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이해 토드 맹굼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이해

R. 토드 맹굼 | 김장복 역 | CLC | 268쪽 | 13,000원

이 책은 1936-1944년 사이에 일어난 복음주의 두 신학의 분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언약주의와 세대주의 갈등이 어떻게 첨예화되고, 서로 엇나가게 되었으며, 양자가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1936년 이전 세대 장로교회는 전천년주의, 세대주의, 무천년주의가 혼합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장로교단 내 세대주의는 C. I. 스코필드(스코필드 관주 성경 편집자)와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달라스 신학대학 설립자)로 대변되었다.

당시 비전천년주의자들은 특정한 종말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보다 교회의 연합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하지만 결국 장로교단 내 세대주의를 축출하고자 설립된 임시위원회(AIC)는 세대주의를 일탈적인 신학적 시스템으로 선포했는데, 이는 세대주의가 종말론에서 뿐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나타난 언약신학에서 탈선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와 언약주의 사이의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부분을 살펴보자. 종말론에 있어 세대주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고, 언약주의는 무천년설을 따른다.

그 차이점은 이렇다.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지상의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재림한다고 믿는 반면, 무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그의 영원한 하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재림한다고 믿는다(183쪽).”

또 구원론에 있어 세대주의는 “구약에 하나의 구원의 길이 있고, 신약에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두 가지 구원 방법(29쪽)”과 “모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만, 구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심판-천년왕국-부활 기간 메시아와 성도에 의해 시행되는 유대인 또는 일반적인 구원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존재와 천상의 존재에게 주어지는 교회의 구원이다(100쪽)”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제기되었다.

반면 언약주의는 “은혜 언약, 즉 하나님은 한 백성인 그의 백성에 대해 구원의 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구약 예언은 교회를 통해서 성취되기에) 그리스도가 위해서 죽은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를(187쪽)” 세우신다. 그러므로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어떤 종말론적 기대도 없다(193쪽).

이러한 첨예한 갈등은 결국 서로 간의 상처만 남긴 채, 결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1952년 세대주의 신학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달라스신학교는 교리적 진술을 개정하면서, 언약주의 신학을 향해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세대는 구원의 길도 아니고, 소위 은혜언약으로 불리는 것을 집행하는 다른 방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215쪽)”고 천명했다.

언약도의 역사와 유산 스코틀랜드 교회 언약 장로교 역사 유럽 종교개혁
▲스코틀랜드 한 교회. ⓒpixabay.com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에 대한 논쟁의 결론을 분석하면서 다소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와 언약주의 사이의 논쟁에서, 그들 사이의 쟁점이 되었던 내용이 실제 참여자들에게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16쪽).

그래서 그는 “언약주의 비평가들은 스코필드 주석을 세대주의 신학의 사실상의 고백적 진술로 오해했기 때문에, 세대주의 견해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244쪽)”이라고 말했으며, 번 포이스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대주의자들과 언약주의자들 사이의 논쟁 역사에 과장된 진술이 많이 있었음을 인정(252쪽)”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대립하고 반목했던 역사적 기록을 읽는 동안,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다.

사실 언약주의와 세대주의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았고, 복음주의 안에서 하나였다. 다소 차이점이 있고, 심지어 서로 다른 신학적 토대를 두고 있을지라도, 대립과 반목보다는 상호 견제와 협력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본서에 대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20세기의 대부분 기간, 복음주의자들은 세대주의와 언약신학 사이의 틀어진 관계로 인해 촉발된 여러 오해와 와전에 대해 불필요한 아우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오해들만 좀 더 일찍 해명되었더라면, 복음주의에는 어떤 진보가 이루어졌겠는가?”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의정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