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보전하면서도
인간 수동적·무책임 존재 만들지 않아
준비, 반드시 회심보다 먼저 와야 한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김효남 목사. ⓒ크투 DB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44차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가 ‘교회사에서 나타난 회심’이라는 주제로 지난 11월 27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교회(담임 이풍인 목사)에서 개최됐다.

학술대회에서는 김효남 교수(성경신대)가 ‘개혁파 언약사상과 청교도 준비 교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근 구원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청교도들의 이른바 ‘준비 교리’는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준비 교리’란 은혜언약 안에 주어진 조건으로서, 믿음이 발생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김효남 교수는 “청교도들의 준비교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가운데 어느 하나를 희생하지 않았던 개혁파 신학의 이해의 궤적, 특히 언약사상의 전통 안에 있다”며 구원 서정 단계를 세분화해 설명함으로써, ‘준비 교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부여한 교리임을 논증했다.

김 교수는 “중세 말기 신어거스틴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방기한 반면, 유명론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사용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서 인간의 공로를 주장해 종교개혁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언약사상을 제시했다”며 “이에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역할과 일정한 책임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성을 훼손하지 않는 언약사상을 전개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쌍무적 언약사상은 16세기 후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화되고 발전된다. 특히 행위언약 사상 발전과 더불어 언약사상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의 전체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개혁파 구원론의 밑그림과 원리를 제공하는 언약신학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청교도들은 대륙의 언약사상을 적극 수용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보전하면서도 인간을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무책임한 존재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구원을 위한 준비’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하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서정의 첫 부분에 들어서기 전 일정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여기서 준비가 일어나는 장소는 마음이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혼의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인 ‘영혼의 자리(the seat of the soul)’가 바로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효남 교수는 “청교도들이 동일한 준비 과정을 가르쳤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부분은 죄인의 마음이 죄악과 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거룩 자체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될 수 없는 상태이므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전에 준비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다”며 “하지만 이 준비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올 만큼 거룩한 상태가 돼야 한다거나 스스로 정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회심 전에 정서적으로라도 죄와 분리돼야 함을 의미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주요 참석자들 모습. 김효남 교수는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학회
김 교수는 “죄와의 정서적 분리도 하나님 은혜 없이 인간의 타고난 능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았고,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성령의 역사라고 믿었다”며 청교도들은 ‘준비 과정’을 하나님 역사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을 살폈다.

그는 “‘준비 교리’를 주장했던 청교도들의 글을 보면, 마치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것처럼 호소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준비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준비란 죄인이 구원받기 전 영혼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준비되지 않으면 구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 있다”며 “청교도들은 준비가 반드시 회심보다 먼저 와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강조했지만, 준비 그 자체는 회심 후 오는 의무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준비론에서 말하는 쌍무성, 곧 죄인 편에서 만족시킬 조건은 회심 전에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남 교수는 “우리는 준비와 준비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만,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며 “우리는 스스로 준비할 수 없다. 혹은 우리의 준비를 통해 미래의 어떤 것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준비 자체가 바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와 인간의 책임 혹은 역할을 병립시키는 은혜언약 안의 이런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는 하나님 관점에서 볼 때 해당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인간에게 책임이 주어져 있게 된다. 동일한 구원의 역사를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 사람에게 믿음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하고, 말씀을 전하는 이도 있어야 하며, 죄인이 그 말씀을 듣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이 요구된다. 이는 개혁파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 교리 중 협력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준비 교리’는 바로 이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 믿음이 일어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다양한 은혜의 수단이 사용된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더불어 “은혜언약은 믿음이라는 조건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긍정했고, 이는 대부분의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다. ‘준비 교리’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은혜언약이 그 조건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개혁파 신학자들은 인간의 역할을 인정하였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발생에 대한 인간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결코 알미니안주의나 펠라기안주의가 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회장에 선출된 조현진 교수. ⓒ신학회
이후 홍인택 박사(봉천동교회)가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의 선구적 교리문답들: 성화론을 중심으로’를, 김호욱 교수(광신대)가 ‘동방 교회 개념과 초기 신학 고찰’을 각각 발표했다. 논평은 류길선 교수(총신대), 한동수 교수(한국성서대), 김성욱 교수(웨신대)가 각각 맡았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신임 회장에 조현진 교수(한국성서대)가 선출됐다. 개회예배에서는 이풍인 목사가 ‘우리 시대의 역설(디모데후서 3:1-5)’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박용규 목사가 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