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신앙계> 창간, 오순절 신앙 널리 전파해
진보 잡지 <기독교사상>과 달리, 대중 상대로 해
방송 선교, 기독교 넘어 일반에 오순절 신앙 전해
장소 문제로 모니터 통해 예배드린 최초의 교회
조용기 목사, 현대 문명 흐름 빨리 파악하고 적용

1980년대 MBC TV서 매주 30분 설교 전국 방영

조용기
▲인터뷰하고 있는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별세를 맞아, 박명수 박사님(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박사님의 <급하고, 강한 바람: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 오순절운동>에 수록된 것입니다. -편집자 주

4. 미디어 왕국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아무도 넘보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교파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교파의 장벽은 매우 컸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강력한 성령 운동도 이 장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스컴의 영역은 사실 주인이 없었다. 매스컴은 교파의 장벽을 넘어 순복음의 신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였다.

조용기 목사는 이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다. 실제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과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어떤 교회보다도 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시작한 매스컴은 1964년 순복음 신자들을 위해 매달 발행한 <순복음> 지였다. 그 후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의 <순복음가족신문>이 되었다. 여기에는 담임목사의 설교와 순복음교회의 활동, 오순절 교회들의 동향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신자들은 이것을 통하여 교회의 사정을 알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교회의 신자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이 신문은 순복음 가족들의 동질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또 전도지로 활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오래 전 지하철에서 <순복음가족신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순복음가족신문>이 일차적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가족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면, <신앙계>는 순복음교회와 한국교회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잡지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해방 이전, 성결교회가 발행하던 <활천>이 전국적으로 널리 읽히던 신앙적인 잡지였다. 해방 이후 평신도를 대상으로하는 몇몇 신앙잡지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 1967년 <신앙계>가 창간되었다. 필자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신앙계>는 바로 그런 소식을 교파를 넘어서서 전국의 신자들에게 보내준다. 필자 역시 성결교회 목사이지만, 시골에서 목회할 때 그리고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이 <신앙계>를 통하여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았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평신도잡지로서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별로 없었다. 최근 온누리교회에서 발행하는 <빛과 소금>이 나오기까지, <신앙계>는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독점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 잡지는 2008년부터 <플러스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발행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진보 진영에서 발행하는 <기독교사상>과 <신앙계>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 진영의 주된 관심은 지성인이다. 진보 신앙은 항상 지성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보 진영이 발행한 <기독교사상>은 그 목적에 맞게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진보 사상을 알렸다.

하지만 오순절 운동은 처음부터 대중들을 상대로 했다. 그래서 <신앙계>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지성계는 진보주의가 장악하고, 한국의 대중들은 오순절 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총력을 기울여 만든 것은 ‘국민일보’이다.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자로서 국민일보가 창간했다.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는 여론의 힘에 밀려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받아들이고, 투표를 했다. 그 뒤 한국사회는 전두환 정부에서 이제 투표를 통한 민주 정부의 탄생을 보게 됐다.

조용기
▲조용기 목사의 2012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성회 모습. 조 목사는 빌리 그래함처럼 방송을 통한 복음 전파에 적극적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런 민주화의 시대에 출판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만들었는데, 이 때 시작된 신문이 바로 한겨레신문이다. 하지만 종교계도 신문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당시 통일교가 세계일보를 만들자, 이것을 보면서 조용기 목사는 기독교도 신문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하면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는 국민일보를 창간하게 되었다.

국민일보의 창간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을 급진적으로 격상시켰다. 당장 국민일보는 한국교회의 대변지가 되었다. 국민일보가 창간되자 한국의 모든 교파나 모든 단체는 국민일보를 통하여 자신들을 소개하고 싶어했다.

국민일보는 기존의 교계 신문이나 잡지와는 그 효과를 비교할 수 없었다. 국민일보는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다 구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평신도들도 독자가 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일보에 나타나는 기사의 효과는 전 기독교적이었다. 비록 국민일보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국민일보는 한국교회의 전체의 신문이 되려고 노력하였다. 동시에 국민일보에는 <순복음가족신문>이나 <신앙계>와 같은 순수한 오순절의 신앙이 강조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활자라는 미디어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방송이라는 미디어도 장악하였다. 실질적으로 교파의 장벽을 뛰어 넘는데 방송 선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방송 선교는 교파의 장벽만을 넘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사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방송의 유익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있었다. 실제로 신자가 증가하면서 한 장소에서 모든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릴 수 없었고, TV 모니터를 통해 여러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교회에서는 예배란 모든 신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직접 눈으로 설교자를 보면서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고전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모니터를 통해 예배를 드린 최초의 교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미디어의 유익을 어떤 다른 교회보다도 빨리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 태도는 복음주의/오순절운동 전반에 걸쳐 잘 나타나 있다. 빌리 그래함이나 오럴 로버트 등은 TV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한 사람들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본당 및 수많은 지성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방송 미디어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상 문제로 화질이 좋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95년 우리나라 최초 통신위성인 무궁화 위성이 발사되자, 통신위성을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본당 예배 실황을 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일 낮 예배는 전국과 세계에 직접 중계됐고, 이것을 통해 여의도순복음 가족들이 하나의 공동체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는 현대 문명의 흐름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그것을 목회에 적용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1968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극동방송을 통해 ‘순복음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방송 선교를 시작하였다. 곧 이어 기독교방송, 아세아방송을 통해 순복음의 시간은 확장되어 갔다. 이렇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미디어 세계에서 이미 한국교회의 최대 강자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디어를 선점하는 자가 곧 세계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방송 선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980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대전 MBC TV를 통해 매주 30분씩 전국에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영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조용기 목사의 프로그램은 매우 큰 인기를 얻어, 거의 모든 MBC TV 방송국이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일반 지상파 방송을 통하여 기독교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에 지상파 방송에서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1990년대 한국에는 소위 케이블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이 때 기독교 케이블 방송을 시작한 것이 CTS이다. 이는 초교파적 기독교 TV 방송이다. 그 뒤에 C3TV(현재는 Goodtv)가 창설되었다.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국민일보를 창간하고 운영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여기에서 빠질 수 없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인터넷 방송인 1998년 12월 FGTV를 개설하였다. FGTV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이며, 한때 가입자가 1,000만명이 넘고, 방문자도 하루에 약 17만명에 이르렀다. <계속>

박명수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