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자베르(왼쪽)와 장발장은 쫓고 쫓기며 대결을 펼친다.
‘자비’와 ‘은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두 주제이다. 우리는 흔히 두 낱말을 동의어인 양 혼용할 때가 많다.

어떤 학자들은 구약에서는 ‘자비’란 말을 사용하고, 신약에서는 ‘은혜’란 말을 쓴다고 구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비’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선물을 주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

자비는 이삭의 심장에 꽂힐 칼을 막아준다.
은혜는 수풀에 걸린 숫양을 공급해 준다.

자비는 달려가 탕자를 용서한다.
은혜는 모든 좋은 것으로 잔치를 베푼다.

자비는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
은혜는 그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모두 부담한다.

자비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외침을 들어준다.
은혜는 그날에 낙원을 약속한다.

자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대가를 치른다.
은혜는 우리의 악함을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준다.

자비는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회심시킨다.
은혜는 그에게 사도가 되라고 외친다.

자비는 반역과 죄의 삶에서 존 뉴턴을 구한다.
은혜는 그를 목사가 되게 하고 시대를 초월한 찬송가의 저자가 되게 한다.

자비는 지옥에 이르는 문을 닫는다.
은혜는 천국에 이르는 문을 연다.

자비는 우리의 수고를 거부한다.
은혜는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축복을 더해준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프랑스 혁명기에 굶주린 가족을 먹이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는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9년 동안 복역하고 나온 그는 사회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한과 분노를 품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프랑스 동서부에 사는 일흔네 살의 미리엘 신부 역시 혁명기에 큰 고초를 겪은 사람이다. 유산 가운데 남아 있는 고가품이라곤 칼과 포크 여섯 벌, 국자 하나, 그리고 촛대 두 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곤궁한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겸손한 종으로서 그들을 섬겼다.

나흘 간의 자유를 누린 후 장발장은 이제 피로와 굶주림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그는 미리엘 신부의 집 문 앞에 서 있다. 염치고 자시고 그 집을 여관으로 오인한 그는 뻔뻔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서 신부의 따뜻한 대접을 받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날 밤 모두 잠든 사이, 장발장은 19년 만에 처음 누워본 매트리스와 하얀 시트를 뒤로 한 채 몰래 귀한 은식기들을 배낭에 훔쳐넣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튿날 아침,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그 식기들은 자기가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장발장을 보며, 신부는 헌병들에게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헌병들에게 장발장을 놓아달라고 하며, 신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 만나 반갑소. 그런데 내가 은촛대까지 함께 주지 않았소? 아마 200프랑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거요. 포크, 스푼과 함께 그것도 가져가시오.”

믿기 어렵다는 듯 장발장이 신부에게 묻는다. “정말 나를 놓아 주시는 겁니까?”

신부는 그를 안심시키며 이렇게 덧붙인다.

“형제여, 떠나기 전에 여기 당신 촛대도 가져가시오. 그리고 절대 잊지 마시오. 이 돈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말이오….

장발장, 나의 형제여, 더 이상 악에 속하지 말고 선에 속하시오. 내가 당신에게서 산 것은 바로 당신의 영혼이오. 나는 그것을 가증스런 생각과 죽음의 영으로부터 이끌어내어 하나님께 드린다오.”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에 당혹감을 느낀 장발장은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어두움, 그리고 가슴속의 한을 관통하는 사랑의 강렬한 빛, 이 둘이 서로 대조되는 것을 본다.

“은혜의 빛이 그의 삶, 그의 영혼에 닿았다. 그에게 그것은 마치 천국의 빛으로 사탄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모든 것이 변화했다.” 그 신부는 “이 비참한 인간의 전 영혼을 장엄한 광채로 채웠다.”

그 사건이 있은 지 하루 만에 그는 범죄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 자애로운 신부의 집 문 앞, 어둠이 깔린 길에 무릎을 꿇었다.”

은혜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니, 그것은 영원을 변화시키고도 남는다.

신성욱
▲신성욱 교수.
신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