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표 요청, 기표함 개봉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억울했지만 더 이상 부끄러움 남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 부르심 입은 자, 모든 것 합력 선 이뤄져
정년까지 유종의 미, 후임자 자신 훌쩍 뛰어넘길

민찬기
▲민찬기 목사.
예장 합동 제106회 총회 목사부총회장 선거에서 18표 차이로 석패 후 사회 법정에 이의를 제기했던 민찬기 목사(고양 예수인교회)가 지난 9일 열린 총회 실행위원회에서 전격 소송 취하를 선언했다. 이에 본지는 12일 오후 민찬기 목사를 만나 취하 배경과 심경 등을 청취했다.

-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선거의 가장 기본은 정확한 숫자 아닌가. 저로서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 위해 피선거권자로서 기본권인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거 당시 (투표를 위한) 인식표를 노회 대표들에게 한꺼번에 나눠줬고, 누구나 인식표만 있으면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격리 등의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도 총회 참석자가 평소보다 늘어날 수 있는가?

처음 계수 인원보다 256명이 늘어난 결과가 나와 억울했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이나 장로교 교리와 배치되지만 법정에 호소하게 됐다.

저는 애초 3가지 안을 제안했다. 첫째, 스마트폰 기지국 위치 확인을 통해 1,436명이 현장에 있었는지 확인하자. 둘째, 전자 투표였으므로 (최초 계수 인원인) 1,180명까지만 투표 결과를 계수해서 누가 되든 인정하자. 셋째, 투표자들이 투표 후 기표함에 집어넣은 종이 숫자가 1,436장인지 확인하자. 하지만 모두 묵살당해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소송을 취하한 이유는.

“교계가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 불신자들에게 혐오감을 줬는데, 또 다시 이런 사건을 드러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일반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왔지만 거절했다.

더구나 법정에서 승리한다 한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치졸하게 보일 것도 같았다. 물론 저는 정정당당했기 때문에, 낙선 후에도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잘 잤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잠언 16:8)’는 말씀도 있지 않은가. 불의한 승리보다, 정당한 패배가 낫다. 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제가 가끔 쓰던 경구가 있었다. ‘모든 문제가 다 교착 상태라면, 내려놓으라. 그러면 길이 보인다.’

합동 실행위
▲지난 9일 실행위원회에서 취하를 선언한 후 (왼쪽부터) 민찬기 목사가 소강석 목사와 포옹하고 있다.
소송을 계속했다면 이길 수도 있지만, 시일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제게도 후유증이 오래 갈 것이다. 교단이나 교회나 저 자신, 그리고 한국교회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참모들은 끝까지 만류했다. 실행위에서 거부당하면 재선거라도 해야 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저는 선거전에서도 가짜뉴스에 대응하지 말고, 상대를 비난하지도 말자고 했던 사람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는 소문이 돌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행위원회에서 신상발언을 하고 소강석 직전 총회장님 요청대로 취하하겠다고 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용단에 매우 감사하다’, ‘비록 낙선했지만, 제게는 총회장이다’….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웃음).

사실 소송을 위해 변호사비까지다 지불한 상태였다. 계약금을 주고 승리시 수당을 추가로 주는 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액을 주고 맡겼다. 하지만 취하하면서 한 푼도 돌려받지 않았다.”

-내려놓고 나니 어떠셨나.

“홀가분했다. 자리에 연연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와 이후 일들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면.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다. 이기고도 지는 게임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게임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몇 년 뒤 목회를 결산할 때, 이 일로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실지 기대하게 됐다. 지금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손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인정한다고 하셨다(시편 1:6).

누군가는 제게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에 호소해 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저는 싸운 적이 없었다. 기본권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했을 뿐이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

-소강석 목사의 역할이 컸나.

“그렇다. 소강석 직전 총회장님은 교단 내 분열된 장로회 모임을 다시 하나되게 하셨고, 지금은 교계 연합기관 3곳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소 목사님은 그런 일을 하실 적임자다.

하나되지 못한 모습들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인데, 저렇듯 한국교회를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의지를 높이 샀다. 작은 것들마저 다 찢어놓고 헤게모니를 잡으려 하기보다, 조금 더 큰 그림으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 정국에서 20%라도 모이게 된 것도 소 목사님이 국무총리와 만나서 그렇게 됐던 것 아닌가. 지금 교계에 그런 창구가 있는가. 제가 볼 때 소 목사님은 여야를 떠나 정부에 대항하기보다 인정하면서 좋은 쪽으로 협상하고 활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오셨다. 그것도 좋게 보고 있다.

저는 좌든 우든 극단적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 정부와 투쟁할 일도 있겠지만, 화합하면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지켜야 한다. 낙선운동 운운하는 압력단체처럼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목회 비전이 있다면.

“정년까지 5년 정도 남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후임자가 정해져서, 저를 훌쩍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저 자신도 은퇴 후 교회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은퇴 후 초라한 모습이 아닌, 깨끗한 지도자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