 17일부터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폭 넓게 펴나갔습니다. 그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의 입술과 손 발을 하나님의 도구로 다시 쓸 수 있게 힘을 준 은총에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라는 제목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님은 한경직 목사님과 가까이 교제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모하는 분이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목회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고 한 목사님과 같이 있으면 저는 부족한 부분을 많이 많이 느꼈기에 그 분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노벨상 이라고 불리는 템플턴 상을 1992년에 한경직 목사님에게 증정했는데, 아주 상당한 액수의 상금을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상금을 받은 다음 날 북한 동포 돕기 헌금으로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착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신 성자 예수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야말로 태어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기까지 평생토록 아니 지금도 너무너무 많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우리 죄인들에게 펴시는 너무너무 귀중하시고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도움의 삶과 손길을 바라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으신 신앙의 선배님들이 성자 예수님을 닮은 ‘사랑과 도움’의 삶과 손길을 펴면서 살다가 죽으신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우리 죄인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도 주님 닮은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닮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펴면서 귀중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가볍게 죽을 수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면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