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정에서 시작하다
교회, 가정에서 시작하다

래드 지데로 | 박주언·홍선호·진부천 역 | 좋은씨앗 | 296쪽 | 15,000원

가정 교회 관련 책을 종종 찾아 읽을 때마다 강한 도전과 그리움이 일어난다. 1960년대 작은 시골 교회, 가정 교회가 추구하는 10-30여 명의 성도가 자유롭게 삶을 나누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형식이 있지만, 때론 형식을 벗어나 참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 교회에서 구원받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때는 교회가 이미 100여 명의 성도가 되었을 때고, 지금은 2-3배 더 커졌다.

그래서 가정 교회 운동이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 래드 지데로가 <교회, 가정에서 시작하다>에서 강조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린 것들을 되찾기 원하는 갈망이 있다. 아니, 오래전 작은 교회에서 누렸던 것을 회상하며 그리워한다.

지데로가 말한 급격한 교회 성장(확장), 사람 중심적이고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묶여 있지 않은 자유로움과 저비용을 자랑하는 가정 교회를 즉시 시작하고 싶다. 그러면 과거에 누렸던 참된 기쁨과 만족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가정 교회 책을 읽을 때마다, 도전과 함께 강한 저항도 생긴다. 지데로가 말한 성도 간 친밀한 교제가 과제이고, 목사 중심의 사역이 아니라 성도가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사역이 되게 하는 일이 도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지금 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규모가 되어 하나님이 성도를 통해 공급하신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해 과거에 할 수 없었던 사역을 교회가 감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도행전과 서신서 기록을 통해 가정 교회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교회가 자체 건물 없이 가정에서 최대 30여 명이 모였고, 종종 가정 교회가 연합하여 100여 명이 모이기도 했다는 결론을 얻는다. 또한 성직자 없이, 심지어 특별히 정해진 예식도 없이 자유로운 형식의 예배가 모든 성도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케빈 드영이 <왜 우리는 지역 교회를 사랑하는가>에서 제기한 가정 교회의 잘못된 전제들에 동의한다(부흥과개혁사, 2010).

첫째로 사도행전의 기록이 정말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교회 규모와 모임의 장소, 예배 형식의 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둘째로 다른 역사적 기록이나 성경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정 교회가 그런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수긍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가정 교회 형식으로 모이는 것, 가정 교회의 장점을 살려 계속 새로운 가정 교회를 개척하는 것, 가정 교회가 함께 연합하여 교회의 필수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것, 수많은 가정 교회가 연합하여 진리를 지키고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함께 이루는 것. 모두 다 좋은 일이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교회를 이룬 자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을 취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가정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비전을 분명히 세웠기 때문에, 지데로 역시 다른 가정 교회 운동가처럼(그래도 예의 있고 부드럽게) 그 모델을 따르지 않는 교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나는 전통적인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돌을 던질 의도는 전혀 없다(283쪽)”고 말하지만, 전통적인 교회는 사람이 만든 제도를 받아들이고, 종교의 틀에 갇혀 있으며, 국가와 결속한 교회라고 은근히 비판한다.

사랑의교회 비대면 예배
▲지난해 가정에서 생중계를 통해 성찬식에 참여하는 모습. ⓒ사랑의교회
유급 성직자가 비성경적이고, 예식을 갖춘 성스러운 예배는 형식적이며, 교회 건물을 가지고 예배의 날을 정해서 모이는 것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가정 교회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말하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동시에 다른 교회는 덜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셈이 된다.

가정 교회를 작은 시골 교회에서 제법 경험해 봤지만, 그 경험을 가지고 가정 교회 운동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데로는 CCC와 네비게이토 모임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 지역 교회 출석에 점차 흥미를 잃고, 아주 잠시 전통 교회에서 셀 교회를 경험한 후 가정 교회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경험으로 전통 교회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30명이 훌쩍 넘는 교회가 교회 건물과 유급 성직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초대 교회의 친밀한 교제와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며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자발적으로 사역에 동참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가정 교회 운동 그리고 <교회, 가정에서 시작하다>가 대다수 전통 교회에 속한 이들에게 주는 유익이 분명 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건물 중심이 되는 문제, 교회 사역이 다수의 성도가 아니라 소수의 사역자에게 집중되는 문제(그래서 일꾼이 아니라 관중이 되는 문제), 규모가 커질수록 교제가 친밀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변하는 문제(시대와 문화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지만) 등 현대 교회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시 한번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일이다. 셀 교회나 소그룹, 구역 등 다양한 방식을 교회가 도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교회를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는 원인은 교만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하나의 풀뿌리 기독교인 형제 교회 운동은(지데로가 언급한 역사적 가정 교회 운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지데로는 형제 교회에서 출판한 교회 역사서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면 누구나 모여서, 가지고 있는 은사로 함께 섬기고 자유롭게 예배하는 교회 운동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죠지 뮬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극적인 성장과 영적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신자를 성도로 영접했던 이들이 자기들처럼 모이지 않는 교회를 비판하는 교만을 품고 나서부터였다.

교만은 전통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교회도 멀리해야 할 죄이다. 형제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세워진 작은 시골 교회에서 자라면서 이 교훈을 확실하게 배웠다.

결론적으로 지데로의 <교회, 가정에서 시작하다>를 통해 독자는 실제로 저자가 문제 삼는 교회의 취약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가정 교회를 생각할 수도 있고, 기존 교회에서 가정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보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분명히 밝힌 것처럼,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속한 교회나 교회 전체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의 규모, 성직자, 예식, 건물의 유무 등만으로 성경적인 교회의 이상인 양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참 복음이 살아있고, 주님이 주인이시며, 성도가 받은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영과 진리로 참 예배를 드리는 교회, 그 교회를 위한 꿈을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꾸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