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성탄트리
▲한 대학교의 과거 성탄 장식. ⓒ크투 DB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마가복음 1:2-4)”.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마가복음 1:7-8)”.

복음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 마가는 선지자 말라기와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물론 이사야의 이름만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마가는 그 예언된 사자가 세례 요한이었음을 보여줍니다.

3절의 ‘주’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렇듯 마가는 벌써부터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주’는 대개 구약에서 ‘하나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제사장과 장로들이 그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이유와 그 주장들이었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죄 사함으로 이끌어 줄 회개의 필요성을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전한 것과 비슷한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백 년간 선지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예언된 탄생의 주인공입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이 입었던 옷까지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입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 대림(待臨)의 시기를 맞이하여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이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되새깁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동안 한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인간들은 갈수록 더 사악해지며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처참한 현실뿐입니다.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는 아기 예수가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으로 재림하셔서 용서가 허락되지 않는 최후의 심판을 예언하셨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고 더 참혹한 죄를 생산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회개로 표현되는 마음의 전적 변화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드러나는 변화의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씻는 의식을 행하였는데, 특히 유대교로 들어오는 이방인들에게 그러했습니다. 새로운 것은, 세례 요한은 그 씻음의 세례가 이방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필요함을 강조하고 외쳤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또 새로운 것은 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이가 그의 뒤를 이어 오고 계시다고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외적이며 상징적인 씻음의 물을 통해서만 세례를 줄 수 있었지만, 그의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씻어주시고 다시금 새롭게 해주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세례 요한의 사역이 전적으로 다른 것임을 말해줍니다.

대림절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아기 예수님이시지만, 따지고 보면 예수님께서는 준비와 기다림의 대상이자 목적이고 실제로 준비하고 기다리는 행위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준비하고 기다리느냐에 따라, 아기 예수님의 성탄과 재림의 의미도 얼마든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주인공은 아니라도, 그 비중은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 역시 바로 이 점을 대단히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분을 제대로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알려준 확실한 방법,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던 그 방법은 바로 ‘회개’였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때도 단순한 정결 예식이나 의례적 행위로서가 아닌, 회개를 전제하고 지향하는 표시로 세례받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세례는 회개의 시작이자 표시일 뿐, 완성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그 완성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실제 삶의 변화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깊이 통회했더라도 자신의 삶을 선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회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악어의 눈물’이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께 전심을 다하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세례 이전의 삶을 뒤로 물리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대림의 시기를 진정한 회개로 그 분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따라 방향을 전환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확고한 신뢰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당신에게 주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은 일반 서적을 읽는 것과 달라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읽기 전에 기도가 준비되어야 하며,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 중에 이루어지며 기도로 끝나야 합니다.

그렇게 실천할 때 우리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 읽기를 기분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끈기 있는 자세로 계속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신비가 드러나, 마음에는 각자 다르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환경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리 다가갑니다. 꼭 전문가가 되려고 성경을 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삶의 기둥과 버팀목과 영적 양식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점점 우리 마음 속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오심을 철저히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 모습대로, 우리 신앙인들 역시 세례 요한의 기다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 준비 과정과 방법은 성경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며 기쁘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세례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합당한 열매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며 내 뜻대로가 아닌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과 신실한 자세로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기쁜 복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병마와 시달리며 고달픈 삶으로 이어가는 사람들과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모함을 당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과 억눌린 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그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준비의 시작이 아닐까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의 속임수에 걸려들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지혜를 통해 분별력을 키워, 사랑하는 내 가족을 비롯하여 내 이웃, 내 민족에게 아기 예수님을 소개하며 그 분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