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편적 기준은 허구? 그러면 <사피엔스>도 허구
결국 ‘자신의 주장만 예외적으로 참이다’, 숨겨진 전제
‘믿을 이유 없는’ 허구와 신화 팔아, 경제적 실리 취득?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
▲손원준 박사가 온라인 심포지움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27회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이 9월 4일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심포지움에서는 손원준 박사(U.C. Irvine)가 ‘사피엔스의 망상(Sapiens’ Delusion):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답하다’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심층 리뷰’라는 부제로 그는 “20세기 초 우생학과 과학은 인종차별의 합법성을 위해 근거로 사용됐다. 진화론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종차별에 대한 생물학적 주장은 1859년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다윈의 진화 이론이 수용된 이후 수십, 수백 배 증가했다”고 말했다”며 “21세기 현재, 과학의 이름으로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근거가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손원준 박사는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자연주의, 과학주의 세계관이 세상을 더 윤리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입장을 반대하고, 과학주의 도그마는 윤리 질서의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며 “개인의 인권·자유·평등 같은 자유주의적 신념을 유지하는 삶과, 과학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삶이 서로 상충/모순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손 박사는 “유발 하라리는 과학(자연주의적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사회를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소극적 부정’을 한 것이 아니다”며 “언젠가 터져야 할 시한폭탄처럼, 언젠가 그것이 사회윤리 질서의 토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막지 못하리라는 ‘적극적 부정’을 한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라리는 ‘다른 동물보다 체격이 뛰어나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없던 사피엔스(인간)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됐는지 분석한다”며 “이는 7만여년 전의 ‘인지혁명’, 1만 2천여년 전의 ‘농업혁명’, 500여년 전의 ‘과학혁명’ 등을 언급하고, 과학이 사피엔스를 ‘신’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손원준 박사는 “그의 핵심 논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보편적 기준은 한 마디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질서’, 즉 허구라는 것”이라며 “모든 것이 상상 속의 질서 즉 허구라면, <사피엔스> 속의 아이디어는 왜 허구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손 박사는 “하라리는 물질 외에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자신의 ‘아무런 믿을 이유가 없는’ 허구와 신화를 팔아 거대한 경제적 실리를 취하고 있다”며 “결국 자신의 주장만은 예외적으로 참이라는 것이 책의 숨겨진 전제이다. 이는 <사피엔스>의 핵심 주장이면서, 동시에 떨쳐낼 수 없는 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라리는 윤리를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 격하시키면서 ‘자연은 금지시키지 않는다’며 생물학에는 자연적/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그는 윤리에 관한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 자연주의 기반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객관적 윤리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동물 학대와 인종차별 등을 비판하는 선택적인 도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하라리는 인간의 욕구를 제한없이 발산하는 것을 견제하는, 모든 전통과 가치는 해체돼야 하는 신화로 치부한다”며 “차별과 권력의 압제에 의한 사회적 피탈과 학대, 부/인종/성별/사회적 지위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천부적 인간의 권리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강등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해방은 누구를 위한 해방인가”라고 했다.

손원준 박사는 “하라리는 유독 기독교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는 현재 누리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 평등 등 ‘진보적 가치’에 미친 기독교의 결정적 영향을 인정하지만, 그 원인과 소스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며 “그는 기독교를 나치즘과 동등한 수준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무지에 기반하며 점차 폐기해야 할 근대 이전의 세계관으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하라리는 인생이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고 새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며 “그는 자신의 세계관과 실제 삶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이야기하는데, 이는 일관성의 무늬를 띤 기만 혹은 무지 중 하나”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공유하는 모든 가치는 예외 없이 망상에 불과하다’며, 다소 과도한 망상을 하고 있다”며 “그의 숨은 동기는 유신론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해체다. 종교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논지를 펴기 위해, 모든 비물질적인 것이 신화와 망상에 불과하다는 담론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
▲온라인 심포지움 모습.
◈‘하나님 가설’의 귀환

서강대 소현수 명예교수(화학과)는 <다윈의 의문>, <세포 속의 시그니처> 등을 쓴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의 ‘Return of the God Hypothesis(‘하나님 가설’의 귀환)’를 소개했다.

소현수 교수는 “저자는 ‘과학적 증거는 지적 설계자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며 “과학계에서 ‘하나님 가설’이란 물질적 우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가설로, 책 제목처럼 그것이 ‘돌아왔다’는 말은 한동안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소 교수는 “‘하나님 가설’이 사라진 것은 ‘우주의 시작(우주론적 논증)과 우주의 설계(설계 논증)라는 두 기둥이 약화되고, 생물학·천문학·지질학 등에서 과학적 유물론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20세기 들어 초자연적 설명을 배제하고 자연적 설명에 국한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현재 많은 과학자·철학자·신학자들은 과학과 유신론적 믿음이 갈등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유신론적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①물질적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우주론적 증거 ②시초부터 우주가 생물의 가능성을 허용하게 ‘미세 조정’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물리학적 증거 ③우주의 시초 이후 대량의 ‘새로운 기능성 유전 정보’가 생물권에서 발생해 새로운 생물 형태가 생성했음을 보이는 생물학적 증거 등 3가지를 언급했다.

먼저 ‘우주론적 증거’에 대해 “1912년 적색편이가 발견돼 공간 팽창을 암시하면서 ‘빅뱅 우주론’이 시작됐고, 1965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가 발견되면서 확고해졌다”며 “이는 유한한 우주의 유신론적 함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20세기 유명 관측천문학자 샌디지(Allan Sandage) 교수는 불가지론자였으나, 강연 중 ‘창조 사건’의 과학적 증거에 의한 개종을 발표해 동료들에게 충격을 줬다”고 설명했다.

미세 조정이라는 ‘물리학적 증거’에 대해선 “우주의 많은 성질은 매우 좁고 확률이 지극히 작은 범위에 속하고, 이런 미세 조정은 생물의 존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연의 ‘상수’ 중 어느 것이라도 조금만 달라지면 우주는 완전히 혼돈에 빠질 것”이라며 “우주는 놀랍게도 질서정연한, 따라서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다. 우주의 시초에 물질과 에너지가 엔트로피가 아주 낮은 배열로 미세 조정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생물 형태가 생성했다는 ‘생물학적 증거’에 관해선 “캄브리아기 대량의 기능적 특정 정보의 기원에 대해 알려진 유일한 원인은 지적 설계뿐”이라며 “신다윈주의자들 주장처럼 무작위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현수 교수는 “하나님이 시공간, 물질 및 에너지를 초월하는 한, 그리고 우주 자체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원인이 될’ 우주와 분리된 어떤 실체의 존재를 요구하는 한, ‘하나님 가설’은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을 보이는 증거에 대해 자연주의보다 인과적으로 더 적절하고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한다”며 “지적 설계자가 뚜렷한 목표 또는 중요한 결과를 위해 다양한 파라미터들을 미세 조정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 교수는 “우리는 도킨스가 말한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무관심’의 산물인, 무의미한 우주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며 “‘하나님 가설’이 돌아온 것은 우리 자신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가 헛되이 끝날 필요가 없다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되살린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 심포지움에서는 지적설계연구회 황창일 박사가 ‘Essential Genes of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원형 박사가 ‘지적설계 은둔의 개척자 슈첸버거’, 포항공대 조민수 교수가 ‘진화연산과 최근 인공지능, 그 기여와 한계’, 서강대 이승엽 교수가 ‘연구회 활동 소개 및 심포지움 정리’를 각각 발표했다.