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기자회견
▲김건희 씨 기자회견 모습. ⓒYTN
오래 전 뉴욕의 신학대학에서 한 신실한 중년의 백인 교수의 육아법에 감동을 받은 후 30여년 동안을 티비없이 살아온 필자는, 작년 한국에서 인터넷 설치 기사의 간곡한(?) 청으로 처음으로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전엔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도서관에서 CD를 빌리거나 AMC에 가야 했는데, 지금은 편하게 방안에 앉아 아무 때나 명화를 볼 수 있게 되는 호사를 누리니, 스스로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한편 점차 TV와 뉴스를 통해 익숙해진 정계 내 소위 ‘여의도 문법’에 대해선, 종종 상투적인 진부함을 넘어 심한 부조리와 폐단을 느끼곤 한다.

혹자는 필자의 이런 칼럼에 대해 정파 성향을 띈 것으로 곡해할지 모르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틸리히의 표현대로 세상 사회에서 벌어지는 그릇된 현상을 직시하고 찾아내야 할 사명이 주어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영성 이전에 영성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한 우리 사회의 ‘인식의 거듭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원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선택적 지각

요사이 뉴스를 들으면 눈에 띄게 특히 야당 의원들에게 있어 ‘선택적 지각’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선택적 지각’이란 주어진 정보를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해 인식하고 해석하는 경향을 띄는 인간의 심리를 말한다.

‘선택적 지각’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주어진 정보가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 더 잘 탐색하려는 경향(지각적 탐색)과, 반대의 경우 회피하려는 경향(지각적 방어)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여당 의원들이 야당 후보가 아내와 장모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지난 조국 장관 가족 수사와 비교하면서, 후보 자신의 정계 진출 명분인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허물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지각적 방어’를 넘어선 ‘지각적 왜곡’ 현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 ‘회피’가 소극적 의미라면, ‘왜곡’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의 야당 후보의 위치나 역할을 과거 검찰총장의 위치와 역할과 견주는 것은 분명 인식의 오류다. 수사 책임자로서 범죄 수사를 전격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때의 상황과, 대선 주자로서 수사권을 가지지 않은 현재 상황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현재 위치에서 야당 후보는 자신의 가족 문제에 대해 초지일관 “가족이라도 법에 맞추어 공정하게”라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여당 의원들은 왜 그가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허물었다는 왜곡된 평가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일까?

이는 선택적 지각에 있어 ‘선입견’이나 ‘기대감’이 과도하게 개입되어 객관성이 결여된 때문이다. 야당 후보로선 아내의 결혼 전 잘못에 소상한 내용 파악을 못한 상태인데다, 오랜 수사 경험상 직감적으로 ‘사문서 위조’와는 죄질이 다른 사안이라 생각되어 미온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 대통령이 임명을 감행했던 조 장관에 대한 검찰총장의 ‘곧이곧대로 법대로’ 활발한 수사에 유난히 굴욕감과 패배감을 느꼈던 여당 의원들은, 현재 가족 문제에 대한 야당 후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 장관 때와는 상반된다고 비난하면서, 반사적인 분노감을 폭발하듯 그에게 ‘선택적 공정’이란 프레임을 덮어 씌웠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과거 일이 실제로 오늘 우리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과 정황상 다를 때가 많음에도, 부정적인 선입관과 부적절한 기대감이 작용하면 ‘지각적 왜곡’이 일어난다.

요컨대 조 장관 수사와 같은 과거 사례를 현재 야당 후보 주변에 일어난 일에 억지로 대입해 판단한 것은 ‘선택적 지각’에 의한 오판에 해당한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대중들이 감정적이고 자연반사적인 정치 리더들의 선동적 유도에 의외로 무방비 상태로 취약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야당을 대변하는 한 패널조차 며칠 전 TV에 나와 후보가 아내 때문에 ‘내로남불’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하거나, 심지어 야당 대표는 후보의 가족비리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식의 공개적 언표까지 함으로써, 여당의 책략에 말려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사문서 위조’는 ‘학력 부풀리기’와 다른 성질로서, 문서를 작성하는 권한이 없는 자가 남의 명의를 모방하여 문서를 새로 만들거나 남의 졸업장 같이 기존 문서에 있는 이름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언론은 과거 정경심 씨 사례와 김건희 씨 사례의 차이점을 설명하지 않아오고 있으며 모든 댓글들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야당 후보에게 ‘윤로남불’이란 누명을 씌우고 국민의 여론을 혐오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너무도 비겁하고 무모하고 상대에 대한 합리적 ‘기대감’을 넘어선 불의한 행위이다.

