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2021년 12월 둘째 주
▲시를 쓰고 있는 소강석 목사.
“어젯밤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제가 초창기에 쓴 시들을 묶어서 나온 첫 시집이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였습니다. 그때 시들은 처녀작들이고 문학성과 예술성이 조금 부족한 때라, 시심과 신앙심이 서로 만나서 썼던 시들입니다.

그래도 영은출판사를 운영하시던 이탄 시인이 제 원고를 보더니 “아직은 덜 다듬어졌고 덜 성숙되었지만 시심 하나는 깨끗하고 계속 시를 쓰면 끝없이 발전할 것 같다”고 하면서 기꺼이 시집을 내 주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작이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입니다. 사실 이 제목 자체가 시지요.

“어젯밤 꿈엔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해서 / 엉엉 울어댔습니다 / 타 문화권에서 / 선교활동을 하다가 /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어 돌아온 / 한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서 말입니다 / 경상도 어느 외딴 섬에서 / 당신의 품안에 그분을 안겨 드리며 / 온몸이 부서진 시신을 보고 / 저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

내가 저렇게 죽어야 했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 / 내가 저렇게 조각난 주검이 되어 /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 왜 나는 저 기회를 빼앗겼을까 / 나는 무엇을 하다 / 저 영광을 놓치고 말았을까 / 내가 그여야 하는 걸 /

하늘 영광은 주검을 덮습니다 / 그의 주검은 / 육신 온전한 내 몸뚱이보다 아름다웠습니다 / 그래서 저는 /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일찍이 저에게 / 홀로서기를 연단시켜서 / 험한 세상 잘 이기며 / 사명 잘 감당하는 / 고고한 한 그루의 소나무로 남아 있게 하신 / 당신 뜻이 고마운 줄 알면서도 / 어젯밤 꿈에는 왠지 섧기만 했습니다 /

당신 만날 새벽에 / 꿈에서 깨었을 땐 / 그 짜디짠 눈물이 / 귓속까지 고여 있었습니다 / 어느덧 익어 가는 세월 속에서 / 이제 저도 조금씩 당신을 닮아가고 / 한 걸음 한 걸음 / 당신 계신 / 영원한 본향에 이를 때가 / 가까움을 느낍니다 …(하략)”.

이 시는 프라미스 콤플렉스 건축을 앞두고 설계를 하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가 평범한 것 같지만 시적 화자는 이슬람권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은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소강석
▲소강석 목사의 첫 시집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죽음이 원통하고 억울하다고만 하면 산문이지요. 참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이 선교사의 죽음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순교였습니다. 그의 순교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부러워서 엉엉 울어댄 것이죠.

시적 화자의 소원은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하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에서 보듯이 순교였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시적 화자의 소원이었던 것이죠.

시적 화자는 양떼를 관리하며 큰 교회당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목회자였기에, 현실적으로 이슬람권의 선교사로 가서 죽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왜 그토록 섧디섧게 울었을까요? 그것은 순교를 갈망하는 속마음을 꿈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께 보여드려진 것이죠.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교회당 건축을 준비하는 시적 화자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시려고 꿈을 통해 선교사의 죽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시적 화자는 꿈속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부러워서 엉엉 울었던 것이지요.

이런 시는 목사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일 것입니다. 제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목사이자 시인이었기 때문에 꿈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로서 형상화한 것이죠.

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꿈 이야기를 했다면, 감동을 주더라도 산문적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문적이 아닌 시의 형식을 통해 고백한 시이기에 시적 화자의 따뜻한 숨결, 아니 제사장적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시의 말미에는 고백을 넘어 예언자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 시를 생각하곤 합니다. “나의 마음은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져 있고 친밀한가. 그리고 지금도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내 가슴은 얼마나 뜨겁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가.”

제가 최근에 정말 생시와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잖아요. 이 꿈은 그냥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연합사역과 공적사역과 관련된 정확한 상징, 이미지를 통해서 예시를 해준 꿈이었지요.

그 꿈이 요즘 상황에 너무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나는 꿈의 사람이구나, 내 영성은 죽지 않았고 세속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기를 원하며 그 꿈이 저의 시와 노래와 사역으로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꿈속에서 이따금씩 하나님의 시그널을 받고 하나님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고 계신가요? 어젯밤 토요일에도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 만나는 꿈을 꾸셨나요? 벧엘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사닥다리를 보았던 야곱처럼 말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