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성령 강림의 중요한 목적, 교회의 가장 큰 사명
기득권 내려놓고 섬기며 헌신하는 ‘성육신’ 선교

주안대학원대학교 학술대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JIU
주안대학원대학교(총장 윤순재, 이하 JIU) 개교 1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선교하는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라는 주제로 지난 4일 개최됐다.

이날 국제학술대회는 당초 주안장로교회(담임 주승중 목사) 주안성전에서 50여명 참석하는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술대회를 직전 인천 지역 ‘오미크론’ 사태로 비대면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장소도 JIU로 변경했다. 한국 유일 초교파 선교전문 대학원인 JIU는 지난 6년간 한국 사회 변화와 세계 선교 상황에 따라 연구 주제를 정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

‘성육신과 선교적 교회(요한복음 1:14)’라는 제목으로 개회예배 설교를 전한 윤순재 총장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란 말씀(Logos,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임재하신(Immanuel) 진리”라며 “이를 따라 초창기 의료선교사들은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등을 세워 조선 사람들을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구해냈다. 헤론(John W. Heron)의 경우 1883년 테네시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교수직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사양하고 조선 선교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윤순재 총장은 “선교(mission, 宣敎)란 예수 구원의 복된 말씀(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일 내지 이 일을 위해 파송되는(보냄을 받는) 행위”라며 “선교의 최고 모델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부 하나님에 의해 이 땅으로 파송되신(성육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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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재 총장이 개회예배 설교를 전하고 있다. ⓒJIU
윤 총장은 “선교는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성령 강림의 중요한 목적이고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라며 “성육신 선교란 자신이 받을 것을 다 받지 않고(권리 포기) 어려운 현장에 들어가(파송), 필요한 역할을 다 하는 것(사명)”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세계적 선교학자 故 랄프 윈터(Ralph Winter) 박사가 지난 2007년 컨퍼런스에서 전한 ‘서구 선교의 12가지 실수(12 Mistakes of Western Mission)’를 토대로, ‘한국 선교가 성찰해야 할 10가지’도 제시했다.

이는 ①교회 개척만이 선교의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오해 ②현지 지도자를 존중하지 않고 선교사 입장을 강조 ③외형, 가시적 성과를 우선하다 현지 자급과 지속성을 놓침 ④목회자 선교사 중심으로 평신도 선교사를 차별 ⑤타문화권 선교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쉽게 접근 ⑥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외면하고 교회성장의 도구로 생각 ⑦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선교비로 현장을 통제 ⑧현장 업무에 몰입하다 객관성을 놓치고 기록을 남기지 않음 ⑨공적(Public) 영역의 선교를 간과 ⑩‘선교지 한국’을 ‘기독교 국가 한국’로 생각하고 무례하게 행동 등이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개혁해야 한다. 물질 우선주의에서 신앙 우선주의로, 퇴폐 향락주의에서 영성 경건주의로, 권위주의에서 겸손과 섬김으로, 지역주의와 파벌주의에서 연합과 협력, 존중으로, 교권주의에서 진리와 성경, 복음주의로”라며 “무엇보다 본질적 변화로, 선교하는 교회(Church with mission)에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바뀌어야 한다. 이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섬기며 헌신하는 ‘성육신’의 실천”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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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렛 교수의 강의 모습. ⓒJIU
◈선교는 복음의 부산물이 아니라 중심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기쁨의 응답

학술대회에서는 오전 호주 선교학자 멜버른신학교 존 플렛 교수(John Flett)와 장신대 백충현 박사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담겨진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오후에는 선교적 모델의 실제 모델로서 주안장로교회 행정수석 조원 목사와 블루라이트 강남교회 송창근 목사가 사례 발표를 통해 한국 상황에 적합한 선교적 교회를 모색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부활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존 플렛 교수는 신학적 혼란과 명백한 형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건설적 신학을 제시했다. 선교는 복음의 부산물이 아니라 중심이며, 성령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기쁨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존 플렛 교수는 “‘하나님의 선교’ 중심 주제는 하나님께 선교가 속했고,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 성령이 본질적으로 선교사란 뜻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에서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며 “‘하나님의 선교’란 용어가 폭넓게 사용됨에도, 하나님의 본질이 곧 선교사라는 함축적 의미나 생생한 신학적 중요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렛 교수는 “심판을 전제로 한 선교는 회개와 회심에 관한 것이지만, 회심 후 선교에서 믿음은 삶 속에 구체화되지 못했고, 선교지의 환경과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게 했다”며 “심판을 전제로 한 선교는 주로 교회의 벽 너머에서 수행되는 활동이며, 이것은 복음을 정적 문화 형태, 즉 선교는 문화적 복제와 서구 식민지화를 의미했다. 그래서 당시 최고의 비즈니스가 선교적 방법론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선교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본성이다. 선교가 하나님 자신의 생명력을 특정해내듯, 선교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구속된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며 “‘하나님의 선교’는 앞선 선교적 활동에 대한 주장들과 달리 첫째로 하나님의 본성,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주장이다. 하나님 안에 본질적인 것(1차)과 다음(2차)이 있다는 칼 바르트의 생각은, 선교적 질문과 직접 연결된다. 이는 참된 기독교인이 영적 존재로서 예배의 삶(1차)을 살면서, 그 성품에서 파생된 선교적 삶(2차)을 살아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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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렛 교수의 화상 강의를 듣고 있다. ⓒJIU
이에 대해 “하나님의 사도적·선교적 행위는 하나님 자신의 ‘넘쳐나심(잉여)’에 속한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살아있으심과 일치이며, 본질적으로 그가 표현된 역사”라며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에서부터 선교는 시작되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속성은 선교적”이라고 전했다.

