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시계탑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13

시계탑
시계탑의 탄생

시계탑이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도록 탑처럼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영국 런던의 빅 벤(Big Ben)이나 프라하의 천문시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요. 시계탑은 인간 사회가 근대화의 시기로 진입하면서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농경시대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며 노동의 시작과 끝을 가늠했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맞이한 산업사회에서는 정확한 시간 개념이 요구되었습니다.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출근해야 했지만 당시 시계는 값비싼 물건이라 개개인이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고, 그 결과 시청이나 광장에 시계탑이 세워지게 되었죠. 그러고 보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 가사도 시계가 귀하던 시절, ‘이제는 노동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으니 그만 자고 일어나라’는 대국민 알림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시계가 흔해진 지금, 시계탑이란 본래의 기능보다는 그 일대의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빅 벤이나 프라하 천문시계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우리나라의 청량리역 시계탑은 장년층에게는 MT 출발장소로 기억될 겁니다. ‘첫눈이 내리면 서울역 시계탑에서 만나자’는 낭만적인 약속은 누군가에게 아련한 추억이 되겠지요.

시간이 통일되어도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확한 시간 개념이 요구되면서 각자가 지닌 손목시계의 시간도 정확하게 통일시킬 필요가 생겼습니다. 라디오 시보가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온 국민이 가진 휴대 전화의 시계가 1초도 틀리지 않게 통일되어 있습니다. 시계탑이나 손목시계는 본래의 기능을 휴대 전화에 넘겨준 채, 정서적인 기능만을 담당하게 된 셈이죠.

일률적이고 정확한 시간 개념은 국가가 사회구성원을 통제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 줍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2002)은 근미래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한 작품인데요. 정해진 시간에 전 국민이 일률적으로 정해진 약물을 투약해야 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한때 우리나라도 밤 9시가 되면 ‘어린이 여러분들은 잠자리에 들라’는 공지가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으니, 영화 속 상황이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팬데믹(pandemic)이라는 아주 특별한 상황 때문이긴 하지만 지금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전염병과 관련한 공지가 전 국민에게 휴대 전화로 발송되고 있으니, 정확한 시간 개념은 효용과 편의, 그리고 통제라는 이중적 측면을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시간 개념이 과연 인류를 더 행복하게 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시간법

신약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당시 유대인의 시간 개념을 보여주는데요.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를 열두 시간으로 보고 이것을 넷으로 나눈, 세 시간 단위의 시간법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면서 ‘집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저녁일지 밤중일지 닭 울 때일지 새벽일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언제나 정신 차리고 있으라’고 따끔하게 훈계하십니다(마가복음 13:35). 여기서 ‘저녁’이란 오늘날로 치면 18시에서 21시, ‘밤중’은 21시에서 24시, ‘닭 울 때’는 24시에서 다음날 03시, ‘새벽’은 03시에서 06시를 가리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부정확한 시간 개념으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할 거라고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스승의 예언대로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부인하죠(마태복음 26:34~75). 이때는 아마도 새벽 3시경으로 추측하는데요. 시계가 없던 베드로로서는 더욱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들의 기도시간에 맞춰 성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사도행전 3:1). 당시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기도시간은 오후 3시, 그러니까 당시 유대 시간법으로는 제9시였습니다. 그런데, 시계도 없고 시계탑도 없던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오후 3시인 줄 알고 움직였을까요? 휴대 전화가 없다고 해서 이들이 기도시간에 혼선을 겪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초 단위까지 전 국민의 시계가 통일되어 있는 지금, 우리는 옛날에 비해서 과연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고,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한가요? 휴대 전화는 물론 시계나 시계탑도 없던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낭만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