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몬드 투투
▲남아공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WCC
남아프리카공화국 흑백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투쟁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Desmond Mpilo Tutu)가 26일(현지시간)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는 교계는 물론, 비종교적 분야까지 포괄하는 보편적인 인권 옹호자였다”며 “투투 대주교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투철한 애국자였고,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성경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적 지도자”라며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투투 대주교의 사인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이날 성명에서 “투투 대주교는 특별한 사람이고, 사상가이자 목자이자 지도자”라며 “남아공과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그의 삶은 축복이었다”고 밝혔다.

투투 대주교는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진 뒤 넬슨 만델라가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됐을 때, 남아공에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인 주인공이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민주화와 흑인 자유 투쟁의 양대 지도자였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No Future Without Forgiveness)’는 구호를 앞세워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구성,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고 평가받는다.

투투 대주교는 1997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뒤 투병해 왔고, 2010년 은퇴 후 조용히 가족과 여생을 보냈다. 2015년부터 입원 소식이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5월 부인 레아 여사와 코로나19 백신 접종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7일 요하네스버그 서쪽 마을 클레르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그는 흑인 아이들에게 열악했던 교육 환경에 분노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30세에 성공회 성직자가 된 이후 1986년 대주교에 임명됐다.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대남아공 제재를 지지했고, 인권 신장을 위한 국제활동에 힘썼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에는 부패했던 흑인 대통령 제이콥 주마 정부(2009-2018)와도 각을 세웠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용서 없이 미래 없다(홍성사)>, <하나님의 아들 이야기 성경(옐로브릭)>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