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물 소용돌이 펜화
▲1506년 다빈치는 이 그림에 “물이 수조로 흘러들 때 그 움직임은 세 가지 양상을 띤다. 그리고 거기에 네 번째 운동으로 물 속을 파고드는 공기의 운동이 추가된다”고 썼다. 다빈치의 관심사는 물이 떨어지는 순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었다.
연일 계속 비가 내린다. 계절은 가을 입구에 들어섰는데, 과일과 곡식들은 마지막 숙성을 위해 목마르게 따가운 햇볓을 기다리는데, 한 주에 세 번씩 이어지는 가을 장마는 끝날 줄 모른다.

나뭇잎들이 가을 색으로 물이 들 수 있을런지. 찬란한 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된다.

그 동안 몇 번의 라운딩이 취소된 끝에 오늘 비로소 필드로 나왔다. 아직 비는 오락가락 하고 페어웨이 군데군데 물이 빠지지 않았다. 흐린 하늘 아래 수목은 더 무성해졌다.

곳곳에 보랏빛 들국화가 피어나고 작은 곤충들이 기어 나오고 둥지에선 새소리가 요란하다. 회색 구름 떼가 모양을 바꾸며 지나는 곳으로 철새들이 따라가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자연 앞에 선 것이 여간 유쾌하지 않다.

동반자의 세컨 샷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카트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언덕과 페어웨이 사이 패인 곳으로 빗물이 계속 흘러 작은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물의 흐름을 보다가 소스라쳐 놀랐다. 빗물이 규칙적으로 한 곳으로 모이며 질서정연하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데, 그 소리가 피오르드 해안의 물 소리처럼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내 귓가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자연의 질서를 보았다. 그 속에서 더 빛나는 미를 내 눈이 보았고 또 들은 것이다.

지금처럼 작은 현상에서 자연의 질서를 깨닫게 되는 순간에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평생 인간과 인간을 포함한 우주를 관장하는 자연의 질서를 탐구한 사람,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석학,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이다.

내가 여러 날 동안 이탈리아 문화 예술 기행을 하던 때의 일이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을 본 다음 빈치 인근의 시골 마을을 찾아갔다. 빈치는 다빈치의 고향 마을이다. 그의 평생 고독과 외로움의 근거지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도 버림받는다. 그러나 다빈치는 아름다운 고향의 산악과 평원, 구릉과 초원, 올리브 숲과 포도밭, 밀이 자라는 언덕에서 위로를 받았다. 자연은 그의 구원이었다.

나는 지금 카트 길에서 흘러내려 작은 웅덩이에 모여 소용돌이치는 물 살을 보면서, 다빈치의 그림 하나를 떠올린다. 1506년 경인가, 붉은 빛이 도는 갈색 잉크로 그린 소용돌이 그림이다.

그림의 선들은 휘몰아치듯 하고, 직사각형의 구멍에서 쏟아져 내린 물 줄기가 소용돌이 치는 모습이다. 물이 떨어진 표면에는 기표들이 무리지어 꽃봉오리처럼 피어있다.

그 아래로는 잘 정돈된 머리카락 같은 물 줄기들과, 바깥쪽에는 끝이 나선형으로 말린 더 큰 물결들이 감싸고 있는 그림이다.

이 펜화는 물의 표면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입체영상처럼 소용돌이치는 물의 내부를 층층이 펼쳐보여 줌으로, 과학자 다빈치의 ‘물에 관한 연구’를 상징하고 있다.

태초에도 비는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을 끝임 없이 반복했다. 물의 순환이란 지구의 표면 위 아래에서 존재하는 지속적인 물의 움직임이다.

빗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물의 일부는 수증기가 되어 증발한다. 물은 식물에서도 증발하고 흙에서도 증발한다.

차가운 온도에서 수증기는 구름에 응축되고 때론 눈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물은 수천 년에 걸쳐 언 물을 담을 수 있는 설산을 만들고 빙하로 남는다.

이처럼 비는 태초부터 하늘에서 내려와 엄청난 일련의 과정을 질서정연하게 끊임없이 반복해 왔다. 이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은 더 빛나는 미를 발견하고, 더 큰 아름다움을 향유하게 된다. 영혼이 생명감으로 충만한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 영혼이 우주를 향해 열려있을 때의 충만한 생명감”을 나는 은혜라 여긴다.

그 옛날 이사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토지를 적시고 싹이 나게 하여 열매를 맺어 파종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기까지는 다시 그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날마다 새싹을 틔우며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수고한 것의 열매를 먹는 지극히 작은 일상을 끝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으로 인도함을 받자. 산과 들이 우리 앞에서 박수치는 것을 보며, 들판의 새들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인간과 우주와 자연을 관통하는 질서로서의 진리이다. 우리 생명의 충만함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때문이다.

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영문학 박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