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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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5장 20-21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주님께서 아들이 가진 권세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나사렛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신 주님이십니다. 인간적으로는 목수인 요셉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하십니다. 하나님과 동일하게 신성을 가지신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때 하늘의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가진 권세를 스스로 증명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아들이 가진 권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위임의 권세
모든 것을 맡기는 위임의 권세입니다.

본문 20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입니다. “아들에게 다 보이신다”는 말씀에서는 위임의 특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아들에게 다 보이시는 것은 그냥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잘 배우게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배우게 해서 일을 맡기려는 의도입니다.

‘위임’이란 일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일을 맡기는 위임에는 권세가 따릅니다.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일이라면, 더욱 그에 합당한 자격이 요구됩니다.

법률에서 위임은 위임하는 위임인(委任人)이 일을 맡는 상대방 수임인(受任人)에게 일의 처리를 위탁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위임을 맡는 상대방 위임인이 위임을 승낙함으로써 위임이 성립하게 됩니다.

일을 맡는 수임인은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재량의 여지가 있고, 위임인과의 사이에 일종의 신임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대체로 위임은 자신의 대리권을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일을 맡기는 위임의 모든 권한을 수임인에게 부여하므로 동일한 권한을 갖기 때문입니다.

위임이란 매우 중요하기에, 아무에게나 절대로 위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위임을 할 때는 자신의 모든 권한을 수임인에게 부여합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맡게 되는 모든 직책에는 위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임의 직책에는 그만한 책임과 권세가 따르게 됩니다.

2. 사역의 권세
동일한 일을 하시는 권세입니다.

모든 것을 보이시고 더 큰 일을 보이시는 의도가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처럼 동일하게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와 동일한 일을 하게 하시려는 사역의 동일성입니다.

동일한 사역, 사역의 동일성은 목적이 동등함을 의미합니다. 해야 할 사역의 목적이 동일하면서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경영하는 사업이 양도된 것으로 인정되는 법이 있습니다. 사업에 관한 인정, 물리적인 조직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이전된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사업장이 개인회사로서 사업주와 간판의 이름이 변경되기도 합니다.

개인회사가 종전의 사업주와 다르게 폐업신고가 되기도 합니다. 그때 세법상의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사업이 양도된 것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사업의 동일성 때문입니다.

간판이 바뀌었다 해도 사업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경우에는 해당사업의 지속성이 인정됩니다. 간판은 바뀌었다 해도 사업의 동일성이 유지되기에 동일 사업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갖는 권세는 아버지의 사역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르게 일하지 않고 같은 일을 합니다. 그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사역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한 사역을 하기에, 아버지의 권세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세가 아들에게 그대로 위임되었습니다. 아들이 사역의 권세를 가진 이유입니다.

3. 부활시키는 권세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권세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사역 목적이 동일하기에 갖는 부활의 권세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권세는 인간이 갖는 최고의 권세입니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처럼 사람을 다시 살리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경우가 여러 번 나옵니다.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베드로도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주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경우만 해도 세 번이나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 죽은지 4일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일, 그리고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시는 경우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모든 경우가 절박한 경우였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의 시선과 언어, 동작에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 공통적입니다.

주님은 죄와 허물을 보시기 전에 마음의 고통을 보시고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사람을 다시 살리는 권세에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경우를 생각하게 됩니다. 절망하여 힘을 잃은 사람이 마음에 힘을 얻어서 새롭게 다시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고통을 간절하게 이해하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로 인해 절망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날 수 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 부활을 믿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하나님의 사역을 위임받은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과 동일한 사역을 하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부활의 권세를 가진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부활의 권세를 가진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