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C
▲MdC. ⓒJR 엔터테인먼트 제공
MC, 그리고 잊힌 선구자들

힙합의 선구자들은 자기 몫의 영광을 챙기는 것에 실패했다. 오늘날 유튜브와 티비를 통해 모두가 볼 수 있는 모습과 초창기의 힙합은 조금 달랐다. 선구자들에게 힙합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고귀한 것이어서 가진 열정을 모두 쏟을 뿐, 조금이라도 그걸 이용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서툴렀다.

오늘은 힙합의 여러 면 중에 MC(엠씨)와 관련된 얘기들을 주로 하자. “Master of Ceremony, Move the Crowd.” 이게 초창기 MC라 불린 사람들 이름의 뜻이었다. 오늘날에 ‘래퍼(Rapper)’라 불리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 시절 MC들은 그랬다.

무대를 지휘하고 음악과 모두를 하나되게 만드는 것이 MC들의 역할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음악으로 모두를 하나되게 만드는 것은 실로 ‘종교적인’ 행위를 방불케 했다. 이는 오늘날 개신교 회중 예배에서 예배인도자와도 닮은 면이 있다. 과장이 아니라, 힙합의 태동은 그런 숭고한 데가 있었다.

MdC, 잊힐 뻔한 이름

힙합의 미학은 락(Rock)이 가진 에너지나 재즈(Jazz)가 가진 현장감, 클래식(Classic)이 가진 정갈함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재즈는 즉흥성 있고 또한 나름 정교하게 음악적이다. 이에 비해 힙합은 문학성이 더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면- 그래, ‘말의 잔치’였다.

힙합은 우리 근처의 것을 가지고 우리 공동체의 근거가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낸 예술이다. 턴테이블리즘(DJing)은 사실 장비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시도였으며, 비보잉(B-boying)은 발레, 마루운동에서부터 중국 고대 무술까지 포함시켜 만든 움직임이었다.

고급 물감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프레이 캔으로, 캔버스 대신 벽에다 그린 것이 그래피티(Graffiti)였다. 선구자들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조새가 날아다니고 공룡이 걸어다녔을 무렵부터도 인류가 그리기 시작했던 ‘벽화’의 재현이었다.

그리고 오늘 말하려는 MdC(엠디씨, Moved da Christ)는, 그런 선구자 중 한 사람들이며, 힙합의 숭고함을 말할 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잊힐 뻔한 이름들을 찾아내는 것은 역사 기록자의 직무이다. 이는 평론가의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렇게 장황한 소리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개척자, 선구자, 그 영광을 되찾다

초창기의 힙합 뮤지션들은 그 행위를 너무 거룩한 것으로 여긴 나머지 기록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때문에 초창기의 힙합음악은 불법 녹음된 라이브 음원으로 암시장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최초의 힙합음악, 랩음악이라는 영예는 다소 엉뚱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Rapper’s Delight’ 같은 노래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 시도와 그 음원을 있게 만든 기획자 실비아 로빈슨(Sylvia Robinson)을 리스펙한다.)

많은 이들이 MdC를 알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기에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게 한국 크리스쳔 힙합(Christian Hiphop)에서 MdC의 위치다. 하지만 이를 대중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이곳을 ‘신(Scene)’으로 여기고 소속감을 가진 모두의 숙제다. 이는 신의 모두에게 소중한 뿌리의 주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말한, 이를 기억해야 할 ‘대중’은 특히 한국교회의 성도분들이다. 힙합은 전통적으로 흑인 공동체, 또는 미국 사회 속의 다양한 인종적 소수자들을 위해 왔다. 여기에는 히스패닉, 라틴계, 동양계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인종적인 특성 외에도, 현재 힙합의 하위 장르는 다양한 기준으로 나뉜다. 지역적, 음악적, 가사적, 그리고 '정신적' 기준으로도 분류되곤 한다. 비슷한 원리로 힙합의 하위 장르이기도 한 크리스쳔 힙합은 응당 ‘크리스쳔’, 그러니까 ‘교회’를 위해 왔던 것이 그 흔적이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를 위해 노력해온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동안 이 역사의 동행자로서 선구자들과 함께 해온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이들 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성도와, 기독문화계와, 또한 한국힙합이 가진 책임이기도 하다.

