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스탠리 목사.
▲앤디 스탠리 목사. ⓒ미국 크리스천포스트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노스포인트커뮤니티교회의 앤디 스탠리(Andy Stanley) 목사가 아버자이자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 목사와 깨어진 관계성을 회복하게 된 과정을 고백하며 관계성 회복에 대해 조언했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얼마 전 ‘재정립 필요: 깨어진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초보자 가이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약 30년 전 매주 교회 사무실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상담을 받으며 ‘분노와 상처’를 느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스탠리 목사는 “당시 아버지와 나는 관계성의 어려움 등을 고침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이것이 매우 낯설었다”며 “우리 모두 모두 깨어지고 상처 입은 관계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방식으로 사물을 보았다. 난 왜 우리가 어떤 진전도 이룰 수 없었는지,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관계성 회복이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우리 모두 관계성을 회복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웠고, 관계성 회복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스탠리 목사는 친구들, 형제들, 가족들, 친척들, 동역자, 배우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깨어진’ 또는 ‘멀어진’ 관계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깨어진 관계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 사람들이 그 상황으로 돌아가기 쉬운 4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로 설득, 정죄, 강압, 통제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계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스탠리 목사는 “이상한 것은, 이 4가지를 보면서 ‘그래, 저것은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이든 심지어 의도적이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 4가지에 이르게 된다. 여러분은 스스로 ‘이것과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난 노력했어. 이제 신경쓰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계속 (자신을) 압박하고 압박하며 잘못된 방식으로 관계성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사람들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고 했다.

스탠리 목사는 “때로 사람들은 4가지 구성요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종종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당신은 너무 쉽게 기분이 상해요. 내가 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의 수정, 교정, 재조립은 직관적이지 않고, 우리는 직관적으로 모든 잘못된 방법을 찾고, 모든 잘못된 것들을 말할 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다. 우리는 차를 수리하는 것보다 시동거는 것을 더 잘한다. 시동을 걸 수도 있고 운전할 수도 있지만, 뭔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맺거나 이를 유지하거나 팀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직관적이지만, 관계를 고쳐나가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반직관적”이라고 했다.

스탠리 목사는 “목회자로 사역하는 동안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멀어지고 단절된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버려두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사례들 중 일부는 수년 동안 곪아터지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 누군가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에서 갑자기 매우 감정적인 환경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이 문제는 너무 크고 결론적이어서 쉽게 극복하지 못했지만, 비극의 와중에 갑자기 점점 더 작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래 전에 말해야 했던 것들을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과 할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몇 년의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스탠리 목사는 “사람들이 화해할 때는 깨어진 관계성을 회복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궁금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보낸다. 파탄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배워야 할 기술이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달하는 모든 것이 처음엔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분이 결국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먼저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사과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탠리 목사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오랫동안 깨어져 있었는데,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식당에 앉아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냥 너무 어색했다. 우리는 다 큰 성인 남자였고, 목사였으며, 전문 상담가였다. (그러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둘 다 너무 화가 나 있었고 갇혀 있었다. 또 다른 이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앤디, 우리 둘 다 이런 일을 겪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했고, 나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우리 둘 다 기꺼이 노력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이것은 감정적인 문제다. 남자들에게, 우리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어떤 감정들이 있다. 우리는 그 감정들이 표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속에서 일어날 경우 어떻게 반응할지, 혹은 어떻게 느낄지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탠리 목사는 “이것이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마음의 문을 닫은 이유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변명만 하는 이유”라며 “사람들은 화해를 위해 일하고 기도해야 하지만, 성인의 관계 회복에 있어서 (단순히) 화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아젠다에 기초한 관계에서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러진 장난감, 깨진 접시나 아이폰 액정 등의 경우, 우리가 모든 깨어진 조각들을 통제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젠다는 항상 관계를 훼손하거나 포장한다. 이는 깨진 관계를 깨진 채로 유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깨진 관계를 재정립하는 목적은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만족감 또는 그것이 화해로 끝나지 않더라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관계의 화해나 회복은 기독교 신앙에서 ‘기능하는 명사’(operative noun)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탠리는 목사는 “우리는 문을 열고, 환영의 매트를 깔고, 다리를 내리고, 무기를 내려놓고, 그와 다시 연합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압박감을 없애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는 (관계의 깨어짐이) 누구의 잘못이고,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든지 여러분과 내가 항상 화해의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것은 우리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