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은 번영신학과 그에 따른 윤리적 타락이라고 분석했다. 구제는 게을리한 채 화려한 예배당 건축에 막대한 돈을 써선 안 된다고 경계함과 동시에, 코로나시대 대면예배가 아닌 시민의 건강과 생명 살리기에 힘쓰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건강연구원(원장 이효상) 주최 한국교회싱크탱크 주관으로 15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진행된 종교개혁 504주년 포럼에서 ‘개혁을 다시 생각하다’를 발제하며 이 같이 말했다.

한국교회 타락 원인, 번영신학
구제엔 게으르고 건축엔 힘써
총회장과 당회장 권위 지나쳐

손 교수는 먼저 “한국 개신교 교단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하므로 종교개혁의 목적에 비교적 충실했고, 전도, 기도, 성경공부, 선교에 열심을 보이며 상당한 열매도 거두었다. 전 세계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고 믿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지 않나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자들만큼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제대로 순종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종교개혁이 비판한 당시 천주교의 풍유적(allegorical) 해석 등 자의적 성경해석이 자행되고, 정통신학 전통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루터와 칼뱅만큼 크지 않다. 특히 성경의 기복적인 가르침을 확대 해석해서 번영신학을 한국교회의 지배적인 신학으로 만든 것은 종교개혁의 성경관에 크게 어긋나고 한국교회의 타락의 뿌리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교회주의, 성장제일주의, 목회세습 등의 폐습은 종교개혁이 존중했던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자본주의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며 “종교개혁의 ‘오직 믿음으로’와 ‘오직 은혜로만’은 ‘값싼 은혜’ 신앙문화를 낳고 한국기독교의 윤리적 실패를 가져와 복음전도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로마의 성베드로성당 건축비용을 위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교회가 구제는 게을리하고 화려한 예배당 건축 등에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은 종교개혁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라며 “(유럽교회 현실이) 한국에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성경과 종교개혁의 정신에 따라 구제와 선교에 헌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종교개혁이 가장 크게 반대하고 제거했던 것이 성직자주의(sacerdotalism)였다며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해 권한이 비대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칼뱅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 지배했던 시대에 민주주의를 권장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런 개혁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회 사회에 국한되어야 할 총회장의 임기가 1년 내내 계속되고 교단의 대표로 행세하는 것, 당회장이 당회의 권위를 거의 대신하는 것, 장로가 70세까지 시무하는 것 같은 잘못은 세계 개신교계에 드문 현상이다. 성경이나 종교개혁 정신보다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와 민주화 이전 독재정치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처도 성경의 가르침과 종교개혁의 모범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1527년 독일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루터는 피신하지 않고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나는 감염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혹시 내가 조심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켜서 그들을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관계해서 한국교회가 보인 최대의 관심사는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 살리기가 아니라 대면예배였다. 공의와 자비, 희생과 봉사의 십자가 정신이 아니라 자체보존과 권리행사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에 한국교회 지도자와 교인 일부는 정치적 이념에 지나치게 편향적이 되어서 교계와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며 “배금주의 못지않게 극단적인 이념편향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그네’의 위상과 ‘오직 성경’의 종교개혁 정신에 충실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구의 개신교도 문화의 세속화, 과학만능주의, 식민지주의, 자본주의의 비성경적 요소들을 충분히 발견, 비판, 시정하는 데 실패함으로 지금 막다른 위기에 처했다. 성경에 충실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종교개혁, 그 불꽃을 다시 점화하다’를 주제로 한 이날 포럼에서는 이효상 원장의 사회로 정연철 이사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의 인사말에 이어 손 교수 외에 최식 목사(다산중앙교회, 설교학교원장)가 ‘종교개혁을 다시 시작하다’를 주제로, 정성진 이사장(크로스로드)이 ‘종교개혁을 다시 주문하다’를 주제로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