이들은 당신이 모르고 있을 때도,
당신을 대표해 왔고, 당신을 대신해 왔던 목소리였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으며,
하나님의 나팔수들이었다.

이건 또한 힙합운동가들의 위대한 유산

7번 트랙은 이 열네곡의 흔적 중에서도 아마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현장의 기록이다. 아티스트 본인들은 그것까진 의도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비정규 라이브 음원이야말로 고대 성경 필사본과 같은 높은 가치의 힙합 유산이다.

허나 또한 크게 주목할 것은, 이 목소리들이 그때 단 한 번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대략 2001년부터 오늘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매해 끊이지 않고 수 차례 해왔던 정기공연과 거리 전도, 순회 사역/공연의 기억들은 유튜브 채널 ‘JR Entertainment’에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 있다.

물론 모든 힙합 선구자들이 이런 운동가(Activist)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뮤지션으로서 이름을 높이 얻었거나, 셀럽으로서 대중문화 주류에 편입되기도 했었던 이들 모두가 이 운동가들을 존중해 왔다. 힙합이라는 원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축이 바로 이 운동이었기 때문이다(Hiphop-Movement).

대안적 움직임, 그러나 힙합과 교회 양쪽 모두의 주류에게서 외면받다

먼저 언급한대로 크리스쳔 힙합 또는 가스펠 힙합(Gospel-Hiphop)이라 부르는 장르는 힙합 문화의 하위 장르에 속한다. 이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 또는 종교음악(Religious Music)의 하위 장르이기도 하다. 이 이중성은 사실 모던락을 기반으로 한 현대 회중 찬양이라던가, 특히 발라드가 모티브가 된 한국 현대 기독교 음악 역시도 가진 것이었다. 하지만 유독 “힙합”이기에 양쪽 모두에서 소외 받아온 불행한 면이 있다.

그 사정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완전한 문화는 없고, 모든 문화에는 정(正)과 반(反)의 속성이 존재한다. 힙합 문화는 초창기 선구자들이 추구했던 것과는 다르게, 힙합 음악에 거대 자본이 유입되고 셀럽 층이 형성되면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힙합은 흑인 공동체를 위협했던 가난과 폭력, 범죄의 에너지를 대체한 사랑과 평화, 화합의 문화였다. 그러다 점차로 향락과 사치를 대변해갔고, 종종 또 다른 폭력의 촉발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힙합의 역사에서 ‘확장과 번영’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락과 변질’로도 해석될 수 있는 측면이다. 그런 힙합의 문제적 속성들을 자정하고 반대하는 역할 또한 크리스쳔 힙합이 해온 것이기도 하다. 이는 주류 힙합에 대해 크리스쳔 힙합이 가진 ‘반문화적(Counter-Culture) 속성’이다{이 일을 주로 해왔던 것은 컨셔스랩(Conscious-Rap)이라 불리는 또 다른 하위 장르 그룹이기도 하다}.

교회와 종교음악들에 있어서는- CCM의 대중적 유행과 성공, 모던워십이 초창기에 받은 주목과 보편화 이후에, 지나친 권위주의, 위선, 독선, 배타성 등의 일부 변질된 속성들이 점차 나타났다. 그것에 대해 크리스천 힙합은 반대했다. 초창기에 힙합이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품어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듯이, 예수의 제자들이지만 지역교회와 교계의 주류 속에 편입되지 못한 고독한 방랑자들을 크리스천 힙합이 찾아가고 만나 왔다. 이는 현대 기독교 음악에 대해 크리스쳔 힙합이 가진 반문화적 속성이다.

