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
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

제롬 브리요 | 박선진 역 | 행성B | 252쪽 | 16,000원

최근 묵상과 명상과 사색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삶’에 관한 것이다. 좋은 삶은 어떤 것일까?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이에 대한 관심과 공부에 마음과 신경이 쏠려 있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바로 <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이다. 원제는 ‘단순함의 철학’이다.

현재에서 자연으로

저자는 산업화, 자본주의(성장주의), 기술화 등으로 점점 지속가능성의 위협에 놓인 인류를 넘어,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사색을 이 책의 배경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위기를 넘어 위협이 된 인류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의 해법 중의 하나로 ‘단순함’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단순함의 회복을 통해 인류의 자기 치유, 그리고 인류의 자기 치유를 통한 지구의 자기 치유로 생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면면을 살피고 있다.

그 단순함의 뿌리와 시작점을 견유학파 디오니게네스로 보고, 인류의 생존과 그 바탕이 되는 자연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킨다.

인류는 신석기 즈음으로 여겨지는 때부터 자연 상태를 떠나 역사의 상태로 들어섰다. 그 이후 역사는 사회를 창조하고, 사회는 다시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는 고도의 기술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의 인류는 자연과 너무나 동떨어진 기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삶은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그 복잡함이 인류의 근원적 생존과 행복에서 멀어지게 되었음을 슬며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는 법을 잊어버리고 사물(소비와 소유)에서 행복을 잠깐 느끼는, 영혼이 쪼그라든 현실을 비춰주고 있다. 그러면서 ‘단순함’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순함의 흐름

디오니게네스의 극단적 자연주의는 최소한의 삶을 대표한다. 필자가 볼 때 디오니게네스는 인간적 삶이라기보다 인위적인 모든 사회와 제도와 관습 등을 부정하는 동물적 삶(본능)을 인간다움으로 보고 있기에, 자연이 아닌 문화 속에서 자란 필자 자신은 공감보다는 충격과 저항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위적인 것을 경계한 자연에 대한 신념적 삶은 평범을 넘어서기에,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범주인 것은 분명하다.

디오니게네스를 이어 구약성서 욥기를 살피면서, 단순성을 ‘믿음’과 연결시킨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납득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우심에 대한 작은 의문이나 의구심 없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단순한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단순함은 어떠한 하나의 상태나 부분 혹은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분열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믿음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어 퀘이커 교도들과 계몽주의 루소, 반기술주의자 자크 엘룰, 신비주의자 베르그송, 토마스 머튼, 미니멀 라이프의 창시자 데이비드 소로, 발터 벤야민 등으로 단순함의 역사적 흐름과 변천의 과정을 풀어간다.

그리고 탈성장주의의 현재진행형으로 남미 안데스 원주민들의 우주관(세계관)으로서 ‘모든 사람 및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개념을 담고 있는 스페인어 ‘부엔 비비르(좋은 삶)’으로서의 ‘단순함’으로 마치고 있다.

식물 단순 화분 여백 흰색 배경 미니멀 심플 simple 단순 공간 잎 초록 자연
▲단순함의 힘. ⓒ픽사베이
빠름과 느림의 조화

현대에 와서 진행 중인 단순함과 복잡함의 대립은 ‘빠름’과 ‘느림’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생태주의, 반기술주의, 탈자본주의, 탈성장주의는 ‘생명에서 나와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고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빠름에서 내려와 느림의 가치를 회복하라는 외침이다.

저자가 살펴본 자들과 저자 자신도 현재 우리가 완전하게 성장주의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또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속도의 관성에서 인간의 본연에 해당하는 영혼과 생존의 바탕이 되는 자연을 놓치고 살아갈 만큼, 바쁘고 빠르게 살아가는 것은 무지를 넘어 위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목소리가 아닌 비주류적이고 작은 목소리에 해당하는 소수자들의 외침이 사실은 광야에서 울려퍼지는 선지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선지자들에게 표적을 구하고 해답을 제시하라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해답을 제시하는 자들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을 외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해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음성을 듣는 자들의 태도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해답은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종은 분명히 울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좋은 삶’은 모든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적재적소에 거하는 단순한 삶이다.

강도헌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초장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