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신학서적 조직신학
신학 공부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우리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교회사에서 이단들과 오류들이 틈타는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진리를 사수했던 이들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었고, 이들의 무기는 오직 성경을 기반으로 한 참된 신학의 체계였다.

즉 참된 진리가 보존되고 사수되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위기 때마다 무한히 선하시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당신의 종들을 적극적인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일반 성도들이 무관심하거나 무지해서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전선의 최전방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거나, 때론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훼방을 받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분투한 주의 종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근대의 메이첸 박사에 이르기까지 진리의 영웅들은 각종 오류와 거짓된 가르침이라는 거센 파도에 맞서, 기꺼이 자신의 삶을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방파제로 사용하였다.

때때로 우리가 등한히 여기는 교리적인 논쟁이 피부에 와닿지 않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논쟁 자체를 피하려 하고 간접적인 일로 여긴다면, 그 결과는 영적 측면에서 간접적이지 않고 직접적이고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루터가 이신칭의라는 진리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시대 사람들은 가톨릭이 가르치는 행위에 기반한 잘못된 구원론 하에 살아갈 것이었다.

지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공교회가 오랫동안 가르쳐온 진리가 위협받고 있다.

상당히 우려스러운 것은 바OOO이라는 유사 언론이 연일 퍼부어대는 수준 낮은 의혹 제기가 아니라, 국내 장로교 계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교단들 내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며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할 내용인가? 더 나아가 이단성 있는 가르침으로 규정할 내용인가? 너무 아픈 현실이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사수하고 그것을 지켜왔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 앞에 매우 부끄러운 죄를 범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 큰 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그만큼 신학의 부재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반증이며, 교회들과 신학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슬픈 자화상이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