◈우리와 나

‘우리’란 정서는 한국인의 고유한 미덕으로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우리’란 총체적 이름으로 시간적 구분과 ‘나’란 개체적 구별을 도외시한다면 오히려 문화국민의 위상을 쌓는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집단의 건전한 연대 의식은 개체성을 충분히 고려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개인을 배제한 집단주의의 극한 형태는 전체주의가 된다.

예를 들면, 성경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나 한 지파나 한 가족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개별적 말씀이기도 하다. 전체가 개인을 도외시하지 않고 개인이 전체를 도외시하지 않는, 조화로운 영성을 성경은 추구한다.

그럼에도 구원의 완성은 언제나 하나님과 독대하는, 개인적인 차원임을 각인시킨다.

현실 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개인적 차원을 무시한다면, 요즘 정치 상황에서 드러나는 현상처럼 정략적으로 악용되기 쉬운 맹점을 제공하게 된다.

후보의 자질 검증에 있어 결혼 전 후보의 아내나 장모가 저질렀거나, 결혼 후라도 후보와는 전혀 무관한 잘못을 후보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 옳은가?

부부나 인척 관계는 결혼이란 계약 제도로 쌍방이 맺어진 것인데 계약 이전에 한쪽 편이 행했던 잘못들을 계약 이후 다른 편의 ‘자질’과 관련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이런 경우 정치인들이 무모하게 상대방 후보에게 애매한 꼬리표를 달아 이율배반적이고 불공정한 화신인 양 매도하고 융단폭격을 퍼붓는 것은, 결혼이란 아름답고 신성한 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오히려 미풍양속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분명 한국 사회의 두루뭉실한 인습적 통념을 오용하여 교묘히 판단을 굽게 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불의한 마음의 발로다. 요컨대 이런 폐단들은 ‘우리’와 ‘나’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전근대적인 모호한 인습 체계가 낳은 부작용이다.

판단을 한다는 것은 사물을 바르게 인식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개체적인 분석이 선행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명확해진 개별적 정황과 관계를 살피고 종합하는 것이 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는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리주의/실용주의의 맹점

일반적으로 정치인들 가운데 종종 회자되는 ‘실용주의’란 ‘공리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실용주의는 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적인 방법인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과는 다르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그 이면에 흐르는 어떤 정신을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토론회나 대담 때마다 유독 여당 후보는 공리주의와 실용주의를 늘 자신의 브랜드 정책으로 강조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철저히 공리-실용주의로 무장된 인상을 준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공리주의나 실용주의는 ‘결과주의’로서 행동의 결과에 근거해 도덕성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이는 규범윤리에서 행동 자체의 옳고 그름에 근거해 도덕성을 판단하는 의무론과 다른 것이다.

물론 공리/실용주의 자체는 절대 불변의 진리적 실재를 부인하며,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상이다.

실용주의자들의 진리는 그룹이 달성하려는 목적에 부합되느냐에 따라 정의되기 때문에, 정해진 원칙 없이 그때그때 판단을 따르는 ‘상황주의(Situationalism)’와 상통한다.

그러므로 저들의 무원칙의 변동성이 ‘신축성(flexibility)’이라 미화된 이름으로 덮어지고 수시로 ‘말 바꾸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저들의 사상적 속성상 자연스런 결과이다.

보수적 관점에서 보면 실용주의자들은 능력 위주이고 성과지향적이나 근본이 없는 듯하며 정직하지 않을 때가 많고, 극도로 임기응변적이고 아전인수격이며 피상적이고 대중적 심리 파악에 영민하며 이권을 위한 상황 적응력이 뛰어난 카멜레온 같기도 하다.

