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율법 유대인
바울, 율법, 유대인

E. P. 샌더스 | 김진영·이영욱 역 | 감은사 | 400쪽 | 22,000원

이 책은 E. P. 샌더스가 쓴 또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제1부 바울과 율법, 제2부 바울과 유대인이란 주제를 다룬다.

특히 샌더스는 바울의 서신서들이 율법과 관련해 제기하는 질문은 무엇인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놀라운 학자적 혜안을 가지고 다룬다.

샌더스는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할진대 율법은 왜 주어진 것인지, 게다가 로마서 3-5장과 로마서 8장에서 율법에 대한 바울의 진술 또는 태도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바울 사상의 핵심으로 ‘그리스도에의 참여’를 꼽는다. 이로써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게 되며, 또한 거기에 어떻게 머물 수 있는지를 밝힌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없이 인간의 죄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모두 ‘죄 안에’ 있으며 죄인들이다. 둘 다 죄 안에 있고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는 아무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대속 사역 덕분에 사람들은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들의 단체인 ‘몸(the body)’으로 옮겨진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가게 되는 조건은 동일하다. 구원받은 자들의 단체로 옮겨가지 아니하는 자들은 멸망 받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이전에 지은 죄들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의 범죄들로 인한 부담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용서받고 면제받았으므로 의롭다(35쪽).

이렇게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 사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거 이전 죄 안에 살았던 삶이 아니라, 일정한 방식에 따라 살아야 한다(31쪽).

영화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 짐 카비젤, 제임스 폴크너
▲영화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에 등장하는 짐 카비젤(왼쪽)과 제임스 폴크너. ⓒ영화 스틸 컷
여기서 샌더스는 우리에게 들어감(getting in)과 머무름(staying in)이란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 ‘그리스도에의 참여’라는 바울 신학의 핵심을 표현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nomos(법)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두 개의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주해함으로써 칭의와 성화의 진리를 온전히 고수한다.

즉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들어가는가’를 논의하는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면서) 행동하는가를 논의하는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음(36쪽)을 밝힌다.

샌더스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는 바울의 진술은 갈라디아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로마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갈라디아서에선 사람이 의롭게 되는 문제는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문제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오는 세상을 유업으로 받는 문제였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은 율법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후사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으로 된다.

율법은 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의미와 목표는 무엇인가? 율법은 모든 사람을 의에 이르기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였다.

이런 측면에서 율법의 효용성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몸에 들어갈 수 있기를 뜻하셨다.

로마서의 맥락에서 율법의 효용성은 무엇인가? 물론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다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옛 사람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시킴으로써, 율법에 대해 죽고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신자의 빚을 상쇄할 뿐 아니라 신자가 친히 죄의 세력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새 생명을 얻는 방도를 제공한다(373쪽).

따라서 육신에 있는 인간은 전체 율법을 도무지 이룰 수 없지만, 율법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 따라서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한 사람은 율법을 행한다.

샌더스
▲E. P. 샌더스.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율법’ 혹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룬다(173쪽).

동일한 율법이지만, 이 율법을 대하는 사람의 상황이 다르다. 죄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죄와 사망의 율법이지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의 선한 요구를 행할 능력이 없지만(185쪽),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이룬다(187쪽).

샌더스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고 실제로 이룬다고 주장했다(298쪽). 중요한 것은 사람이 육신에 있는가, 아니면 성령 안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울서신서의 전체적인 밑바탕이 되는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율법과 은혜 사이의 날 선 대결이 거장의 주해를 통해 ‘그리스도에의 참여’라는 신학의 정수로 꽃을 피워가는 과정을 직접 참관하는 듯한 기쁨과 환희를 충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의정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