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역사로 바꿔놓기, 역사적 예수와 영화 <듄>
과도한 수준의 종교 통합 지향하는 종교다원주의,
‘역사적 예수’ 방식으로 기독교 메시아 신앙 각색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과 정반대 방향 이미지 심어

듄
▲역사적 예수 사상을 반영한 SF 종교서사 <듄>.
◈역사와 허구: 역사 이야기의 강점을 살린 역사소설

역사 이야기는 대중문화 영상 콘텐츠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다. 역사 콘텐츠의 장점으로는 일단 서사의 개연성을 지목할 수 있다.

실제 일어난 사실을 기반으로 서사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개연성 측면에서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다른 분야의 콘텐츠보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내용을 다루는 것 또한 강점이다.

대부분 유명한 사건들을 배경 삼아 혹은 유명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서사를 비교적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그래서 흥행에 유리하다.

여기에 더해 역사 콘텐츠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자기 나라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반목하는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야 기획 단계에서 투자를 받기가 쉽고 언론을 통해 홍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영상 콘텐츠 선진국인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방송가나 영화계에서도, 비교적 큰 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는 역사 대중문화 콘텐츠가 끊임없이 제작되어 왔다.

우리 한국 대중문화계 역시 역사 콘텐츠에 많은 힘을 들여왔다. 일본 NHK 대하(大河)드라마 시리즈 포맷을 본따 만든 KBS 대하드라마 시리즈가 수십 년 간 제작되어 왔고, 각 지상파 방송국도 질세라 보통 1년에 한 편 이상 수십회 분량의 역사 드라마를 제작하곤 했다.

다른 소재의 드라마 투자에는 인색하게 구는 방송국들도 유독 역사 관련 드라마에 대해서는 자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계 역시 역사 콘텐츠 제작에 많은 힘을 들였고, 또 그에 비견되는 큰 흥행 실적을 거두곤 했다. 당장 한국 영화 역대 관객수 순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위는 2014년 개봉한 <명량>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명량해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후 8년 동안 어떤 영화도 <명량>의 관객 수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역사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대중문화 콘텐츠만이 갖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부실한 고증과 의도적 역사 왜곡은 이 분야에서 커다란 위협이다.

그래서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은 역사를 다룬 서사가 갖는 장점을 활용하면서 그 리스크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일단 그 시초는 실제 역사 기반 창작물인 역사 소설이다. 이 장르는 꽤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서구 쪽으로는 토마스 맬러리의 <아서 왕의 죽음>(1485), 동아시아 쪽으로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14세기경)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역사 소설은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창작되고 있는 인기 장르로서, 큰 줄거리는 실제 역사를 따르되 중간의 작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색해, 문학적 감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카멜롯의 전설
▲역사소설 <아서 왕의 죽음>을 영화화한 작품 <카멜롯의 전설>(1995).
◈역사와 예수: 역사적 예수 사상을 반영한 SF <듄>

그러나 역사 소설은 고증 및 역사왜곡 논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큰 줄거리는 여전히 현실 역사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역사물의 강점을 살리려는 또다른 방편으로 개발된 것이 SF 혹은 판타지 대하소설이다.

이 방면에서 유명한 작품으로는 J. R. R. 톨킨의 레젠다리움(<실마릴리온>, <호빗>, <반지의 제왕> 등),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 그리고 최근작인 조지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왕좌의 게임> 시리즈)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아예 현실 역사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뒤, 거기서 작가가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 역사의 소재들을 가져다 서사를 구상한다. 이 전략은 상당히 교묘하다.

역사적 개연성에 대한 책임을 조금만 지켜도 호평을 받을 수 있다. 애초 환상에 가까운 판타지나 SF 장르에 현실성을 부여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다.

영화 <듄> 역시 이런 방식으로 그 명성을 확보했다. 물론 그 설정이나 서사의 세부적인 내용은 폄하하기 어려울 만큼 치밀하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 역사의 이야기들(특히 고대와 중세 시기 서양과 중동 지역 종교사)을 별 책임감 없이 버무렸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듄>은 일종의 유사 종교 서사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듄>의 종교서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시될 수 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과도한 수준의 종교 통합을 지향하는 종교다원주의이다.

<듄>에 등장하는 종교 베니 제서릿은 현실의 가톨릭 신앙 이념(‘가톨릭’은 전세계적 보편교회를 의미)을 아득히 넘어서는 전 우주적 보편성과 포괄성을 보인다.

두 번째로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현실 종교 역사로부터 역사적 개연성을 빌려와서 19세기 유행했던 ‘역사적 예수’ 연구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메시아 신앙을 각색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전면 부인하고 그를 현실에 실제 존재했던 한 인간으로만 인정한다. 이에 따라 그에게 덧붙여진 온갖 초자연적, 신화적 서사를 배제하고 그의 현실적인 역사적 삶을 조명하려 한다.

듄
▲<듄>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티모시 샬라메 분). 역사적 예수 연구의 시각으로 본 기독교적 메시아 상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 혹은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의 부산물이었던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세기 중후반 현대 무신론의 선구자인 포이어바흐, 그리고 현대 유물론의 선구자이자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마르크스 같은 이들의 반기독교 사상을 낳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듄>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 서사는 말 그대로 문학계의 역사적 예수이다. 작품 속 폴 아트레이드는 인류의 멸망을 막아낼 희망이긴 하지만, 탄생 과정을 따지고 보면 애초 과학과 우생학, 그리고 광신적 종교 이념이 뒤섞여 만들어진 혼종에 불과했다.

또 건조기후 지역(사막)을 근거지 삼아서 제국에 혁명을 일으키고 자신을 창시자로 삼는 종교를 일으키지만, 그 종교가 나중에는 자신을 과도하게 신격화해 온갖 분쟁을 일으키자 좌절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폴 아트레이드에 대한 <듄>의 저자 허버트의 시각은 19세기 당시 다비트 스트라우스 같은 역사적 예수 연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던 시각과 흡사하다.

스트라우스가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유대교의 절박한 메시아 이념이 낳은 비현실적 부산물이고, 현실 역사의 예수는 그저 실패한 사회변혁을 이끈 현자 혹은 종교 사상가였을 뿐이다.

최근 CG 기술의 발달과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의 빠른 성장은 판타지 대하소설, 혹은 SF 대하소설의 영상화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동안 소설 속에서 문자로만 표현되었던 웅장한 스케일의 장면 묘사가 가능해지고, 비교적 긴 호흡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알맞은 TV 시리즈 포맷이 대중문화계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실마릴리온>이나 <파운데이션> 같은 작품을 온전하게 영상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듄>은 TV 시리즈가 아니라 두 편짜리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최근 대중문화계의 조류가 이 작품의 영화화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듄
▲사막, 즉 광야를 중심으로 제국에 저항하는 종교운동을 일으키는 폴 아트레이드의 서사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역사적 예수 사상의 의도를 반영한다.
소설 <듄>은 1960-1970년대 당시 히피 종교운동과 맞물린 기독교 신앙의 문화적 영향력 약화를 증명하는 문화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추세는 다시금 발전된 영상기술과 영화 연출력에 기대어 이루어진 <듄>의 영상화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다.

영화 <듄>에는 분명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본 작품의 서사에 대한 신앙의 분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