여당 후보는 상대 후보의 배우자 문제에 대해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공리주의 근본 이념에서 벗어난 예외성을 적용시키고, 야당에서 여당 후보 부인의 과거 문제를 거론하자 ‘과거지향적’ 구태라며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며, 오히려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여론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저들은 선거일까지 얼마남지 않은 기간 야당 후보의 배우자 문제를 계속 끄집어내는 전략을 쓰게될 것이다. 또 여당 후보가 심지어 “자식은 남이나 마찬가지지만, 아내는 남이 아니다”란 목적 맞춤형의 비도덕적이고 오히려 시대 풍조에 역행하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 것은 저들의 실용주의 사고가 지닌 자기 모순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이다.

요컨대 실용주의는 결과의 유용성으로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에, 유용한 결과를 가져다줄 목적에 부합되기만 하면 생각이나 행동의 부도덕성도 얼마든지 정당화된다.

◈야당 후보 부인

야당 후보 부인의 사과 후 패널로 나온 여당의 남녀 정치인들이 수위를 한껏 높여 집중적으로 야당 후보 부부를 향해 인신공격을 하는 것을 보았다.

여당 여성 정치인들은 한 여성으로서 어쩌면 그렇게도 전 국민 앞에 억울하게 ‘쥴리’로 모함을 받았던 당사자와 남편이 느꼈을 수모와 마음의 고통을 눈꼽 만큼도 헤아리지 못하는지….

말바꾸기의 선수인 저들이 지금 와선 다른 변명을 할지라도, 분명 그동안 대중들에게 후보 부인이 ‘접대부 쥴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분위기를 직·간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조성해 온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들이 후보 부인의 사과를 두고 ‘겨울연가’니 ‘거짓된 연극’이니 ‘떠밀려 하는 마지 못한 사과’니 하는 등 지극히 비뚤어지고 유치하지만 대중에겐 삼류 통속물 처럼 쏙쏙 어필하는 류의 비호감을 자극하는 세뇌성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것을 들어보면 실로 가슴이 섬뜩할 정도이다.

필자는 저들이 연약한 대중들의 정서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너무 나쁜 방법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에 경악을 느낀다.

‘OOOO티비’의 일단 저지르고 보자 식의 야당 후보 부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저들끼리 암묵적으로 합의된 계산된 책략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이다.

미국에선 대통령 후보 부인을 기사화하더라도, ‘OO티비’처럼 극히 사생활을 캐내 가공하는 류의 무례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럼프 부인의 과거 누드모델 사진이 실렸어도 그냥 사진으로만 끝나지, 사설탐정식 접근법으로 그 세계의 내막을 파헤치거나, 그런 걸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의 자질과 연관짓지도 않는다.

유튜브로 퍼지는 가짜뉴스의 공통점은 조악한 표현과 험한 말투, 교차검증 없는 근거와 관련자료, 혐오와 차별, 극단적 주장 확대 재생산, 실체를 알 수 없는 관련 보도자 등이다(나무위키).

◈아무튼 지금까지 반대자들의 심리전은 너무도 주효했다!

어둠의 세력인 ‘세상의 영’의 능력과 지혜는 실로 탁월하다. 저들은 어느 시점부터 후보 당사자가 아닌 후보 부인을 타깃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맹공격을 퍼부어댐으로써, 후보 부부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실추시켰다.

그리곤 코너에 몰듯 대중 앞에 후보 부인이 안 나선다고 비난을 하더니, 마침내 후보 부인이 힘겹게 나와 사과한 것을 두고는 또 마구잡이식 조롱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추미애 씨, 박영선 씨 등이 김건희 씨 사과가 나오자마자 “보여주기 사과”나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고 직격탄을 쏘듯 맹공격한 것이야말로 김 씨의 사과로 인한 긍정적 파급효과가 자기들의 진영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미리 예방적으로 폄하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었고, 그것이 주효하게도 젊은 세대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전술한 바, 실용주의와 같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상대주의적 사고는 부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한다. 정권을 쟁취하는 방법에 있어, 결과만 좋으면 상대에게 입히는 희생도 얼마든지 선이 될수 있다.

