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단어 ‘갑질(Gapjil)’
속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힘센 사람에 당하고, 약한 사람에게 푼다는 뜻
남 갑질 지적 시간, 자신 돌아보는 게 ‘된 사람’

왕따 조롱 괴롭 분노 왕따 갑질 소녀 고통 비난
▲ⓒ픽사베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K-Pop과 K-drama 등의 각종 문화 콘텐츠(Contents)가 국제사회에 전파되면서, 요즘 대한민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글이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한글 발음 그대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는 빈도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2021년 한 해에 무려 26개의 한글 단어가 옥스퍼드에 등재되었는데, 이는 지난 45년간 등재된 20개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등재된 단어 몇 개를 살펴보면 한글, 김치, 온돌, 태권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가 하면 불고기, 김밥, 동치미, 반찬, 막걸리 등 음식 이름도 등장하고, 언니, 오빠, 누나 같은 고유명사나 대박, 트로트, 재벌 등 최근에 많이 쓰는 단어도 포함되었습니다.

‘파이팅’의 경우 예전에 우리가 콩글리쉬라고 쓰기 민망해하던 단어였으나 이제는 영어권으로 역수출되어 어엿한 등재 단어가 되었는가 하면, ‘콩글리쉬’조차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K-Pop, K-drama처럼 ‘K-’로 시작하는 여러 단어가 들어간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옥스퍼드에 등재된 단어 중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단어가 있는데 다들 아는 바와 같이 ‘갑질(Gapjil)’이 그것입니다. 구글 번역기에 ‘갑질’를 입력하면 영어로 Gapjil로 표기되는데, 민망함이 앞섭니다.

뉴욕타임스는 Gapjil에 대해 “중세 시대 영주처럼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 업자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니, 우리나라에 고대로부터 영주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까요? 정반대로 하도 갑질을 못 해봐서 졸부(猝富) 티를 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고래로부터 ‘갑질 민족’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나라 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이 말을 사용할 때는 힘이 약한 사람이 욕을 당한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뒤에 가서 불평하거나 엉뚱한 데 가서 화를 풀 때 쓰는 말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종로에서는 왜 뺨을 맞는지, 한강에서는 또 누구에게 눈을 흘기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이 생긴 유래를 추적해 보니, 이 속담이 바로 ‘갑질’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 초에 종로에는 육의전이라는 시전(市廛)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라의 허가를 받아 비단, 무명, 종이, 명주, 모시, 어물 등을 판매하던 상점입니다.

이들 시전 상인들은 나라의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물품 판매를 독점하면서, 난전(亂廛)에서 장사하는 다른 상인들이나 물건을 사러 오는 일반 백성들에게 대단한 위세를 부렸습니다.

반면 한강의 마포나 노량진, 서강 같은 나루터 부근에는 물길을 이용해 전국의 물물이 모여들던 곳이므로, 자연스레 비공식적인 시장 즉 난전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난전은 불법이지만,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조정에서도 적당히 눈감아주곤 했습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은 이러한 조선 시대의 상거래 풍속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즉 위세 높은 종로 시전 상인에게 봉변을 당해도 아무 소리 못 하다가, 한강변에 있는 난전 상인에게 가서는 큰소리를 치거나 화를 푼다고 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속담을 풀어 쓰면 이렇게 됩니다. “힘센 사람에게 갑질당하고, 힘 약한 사람에게 갑질한다.”

보편화된 SNS 덕분에 전 국민이 기자(記者)가 된 시대입니다. 지인과 소통하기 위해 종종 페이스북을 열면, 온갖 세상 소식이 다 올라옵니다. 그 가운데 정치인이나 연예인, 혹은 가진 자들의 갑질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런 지적에 호응하는 댓글 쓰기에도 참 열심입니다. 그렇게 몸글과 댓글에서 남의 갑질을 지적하는 것은 정의감에 불타는 국민들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열심을 표출한 것일 테지요.

그런데 잠깐 돌이켜보면, 갑질은 꼭 재벌이나 권력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속에도 갑질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의 갑질을 지적하는 내 속에 내가 할 갑질을 남이 독차지하는 것에 대한 시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매매할 때, 보통 구매자는 갑이 되고 판매자는 을이 되어 굽신거립니다. 드문 경우이지만, 어떤 물건에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 갑을 관계가 바뀝니다. 판매자는 갑이 되어 부르는 것이 값이 되고,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을이 되어 웃돈을 얹어주며 사정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갑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갑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설명을 참고할 필요도 없이, 갑이 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갑질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갑이 되면 갑질을 합니다. 그러니 남 갑질한다고 지적할 시간에, 그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된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할 때, 나를 가리키는 나머지 세 손가락에 주목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갑의 자리에 서고도 갑질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테지요.

최광희
▲최광희 박사.
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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