이런 것이 힙합과 기독교 음악의 정과 반, 그리고 그 가운데 크리스쳔 힙합이 대안적으로 해온 일들이다. 그런 반문화적 속성, 대안문화적 속성(Alternative-Culture)으로 인해 크리스쳔 힙합은 양쪽 모두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양쪽 모두의 주류로 부터는 멀리 외면받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MdC
▲MdC 20주년 기념앨범 자켓. ⓒJR 엔터테인먼트 제공
돌아온 힙합 큰아들, 마땅한 영예를 얻다

이 앨범의 사운드와 리릭시즘(Lyricism)은 그러한 불행 가운데서 이제 이들의 장자권(長子權)을 주장한다. 한국힙합의 아들, 한국교회의 아들로서 이들의 상속권을 주창한다. DJ JARVIS(이주성), NOYO(노요섭), KAMEL(김은성) 세 MC의 가사와 랩은 복음에 충실하며, 라이밍과 톤은 90년대를 추억하게 만든다. 이런 면은 2021년에 오히려 신선하고 더 새롭다. 본인은 특히 노요의 키치한 라이밍과 메세지 강한 랩을 즐겁게 들었다.

스타덤(Stardom ENT.), U.K.A(UnKnown Artists), 문화선교단체 히스팝(HISPOP) 등을 거쳐 현재 일본 오키나와에서 사역중인 나태일 선교사(Nagg Rock The P)는 한국힙합의 시작을 함께 한 플레이어 중 한 사람으로서 근본 충실한 사운드를 재현했다. 뿐만 아니라, 몇몇 트랙들의 맨 처음 프로듀싱됐던 비트들이 원작자 Riby-J의 부고로 인해 소실될 위험에 처했는데, 이를 자청해서 보완하고 재창작한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프로듀서 날로(NALO)의 참여라든지, 특히 마지막 곡을 젊은 신진 프로듀서 일랑(1LANG)이 담당한 것은 작품 밖에서 볼 때에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 이 앨범이 단지 과거의 흔적을 재현한 것을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승아, B.John 등 OB의 등장도 반갑지만, Alex Chung의 보컬과 가장 젊은 MdC 멤버 카멜의 랩은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이 앨범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1번 트랙의 스크래치나 13번 트랙의 음성 메세지 스킷은 황금기 힙합을 추억할 수 있는 귀한 매개다. 그 맛과 멋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분명 느끼리라. MZ세대는 여기에서 오래된 것의 새로움을, 뉴트로함을 느낄 것이다. 그외 음악적인 면에서 감상의 재미를 더해 줄 첨언들은 별도로 공개되는 디제이 자비스의 코멘터리에서도 다뤄진다.

MdC, Moved da Christ. 이들은 돌아온 탕자가 아니며, 버림받은 모퉁이돌이요 십자가 졌던 작은 예수들이다. 이 앨범은 한국교회와 한국힙합에 대한 이들의 사랑이요, 섬김의 흔적이다. 이제는 우리가 존중을 보여 줄 차례다.

*첨언:
저자는 본 리뷰의 독자를 주로 한국교회의 일반 성도, 또는 일반 힙합에 대해서만 약간의 지식을 가진 힙합팬으로 상정했다. 그러기에 서론이 무척 길었던 것에 양해를 구한다. 한국 크리스천 힙합의 역사는 아직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무관심했던 주제이며, 그러기에 더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리뷰가 이 앨범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리튼바이라이노
▲리튼바이 라이노. ⓒJR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창수 전도사 a.k.a WRTN by RHINO (리튼바이 라이노)
힙합, 케이팝 평론 모임 ‘매디’ 정회원, 필진. ⌜주간경향⌟, ⌜베스트 일레븐⌟, ⌜처치 미디어⌟ 등 일반, 교계의 다양한 지면에 기고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김봉현의 한국 힙합 100', 월간지 ⌜에스콰이어⌟ 등에는 자문 또는 직접 인용됐다. 힙합과 교회 그리고 동시대 간의 삼자대화를 돕는 일을 사역으로 생각하고 섬긴다. @WRTNbyRH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