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주술에 빠져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퇴장 후 인기 캐릭터
과학기술 의존 캐릭터로는, 참신성 부여 힘들어
원시종교적 요소 차용에도, 종교적 감성은 희박

스파이더맨
▲올 연말 최대 기대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주술 중심의 서사: 멀티버스 이론과 주술에 기댄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금주 개봉한다. 올 연말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로서, 최근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평가 양편으로 계속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를 살려낼 작품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들을 통해 전체적인 서사는 어느 정도 밝혀진 상황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빌런인 미스테리오의 계략에 의해 정체가 만방에 폭로된 스파이더맨, 즉 피터 파커는 자신의 일상을 되찾고 주변인들을 보호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에서 가장 유능한 주술사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간다.

피터는 전 세계가 자신의 정체를 망각하게 만들 방법이 있는지 묻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 부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술을 시행하지만, 중간에 피터가 자기 주변인들의 기억은 예외로 할 수 없는지 부탁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집중력을 깨뜨리게 된다.

이로 인해 주술의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다른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들 전체를 현재 피터가 존재하는 세상으로 불러오게 된다. 이로써 피터는 자신을 증오하는 여러 빌런들을 한꺼번에 대적하며 커다란 위기에 처한다.

이번 작품에서 마블 스튜디오는 다시금 멀티버스 이론을 기반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창안했고, 팬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마블과 합작하기 이전 소니 픽쳐스 시절 스파이더맨 영화들의 서사와 빌런을 기억하고 있는 스파이더맨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대미를 장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부흥을 주도했던 두 캐릭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퇴장한 이후 그나마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라고 한다면, 단연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라고 볼 수 있다.

헐크는 특유의 분노어린 캐릭터성을 잃어버렸고, 토르는 <토르: 라그나로크> 당시까지 보여준 강인한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결국 현재로서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기존 주연급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등장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바로 이 두 인기 캐릭터의 협력을 그려낸 영화인만큼, 마블 스튜디오와 마블의 팬들 양편 모두 흥행에 큰 기대감을 걸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가장 큰 무기는 주술이다. 신체 능력만 따지면 어느 정도 무술을 단련한 일반인 수준이지만, 천재적인 지능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을 비롯한 세상의 물리법칙을 자기 뜻대로 조작하는 주술능력 덕분에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히어로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스파이더맨
▲현 마블 세계관 최강 캐릭터 중 하나인 닥터 스트레인지.
◈주술에 빠진 마블: 과학과 기술에서 신화와 주술과 전설로, 마블의 앞길

이로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에서는 과학보다 주술이 전체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까지는 아직 주술보다 과학이 전체 서사와 세계관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페이즈 3까지 서사를 주도해온 캐릭터 가운데 신화적 인물인 토르와 로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과학의 힘으로 히어로 혹은 빌런 역을 이어나가는 캐릭터들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헐크, 앤트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실드 요원 등 주요 캐릭터들 상당수가 지구와 외계의 과학기술에 힘입어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반면 현재까지 페이즈 4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캐릭터 대부분은 신화나 주술의 영역에 속한 권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편으로 <완다비전>의 스칼렛 위치, <로키>의 로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샹치, <이터널스>의 이터널스 캐릭터들까지 대다수가 신화와 주술, 전설 영역에 속한 신비로운 힘으로 히어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서사의 본격적인 출발점 역시 주술로부터 출발한다.

주인공은 분명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우연한 사건(특별한 종류의 거미에 물림)을 통해 힘을 얻은 스파이더맨이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스파이더맨은 서사를 주도하는 입장이 아니라 주위 상황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 서사 속 상황을 주도하는 인물은 주술사 닥터 스트레인지이다. 물론 닥터 스트레인지도 다른 멀티버스의 빌런들을 한 데 모아오는 참사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시도한 주술이 영화의 핵심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해결 과정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지도와 협력에 의존해 스파이더맨이 움직이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스파이더맨.
즉 실제적으로 서사를 이끄는 것은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다. 그만큼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가 현재 마블 세계관 전체에서 히어로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능력으로만 따지면 캡틴 마블도 최고 수준의 히어로지만, 영화적 매력으로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한참 못미친다. 그만큼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 설정과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뜻이다.

주술, 신화, 전설 영역에 속한 캐릭터에 점차 더 의존해가는 상황,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밟아나갈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초 출발점이었던 2008년 <아이언맨> 당시만 해도,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히어로 캐릭터는 꽤 참신한 것이었다.

특히 특별한 신체 개조를 거치거나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채 순전히 아이언 수트와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에만 의존해 히어로가 된 경우는 아이언맨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3까지 10년이 넘게 마블 히어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팔콘, 앤트맨 등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캐릭터가 여럿 등장했다. 더 이상 과학기술에 근거한 능력을 가지고는 히어로 캐릭터에 참신함을 부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과학적 도구와 장비, 신체개조, 방사능 오염, 인공지능, 복제인간 창조, 특별한 생물을 통한 전염 등 과학적으로 나올 만한 히어로 서사 요소는 이미 거의 다 채택된 상황이다.

반면 주술과 신화, 전설의 영역은 과학기술 영역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훨씬 더 크게 열려 있다. 과학기술에 의존한 히어로 캐릭터 설정과 서사는 어느 정도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 체계를 의식해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주술, 신화, 전설 영역은 그런 제한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그저 주술이고 신화이고 전설이기 때문에 매우 허구적인 서사나 능력도 납득될 수 있다. 마블판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인 셈이다.

스파이더맨
▲원래 스파이더맨 단독서사 대부분은 주술이나 신화 영역과 크로스오버되지 않는 과학기술 기반 서사였으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융합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점차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서사로 갱신되고 있다.
즉 서사와 캐릭터의 참신성을 계속 갖춰나가기 위해 마블 스튜디오는 점점 더 이런 초현실, 초자연 영역의 요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블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외통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주술, 신화, 전설 등은 기본적으로 원시 종교를 지탱하는 핵심요소들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점점 더 종교적 감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일정 부분 그런 측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재의 마블 스튜디오 작품들은 원시종교적 요소들을 적극 차용하고 거기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도 종교적 감성은 날이 갈수록 더 희박해지고 있다.

이는 마블 스튜디오가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차용할 때 그것들 속에 원래 담겨 있는 삶과 죽음의 공존과 교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흥미 위주로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