또 “부활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 자체가 선교적이다. 교회는 이 완전함 안에서 부름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아들을 닮아 살아가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신성과 인간의 선언적 교제 안에 살아가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선교적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의 화해적 성취에서 2차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그의 증인들을 임명하고 부르신 것은 사역의 완성 후 이를 증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완성해야 할 사명의 한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존 플렛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자신의 역사에 참여하는 2차적 주체로 부르시고, 성령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인간 공동체를 화해의 교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환의 능력자이시며,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역사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공동체는 하나님 자신의 온전하심에 따라야 하고, 온전한 화해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화해의 공동체는 피조물 전체의 화해에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 기독교 공동체는 선교 공동체이며 부활의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플렛 교수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는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선교여야 하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르는 것이다. 선교적 실천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며 “첫째, 선교의 중심적 형태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데 있어 한계를 설정하는 방법에 대해 비판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도록 하고,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 ‘우주적인 하나 됨’을 추구하게 한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역사 속으로 밀어넣고, 낯선 사람들과 화해하도록 밀어넣는다”고 했다.

이와 함께 “현재 선교 형태의 이론적 틀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즉 성경 본문에 대한 선교적 해석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은 우리와의 ‘동반자적 역사’로의 삶”이라며 “선교의 근거는 최후 심판에서의 고립과 절망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YES’의 판단과 그 필연적 결과로 따르는 기쁨에 있다. 선교는 복음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이다. 선교란 일종의 기쁨의 폭발과 함께 시작된다.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소식은, 도저히 감출 수 없고 말해야 하는 기쁜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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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충현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JIU
◈‘하나님의 선교’, ‘프로세시오 데이(processio Dei)’
삼위일체 하나님의 발출·출원과 연관성에서 접근해야

이어 ‘미시오 데이(missio Dei) 개념에 대한 비판적 분석: 삼위일체적 이해를 위한 제언’을 제목으로 백충현 교수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뒤 이에 대한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이해와 재구성 필요성을 주장했다.

백충현 교수는 “‘하나님은…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로, 시간의 끝까지… 교회를 보내신다’며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 공식 제안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은 당시 선교의 지배적 패러다임이던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와 차별화했다”며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 선교의 시작자 및 주체이시고, 교회는 선교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 수단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여전히 교회의 정체성 또는 과제에 초점을 두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 많이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교회론적이고, 근본적으로 기독론적”이라며 “이후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문화(당대성), 그리고 세상에 대한 강조로 나아갔다. 이는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보편성을 함의했다”고 풀이했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충분히 삼위일체적이려면, 아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선교’보다는 ‘프로세시오 데이(processio Dei)’ 개념과의 연관성에서,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발출·출원과의 연관성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초대교회 이후로 ‘미시오(missio) 또는 미시오 데이(missio Dei)’ 개념은 일차적으로 ‘프로세시오(processio) 또는 프로세시오 데이(procession Dei)’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 왔다. 전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외적 운동, 후자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 안에서의 내적 운동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백충현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미시오(missio) 개념은 성자의 목적,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론적 중재인 목적을 중심으로 한다”며 “그는 보냄을 받음이라는 단순한 미시오(missio)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시간 속에서 가시적으로 현현됨이라는 미시오(missio) 개념을 거치고, 성자의 목적과 관련해 보냄을 받음이라는 미시오(missio) 개념에 도달하고, 최종적으로 프로세시오(processio)를 계시함이라는 미시오(missio) 개념으로 마친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우리가 프로세시오(processio)를 다루지 않고서는 미시오(missio)를 더 충분히 다룰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이 두 지침들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훨씬 더 풍성하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며, 이를 통해 오늘날 선교 분야에서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