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손, 죽음 ⓒpixabay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주중에 병원 사역을 병행하다 보니 환자들을 자주 본다. 한동안 병상 세례를 원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사연을 들어보면 거의 한결같다. 평생 완고한 자신의 심령이 복음 앞에 어느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내용이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가족들의 끊임없는 중보기도(도고)가 있었다.

한때 필자는 병상 세례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평생 자기 멋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술궂은 마음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임종 직전 환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로는 그런 편견이 사라졌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한편 강도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했다는 걸 알려주시지 않았는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평생 죄 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지푸라기를 잡는다고, 강도를 폄하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임종 직전이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누구라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명백히 알려주신 것이다.​

어느 날 오전 급한 연락을 받고 6층으로 향했다. 담당 과장님에게 상황을 알아보니,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위해 그동안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식도암 말기로 언제 소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아버지가 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직원들과 함께 병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이사장님도 동석했다. 성경구절을 한 군데 찾아서 읽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들려드렸다.

​“이 세상을 살다 목숨이 다하면,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우리가 의인으로 거듭나고 마지막 그날에 의인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환자의 신앙고백을 확인할 시간이 되었다.

“김○○ 씨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죄인의 구주이심을 믿으며,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믿습니까?”

환자는 숨이 가쁘지만, 분명한 어조로 “예”라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직원들이 그동안 복음 전도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새 생명이 탄생했음을 확신하고, 나는 목사로서 세례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주 예수를 믿는 김○○ 씨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병상을 지키고 있는 며느리의 말이 자꾸 여운으로 남는다.

“목사님, 이 집안에서 저 혼자 예수님을 믿고 있어서 그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버님의 마음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주께서 이 집안에 여인을 선교사로 파송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간 홀로 버티면서 한 영혼을 언약 백성으로 만들기까지, 여인의 고충이 얼마나 극심했을까. 마스크 위로 드러난 여인의 눈빛에 이제 하늘의 위로가 임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이 여인뿐만 아니다.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환자가 겨우 몸을 가눈 채 흐느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제껏 주님을 모르고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복음을 깨달은 실존적 눈물일 것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몸을 벌벌 떨면서 세례를 받겠다고 흐느끼는 모습은 젊은 목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이 경우도 환자보다 가족의 사연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오직 믿음 하나로, 가냘픈 여인이 시각장애인 남편과 결혼해서 이제 어머니까지 천국 복음을 듣게 한 위대한 인생 스토리이다. 조건 따지며 연애하고 결혼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병상 세례 사건이다.

말하는 김에 하나만 더 소개하고 싶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어르신이다. 가족들도 연락이 닿지 않아 병실에 홀로 계셨던 분이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이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병원 직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신앙고백을 확인하게 되었다. 숨이 가쁘지만 힘겹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신앙을 고백했다.

세례를 베풀고 잠시 기도한 후에 눈을 떠보니, 환자의 표정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령께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셔서 하늘의 평안을 누리게 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병실을 나오려는데, 배우자로 보이는 어떤 여성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연락을 끊었지만 남편의 마지막은 지켜보고 싶었던 것일까.

돌이켜 보면, 임종한 환자들과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신적 행복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의 소유와 형편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행복’이 아니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고(至高)의 행복을 맛보았다. 그런 행복의 전달자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고 싶다.

권율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협력)으로 섬기면서 여러 모양으로 국내선교를 감당하는 중이며, 매년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외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