이는 사익 추구만을 도덕의 근거로 삼고 윤리와 선악 판단의 근거와 기준이 없는 실용주의 사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컨대 후보 부인이 남편에 대한 사과를 공개적으로 한 이유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대통령 후보인 남편이 사방에서 정적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여론을 불리하게 선동하는 상황에서, 남편의 인품과 그녀 자신의 잘못이 남편과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나름 세상에 명확히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후보 부인 스스로 표현하듯 자신이 ‘악마화된’ 현재 위기 상황에선 공인인 남편에게 아내로서 해야 할 사적인 사과도 공개적으로 투명한 방법으로 행하지 않고선 스스로 안심할 수 없을 만큼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심리적 부자유 상태로 보인다.

한편 스피치에 있어 기본은 발언자가 처음에 억지라도 웃음을 지어 보이거나 한두 마디 가벼운 말을 건네는 것이 화자 자신의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어떤 이가 어떤 의도에서 말했든, 만약 후보 부인이 굉장한 기획력과 연출력과 연기력의 소유자라면,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질 때 국제사회에서 보조적으로나마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매우 큰 장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어봄 직도 하지 않겠는가?

야당은 여당의 악선전에 움츠러들지 말고, 반대로 김건희 씨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내조에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고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당당하게 선전을 할 필요가 있다.

◈빠름과 느림

인간의 행동은 두 가지 사고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하나는 직관적이고 노력이 필요없고 속도가 빠르고 감성적이며 자연반사적 사고로서, 반사적 행동을 순간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려깊고 논리적인 사고로 노력이 필요하며 속도가 느리며 생각을 동반하는 행동을 천천히 유도한다고 한다.

생각이 많은 타입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충분한 의사전달이 불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책적 면의 가치와 호소력은 기술적 열거나 숙달된 언변뿐만 아니라, 서툴러도 포괄적인 내용과 화자에게서 느껴지는 전체적 인상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

정치적 사안 같이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순발력과 인기응변성뿐 아니라, 직관력과 함께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체계적이고 논리적 사고력이 많이 요청될 것이다.

◈맺음말

크리스천으로서 오늘날의 정치제도를 상고해볼 때,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신정 정치의 종말을 고했던 단초는 사무엘 선지자의 두 아들이 저지른 불의한 행위의 결과였다(삼상 8).

전무후무한 믿음의 선친을 두고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총명과 부귀와 영화를 선물로 받았던 솔로몬 왕(왕상 3), 성전 봉헌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온 이스라엘 회중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직접 언약의 말씀을 받았던 솔로몬 왕이었다(왕상 8).

하지만 솔로몬 왕은 정치계에서 일약 눈부신 활약으로 통합과 평화의 성과를 일구는 동안, 영적으론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점점 쇠퇴해져, 마침내 하나님 앞에 실족하고 말았다(왕상 11).

그러나 비록 이방의 통치자였으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전격 선택되어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데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던 고레스 왕은 어떤가(사 44:28-45:1).

명암이 교차했던 지난 성경적 정치사를 우리는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새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수 년 전 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도올의 책을 추천한 사실을 알고는 상당한 비통함과 국가적으로 암울한 전조를 느꼈기에,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품어왔다.

정당이나 대통령 후보에 대해선 세상적인 기준에서나마 기본 신조나 인성이 좀 더 보수적이고 올곧고 정직한 자를 분별하려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프라그마티즘적 경제 성장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겸비한 지도자가 나오길 기도한다.

죄수의 몸으로도 헤롯 아그립바왕과 네로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세계 선교의 문을 연 바울을 거울 삼아, 오늘날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대통령 후보나 정치인들을 정파적 인물이 아닌 복음 전도의 대상인 우리와 나의 이웃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실 수만 있다면 후보들에게 안수하셨던 큰 교회 목사님들이나 후보 부부들과 개인적으로 접촉이 가능한 목사님들께서 사명감을 갖고 여러 루트를 통해 저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이 미치도록 꾸준하고 집요한 노력을 경주해 주시길 간청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복음적인 서적을 온 국민에게 ‘우리의 인식과 지혜를 넓혀주는 책’으로 권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박현숙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awEs_qm4YouqDs9a_zCUg
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