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영화 <보이스> 중 한 장면.
스티브 모스(Steve Moss)가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영어 55단어 소설』이라는 책 37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얘기가 나온다.

-침실에서

“조심해. 그 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다시 들어서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 총으로 부인을?”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청부업자를 고용해야지.”
“나는 어때요?”
그는 씩 웃었다.
“순진하긴. 어떤 바보가 여자를 고용하겠나?"
그녀는 총구를 겨누며 입술을 적셨다.
“당신 부인.”

세상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 투성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걸터앉는 놈 있다. 아무리 한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그를 능가하는 고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명절을 맞아, 동생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무얼 볼까 하다가 ‘보이스’란 한국 영화를 관람했다. 보이스피싱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주연인 변요한이 동생 목사가 잘 아는 목사님 아들이라, 더욱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연기를 참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매년 보이스피싱 당하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2020년 작년엔 피해액이 무려 7,000억이 된다고 하니, 허투루 볼 수 없는 사기 범죄임에 틀림없다. 나도 당할 수 있겠구나가 아니라, 순진한 내가 걸려들기 딱 십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동생 목사가 미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목사로부터 200만 원만 빌려달라는 요청을 카톡에서 받은 적이 있다.

워싱턴에서 담임 목회를 하는, 나도 잘 아는 후배 목사인데 시간대가 달라서, 아침이 되면 돈을 보내줄테니 우선 급한 돈 200만 원을 좀 빌려달라고 했단다.

나 같으면 군소리 없이 당장 돈을 부쳤을 게다. 하지만 동생은 정말 이 어리석은 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처했음을 카톡에 드러난 상황이 잘 보여주었다.

먼저 어디서 같이 공부했는지를 물었는데 정확히 맞췄다고 한다. 아이들 이름을 물었더니, 딸 셋 이름을 정확히 맞추더라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것들을 계속 물었는데 다 맞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형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내 이름까지 맞췄다고 한다.

나 같으면 그 정도까지 가지 않고 벌써 200만 원을 보냈을 것이다. 형 이름까지 정확히 맞추자 동생은 이건 진짜구나 생각하다가, 마지막으로 카톡 통화를 해보고 보내기로 결정한 후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속은 줄 알고 돈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진짜 그 목사가 자기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한 것 같은데 피해 입은 분들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았다. 동생이 존경스러워 보이던 희귀한 날이었다. 대부분은 동생이 질문한 거기까지 가지 않고 돈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속이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 하지만 속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항상 덤벙대지 말고 매사 지혜롭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함을 동생을 통해 배운, 소중한 하루였다.

보이스
▲영화 <보이스> 중 한 장면.
동생의 부인 제수씨가 최근 보이스피싱에 걸릴 뻔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 아이 이름으로 카톡이 와서, 핸드폰 고장이 났다며 부모를 속이는 최신 수법에 당할 뻔 했다고 한다.

하긴 몇 달 전 나한테도 그런 문자가 온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내 자식들은 다 미국에 사는지라, 속을 이유가 없었던 게 다행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하니, 도무지 친한 지인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는 불신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남을 속여 자신이 이익을 누리는 건 큰 죄악이다. 당하는 이들 편에선 씻을 수 없는 피해와 상처로 남는다.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은 전화기를 통한 목소리(Voice)로 상대방의 개인 정보(Private data)를 알아내서 낚이게 하는(Fishing) 사기 범죄를 말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어떤 점에선 ‘보이스피싱’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사람을 낚는 어부(Fishers of man, 마 4:19)가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파악은 기본이다.

남의 정보를 몰래 알아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남을 등쳐먹거나 해코지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를 잘 활용해 남의 영혼을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다.

“이제 전도의 시대는 갔어!” “코로나19 때문에 대면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은 더 이상 전도가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 안에 사탄이 뿌려놓은 악한 씨앗일 뿐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딤후 4:2)’에 힘을 써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전도의 도구인 보이스를 가지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피싱(Phishing)’을 제대로 잘 감당하다가 부름 받았으면 좋겠다.

신성욱
▲신성욱 교수.
신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